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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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을 읽고 문득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역,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쓴 이 가족드라마는 '가족'이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멀리서 지켜본다면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의 이복 동생과 작은 아들 막내 딸까지 평범하게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들이 사는 집과 같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허물어져 있다. 그 폐허 속에 할머니 하쓰에와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노부요의 이복동생 아키, 아들 쇼타, 막내 유리(린)가 살고 있다. 


아이들은 참 빨라. 노부요는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하쓰에가 노부요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선택받은 건가······우리가." - p.126


마치 퀼트로 꿰매어 놓은 것처럼 그 자리에 필요한 이의 부재를 그들이 채워 나가고, 혈연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의 인연이 되어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수퍼마켓에서 자잘하게 생필품을 훔쳐 내기도 하고, 때로는 파친코에서 구슬을 천연덕스럽게 꿰어 내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는 하쓰에의 연금에 손을 내밀며 기웃거리는 오사무의 모습도 엿보인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패가 되어 물건을 훔치는 장면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는 공생관계인지 가족인지 불불명한 노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손발을 맞춰 훔쳐낸 물건을 가방 가득 집어 넣고, 고로케를 사가지고 가던 중 부모의 방치 속에 앉아있는 여자 아이와 마주치게 된다. 물건을 집듯 오사무는 멍이든 아이를 그렇게 손을 잡고 데려왔다.


'오사무'는 아들의 본명이었다. 며느리 이름이 '노부요'이다. 하쓰에의 집에 두 사람이 들어와 살기로 한 날, 그때부터 이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다. 린이 린이 아닌 것처럼 노부요는 노부요가 아니며, 오사무도 오사무가 아니다. 아키를 포함해 이 집에 사는 가족은 하나같이 두 이름을 갖고 있었다. - p.129


저마다의 사연으로 멍이든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어울려지낸다. 때때로 그들의 선택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려 살며 그들로 하여금지난 시간을 위로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 보다는 파친코에 나가 천역덕스럽게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탕진하곤 한다. 그런 모습이 때때로 그들이 가족인가, 가족이 아닌가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 보다는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 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노부요는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옷을 태우는 불 때문인지 눈물이 따뜻했다. 린은 뒤돌아 노부요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든지 안쓰럽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는 이 아이를 내버려두지 않아. 노부요는 맹세했다. - p.136


피로 이어진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너 라는 존재 만으로 위로를 받았던 관계는 유리와 하쓰에의 행보를 통해 또다시 이야기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꿰어 맞춘 이불보가 턱하고 터지듯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빗금이 가기 시작한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조마조마한 '도둑질'은 모두 탄로가 나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 헤어진다. 그럼에도 다시 그들이 함께 지냈던 순간들을 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 시간동안만이라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나 다 있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함께 살아간 시간이다. 피로 나눈 부모나 연인, 남편, 아이들에게 받지 못했던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은 것처럼.


'노부요의 말처럼 서로 선택한 관계가 더 끈끈한 것일까. 나와 아키도 이렇게 서로 닮아 있다.' - p.152


잔인한 모습들이 비춰지면서도 다시 누그러지게 만든 것도 그들이 지닌 한쪽 마음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한쪽 마음은 서로 선택해서 산 사람들의 이야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그의 여러 작품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감독이자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왜 그의 이름이 그토록 많이 불렸는지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맺어진 인연 역시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의 의미는 때때로 가슴이 따듯하고, 보듬어주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더 가깝게 나를 찌를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남보다 더 못한 경우도 많이 보았고, 남이지만 더 가족과 같은 관계를 보았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남'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느끼게 된 작품이다. 영화로는 '어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봉이 되었는데 책과 함께 영화도 함께 보고 싶을 만큼 잔잔하면서도 가슴따뜻한 이야기가 마음 속 깊이 들어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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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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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읽어도 좋은 남과 여의 사랑이야기.

