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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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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이런 소설을 만났나 하는 자책이 들 만큼 인상적으로 읽은 소설집입니다. 사실 김금희라는 작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웃 리뷰에서 몇 번 보고 기회가 되면 읽어야지 했던 김금희의 소설들.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습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부터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등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당연히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가 가장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는 글을 쓰던 옛연인 양희. 그 양희를 대기업 영업팀장으로 나름 잘 나가다가 좌천돼 건물 지하에 있는 시설관리팀장으로 있는 필용이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물론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 무대 위의 인물과 관객으로 만나게 되죠.) 양희는 오늘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하지만 언제든 그 사랑이 변할 수 있다고 하는 여자. 필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여자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사랑의 순탄할 리 없습니다. 쓰라린 이별 후에 양희의 집에 찾아간 필용. 그런 필용에게 양희는 말합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그래서 양희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고 한 것일까요? 필용이나 양희나 현실에서는 어찌 보면 패배한 인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비웃음을 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필용과 양희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특히 필용은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삶을 산 것으로 보이니까요. 절망적이고 우울한 현실에서 필용이 만난 소극장 무대 위의 양희는 옛추억을 떠올리는 동시의 현재의 무력감을 잊게 하는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잊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42)’이라는 쉽지 않은 진리를 깨달은 것인지도...

 

김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가 가득한 인물입니다. 조중균이나 세실리아, 개를 기다리는 그녀나 목욕탕에 불을 지른 것으로 오해받는 김대춘이나... 그런데 그들은 그 상처 가득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그것이 내부로부터이든 외부로부터이든)을 가지고 힘들고 고단한 현실에서 끝내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작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봅니다. 메마른 감정처럼, 낡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오랜 관찰을 통해 툭툭 던지듯 문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읽기에 불편합니다.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식당 앞에 확인표를 들고 서 있는 조중균 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탁!하고 막힙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폭력의 시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에 의한 폭력, 가정 내에서의 폭력, 혹은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앞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아파하고 때로는 가해자가 되지만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타인이 당하는 폭력을 발견했을 때지요. 과연 어떤가요? 대부분 나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무관심을 가장하지는 않는지... 김금희의 소설들은 그 아픈 부분을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내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좋았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나타나는 것도 참 오랜만이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순간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모여 한 인간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 속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고 잊고 싶은 상처들도 있습니다. 또한 잊고 싶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의지도 있고요.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견고하게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세실리아처럼 성공한 듯 보이는 인물도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상처 속에서의 삶은 그것이 지금 '잊지 않음'으로 있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상처를 이겨내고서 이 굳건한 현실 위에 서 있으니까요.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니다. 다소의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나가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과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애매한 상태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우리 현실의 모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안의 상처와 억압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책을 읽은 지가 꽤 돼서 작품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간만에 상당히 몰입하면서 읽었고 여러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집이기에 뒤늦게나마 짧은 감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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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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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연금술사'이후로 처음이네요. 파울로 코엘료의 명성이나 작품 수에 비한다면 이렇게 안 읽을 수가 없는 것인데...ㅠ.ㅠ.

'연금술사'는 뭐... 전세계인의 필독서이자 세계인의 심리적 각성을 일깨운 책이니까 굳이 첨언이 필요없지만... 이번에 만난 '스파이'는 제 기대치에는 많