 ​세계문학전집을 접할 무렵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처음 접하게 된 책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순정만화를 읽듯, 로맨스 소설을 접하는 것처럼 책이 너무 재밌어서 그때부터 세계문학전집을 계속 읽고 있다.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정도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제목 그대로 편견을 날려준 책이다. <오만과 편견>을 좋아하는 만큼 그녀의 생애를 다룬 영화 '비커밍 제인'도 좋다. 특히 다아시와 같은 느낌의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가 인상적이어서 몇 번을 보고 또 보아도 그녀가 쓴 많은 연애소설과 닮아있다.

민음사 판본을 시작으로 많은 판본을 읽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위즈덤하우스의 '비주얼 클래식'은 기존의 문학전집과 달리 만화가 박희정의 그림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어 또다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만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만찢남'이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를 말한다고 하는데 그와 반대로 비주얼 클래식은 기존의 이야기를 만화의 비주얼로 재탄생한 책이다. 제인 오스틴의 글 속에서 만나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느낌의 남녀를 그렸고, 때로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화가 박희정 특유의 그림들이 제인 오스틴의 글과 맞물려 현대적인 두 남녀의 느낌을 새롭게 만드는데 독특하게도 그 느낌이 싫지 않다. 다만, 박희정 만화가의 그림이 여덟 컷 정도 그려져 있는데 그림이 더 많이 장면 곳곳마다 실려 있었으면 좋겠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결혼 적령기에 든 베넷가의 딸들과 명망높고 재산이 많은 미혼의 남자 다아시와 빙리가 네더필드 파크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제인과 빙리등 베넷 가의 다섯 딸들의 다층적인 사랑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아들이 없어 재산 상속을 받지 못하는 베넷 부인은 딸들이 부유하고 신분적인 지위가 높은 남자들과 결혼을 하기를 염원하며 끝없이 남편을 닦달한다. 조용하면서도 지적인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엄마가 꿈꾸는 현실적이면서도 다소 허위적인 결혼과는 달리 다른 사랑을 꿈꾼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다아시의 만남으로 인해 그는 그녀에게 '오만'한 남자로 찍혔고, 오해로 인해 그녀는 편견 가득한 여자의 시선에 그가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타래가 제대로 얽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향했으나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 마주 보게 된다. 

초반에 잔소리 같은 베넷부인의 다다다하는 이야기와 배경설명만 넘긴다면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당시 19세기 영국의 사회적인 배경과 상속에 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한 여자들의 욕망과 압박들이 지금과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졌다. 결혼 적령기에는 시공간을 떠나 누구나 압박을 느끼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듯 싶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유리한 조건에 맞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추진하려는 베넷부인의 보습은 물질주의와 더불어 당시 영국의 상속제도의 비판으로도 느껴진다. 아들이 없는 베넷 가는 당장 베넷씨가 죽으면 딸들에게는 돈이 쥐어지지 않는 상태이고, 그렇게 자신의 재산이 친척에게 넘어가니 그들에게는 '결혼'이 이상적이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생존보존'을 하기 위한 제도인지도 모르겠다.읽을 때마다 재미있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결혼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시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각기 다른 번역본을 보는 재미가 있어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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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첫문장들.


재산이 많은 남자가 미혼일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그에게 아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런 남자가 어떤 마을이든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 남자의 감정이나 생각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 당연한 진리가 마음에 확고하게 박힌 나머지 마땅히 자기 딸이 이 남자를 차지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_위즈덤하우스 비주얼 클래식 / 서민아 역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_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윤지관, 전승희 역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그런 남성이 동네에 처음 들어서면, 그 사람이 어떤 기분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는 상관 없이, 동네 사람들 마음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는 이 진리 때문에 그는 당연히 여러 집안의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간주된다. _열린책들 세계문학 / 원유경 역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그런 남자가 새로 이사를 오게 되면, 그 주위의 집안들은 이런 진리를 너무나도 확고하게 믿는 나머지 그가 어떤 심정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그를 자기 집안 딸들 중 누군가가 차지하게 될 재산으로 여기곤 한다. _시공사 세계문학의숲 / 고정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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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 현대지성 클래식 12
월터 스콧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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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고전 소설


 말을 할 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말을 할 때는 직설적인 표현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쁜 말을 할 경우에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좋은 말이든, 좋지 않는 말이든 완곡하게 표현하곤 하는데, 이따금씩 고전소설을 읽을 때면 표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직설적으로 표현 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이쪽 저쪽 옮겨지지 않는 날것의 언어들이 월터 스콧의 언어로 표현되고, 하나의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등장하는 인용되는 글귀가 좋았다.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중에 하나로 속해 있는 책이며, 펭귄클래식, 옥스퍼드 클래식 선정도서이기도 하다. 책을 손길가는 대로 중구난방으로 읽긴 하지만 고전소설을 읽을 때면 오랜시간을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도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가 나와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는 역사 소설의 시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인 작품이기도 하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최고의 부수를 자랑할 만큼 사랑을 받았던 이 소설은 시공간을 떠나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손길을 받는 작품이다.


<아이반호>는 잉글랜드를 점령한 노르만 족들에 대한 앵글로색슨 족의 저항과 그들을 무찌르고자 하는 마음을 그린 책이다. 잉글랜드 왕인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원정을 나서는 사이 그의 동생인 존 왕자가 노르만 족과 합세해 왕위를 노리게 된다. 그런 그의 위협 속에서 리처드 1세는 궁지에 몰리지만 기사 아이반호의 도움으로 존 왕자와 노르만 족 귀족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기사 아이반호가 있고, 로웨나 공주와, 레베카와의 양다리 로맨스를 나누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만화나 책, 드라마에서 보았던 왕과 기사의 이야기는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막장드라마와 순수, 용맹스러우면서도 충성심이 가득한 기사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색깔이 강렬하고, 다층적으로 잉글로색슨 족의 사연을 담고 있다. 잉글랜드 사회의 문제와 그들이 겪는 고난과 상황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대화는 그야말로 유쾌하게 느껴진다.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시공간을 떠나 언제 읽어도 현재와 같은 느낌을 주는 동시에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시대와 사회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12세기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그의 이야기는 왕과 기사, 기사의 무용담과 사랑이야기를 포함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광대와 여러 지도자들의 삶과 행동을 느낄 수 있는 교훈적인 메세지도 함께 있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아이반호>가 국내 유일 완역본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많은 소설과 더불어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소설보다 이야기의 원형적인 요소가 많고, 있는 그대로의 사회상을 그린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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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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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곧 음악이다.


 얇지만 묵직한 여운을 주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는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 속에 어우러지는 많은 선율을 직접 귀로 듣지 않아도 리드미컬하게 문장 속에서 음율이 느껴진다. 선원 대니 부드먼이 버지니아 호에서 레몬 상자에 들어있는 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이름인지 조차 모를 무명의 아기가 버지니아 호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발견한 이와 상자 속에 든 문구와 선원들의 뇌리 속에 멋있을 것 같은 단어들이 직조되어 만든 이름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 그렇게 이름이 탄생되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육지에 발을 디딘적이 없는 사내. 배 안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마치 신이 내린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며 연주하는 팀과 호흡을 맞춰 나간다.


대형 호화 여객선인 빅토리아호에서 그의 연주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육지에 발을 디디자 마자 배에서 연주한 노베첸토를 이야기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은 그의 이야기는 부풀려지고, 때때로 그와 함께 연주했던 이들의 일화를 더해 그를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만들어 놓는다. 육지에 발을 한 번도 디딘적도 없는 그의 일화가 눈덩이 같이 벌어지고, 그와 함께 연주했던 연주자의 입으로 전해듣는 노베첸토의 삶은 하나의 시처럼 음악처럼 들려온다. 그의 명성에 힘입어 많은 이들이 그를 배에서 내려 육지로 내려가 그의 피아노 솜씨를 마음껏 펼치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떠밀리기도 하고 스스로 배에서 내려가고자 했으나 그는 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누군가는 그를 탓한다. 왜? 왜?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냐고. 그는 말한다.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바다를 건너 돌고, 도는 인생이 아니라 육지에 발을 딛고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맞붙어도 지지 않는 너의 음악을 무한하게 연주 할 수 있다고 했으나 그는 끝내 선택 할 수 있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무한한 바다 속에서 그는 그 자체로 음악을 즐겼고, 자신의 생애 속에서 빅토리아 호와 함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다른 이들이 생각 할 수 없는 저 넓은 세계 속으로.


누군가에게는 빅토리아 호가 우물 안의 작은 공간으로 느껴져 더 넓은 세계속으로 걸어가라고 종용하지만 그는 반대로 육지가 우물 안이라고 느꼈다. <노베첸토>는 연극을 보는 것처럼 그의 독백과 그와 함께 연주를 하며 트럼펫을 연주하는 팀의 일원인 그의 친구의 시선으로 그의 삶을 관조한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원작인 <노베첸토>는 특정한 곡명을 쓰지 않아도 전해지는 음율 속에서, 삶이 곧 음악이 된 한 남자의 곡진한 이야기가 마음 속 깊이 남았다. 세상에는 그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그 어떤 서류 조차도 남아있지 않는 무명의 사람에게.


바람처럼, 파도처럼, 기나긴 수평선을 바라보며 끝이 없는 바다처럼.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한 편의 시처럼, 음악처럼 읽혀지는 노베첸토의 이야기는 연극을 보듯 그의 삶이 때때로 현미경을 보듯 자세하게도 보이지만 때로는 시간여행을 하듯 빠르게 걸어나간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거스트 러쉬'가 생각났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으며 음악 속으로 걸어간 한 소년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그 소년이 그러하듯 노베첸토 역시 자연과 닮아있다.


누군가는 그에게 삶을 개척하지 않은 이라고 하겠지만 한 발을 디디는 것 조차 세계와 세계를 가르는 무서움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넘기 어려운 산인 것 처럼. 그가 멋지게 차려입고 배의 계단을 하나 둘 내려갔다가 다시 멈추어 섰을 때의 그 순간을 이입하며, 그의 선택에 대해 깊이 동질감을 느꼈다. 다른 세계에 대한 두려움, 헤세의 책 <데미안>에서 말하는 그 세계를.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그는 뒤집어 그가 직조한 세계 속으로 함께 걸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은 깨야 한다지만 그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더 넓은 세계 속에서 음악을 연주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가 영원히 우리의 가슴 속에 남는 것임으로.


---


어째서 이 움직이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거야? 하느님 맙소사, 계속 이렇게 바다를 오가며 바보처럼 살 수는 없잖아······· 자네는 바보가 아닌데, 자넨 위대한 사람이야. 세상이 바로 저기 있다고. 빌어먹을 저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데 뭐가 그리 어렵다고, 겨우 몇 계단만 내려가면 완전히 딴 세상인데, 다른 세상이라고. 여길 청산하고 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뭔가. 딱 한 번만. 그 한 번도 힘든가. 노베첸토······대체 왜 내리지 않는 거야?


왜?


왜? -p.46~47 


진실은 모든 것이 끝이 보이고 있으며 더는 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일어나야 했던 일이 이제야 일어나고 있었다.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는 2월 어느 날, 뉴욕 항구에 도착하면 버지니아 호에서 내릴 것이다. 32년을 바다 위에서 살다가 바다를 보려고 육지에 발을 디딜 것이었다.


(오래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온다. 배우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증기선의 탑승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노베첸토의 차림새를 하고 다시 나타난다. 캐멀 코트, 모자, 큰 가방, 잠시 그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정면을 응시한다. 뉴욕을 바라본다. 잠시 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계단을 내려온다. 그때 음악이 뚝 끊기고 노베첸토는 그 자리에 멈춘다. 배우는 모자를 벗고 청중을 향해 몸을 돌린다) - p.66


그 도시 전체에 끝이 보이지 않았어/

끝 말일세. 대체 그 끝은 어딜 가면 볼 수 있나?/

시끌벅적했지/

그 빌어먹을 사다리에서······ 모든 게······ 무척 아름다웠지. 그리고 코트를 입은 난 근사했어. 끝내줬다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 내가 내려가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니까. 문제 될 건 없었어/

(생략)

피아노는 생각해봐. 건반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 우리는 모두 그게 88개라는 걸 알지. 건반은 무한한 게 아니야. 당신, 당신은 무한하고 그 건반들 속에서 무한한 것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음악이야. 건반은 88개이고 당신은 무한해. 난 이런 게 좋아. 사람은 무한하게 살 수 있지.


(생략)


길만해도 수천 개인데, 그 중에 어떻게 하나를 선택하지/

어떻게 한 여자/

집 한 채, 땅 감상할 풍경, 죽는 방식을 선택하지/

그 세상 전부/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그 세상/

이 넓디넓은 세상/

그 광대함을 생가하는 것만으로도, 단지 생각만으로도 산산조각나는 게 두렵지 않은가? 거대한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 p.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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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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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편집하는 것!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가 출간되었을 무렵 읽은 사람마다 그의 책이 좋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 4년만에 100만부 돌파 기념으로 하드커버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다. 전부터 찜했던 책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안 읽어봤으면 후회 할 뻔 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토록 재밌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는지 알 것 같다. 똑같이 이야기 해도 쉽게 말하고, 쉽게 쓰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쉬운 이야기 일지라도 어렵게 말하고, 어렵게 쓰는 사람이 있다. 김정운 교수는 전자의 사람으로, 쉽게 쓰는 동시에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푸념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이미 줄찰 외쳤음에도 귓등에도 들쳐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유명한 누군가가 한 번 딱 이야기 했을 때 사람들이 우와~ 하며 몰려든 이야기를 하며 분개하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책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보다>(2014,문학동네)를 읽었을 때처럼 그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프레임'이 다르게 느껴졌다. 왜 우리가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는지, 각 나라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파악하며 왜 그들이 그렇게 나타내고, 행동을 하는지 본질을 꿰뚫어보게 한다. 누군가는 그런 통찰이 없이 그들이 이끄는 대로 사회의 현상을 따라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나라의 정체성을 긴밀하게 파악해 또다른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편집한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도 스스로 편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김정운 교수는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아 더 생경했고, 더 센세이션하게 느껴졌다.   


독어로 '행위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인간이 가장 즐거울 때는 '주체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행위를 할 때다. 그리고 이 같은 행위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정해진 일, 시키는 일만 반복하면 숨 막힌다. 돈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불행하다.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명제보다 창조적 행위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없다. - p.4


'이이토코도리', 즉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일본식 문화 편집 방식이야말로 일본의 정체성이라고 세이고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아예 '방법으로서의 일본'을 주장한다. 일본 문화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는 거다. 따라서 특별한 내용의 일본 정체성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른 것들이 대립이나 갈등 없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바로 그 편집 방법에 일본의 정체성이 있다는 거다. - p.12


편집을 하는 행위는 주체적이다, 라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준다. 특별 에디션으로 김정운 교수의 서재가 특별 공개되어 있는데 일본의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편집력과 더불어 그가 생각하고 있는 창조의 방법론을 이야기하며 지식과 지식을 어떻게 모으는지를 그는 자세하게 알려준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다르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어떻게 지식을 모으고, 더하고 나누면서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책이라 읽는 내내 새롭게 안경을 다시 맞추는 기분이었다. 기존에 썼던 안경을 벗어 버리고, 다시 새로운 안경을 맞추는 것처럼 내가 평소 쓰던 물건의 원리나 관점이 다르게 느껴졌다. 더 넓게, 더 멀리, 다르게 보이는 것이 마냥 새로웠고, 그의 이야기처럼 이렇게 다층적으로 관찰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난 그래서 앞뒤 꽉 막힌 '한글 전용론자'들이 몹시 원망스럽다. 한글의 의미론적 배후에는 죄다 한자가 숨어 있다. 그것을 부정하면 안된다. 더욱이 21세기는 동양이 대세다. 실용적으로만 생각해도 한자는 필수다. 영어는 유치원 때부터 배우면서 왜 한자는 필수로 배우지 않는 것일까? 한반도의 문화사적 이해가 배제된 어설픈 민족주의는 정말 위험하다. 한국 사람이 동양고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비극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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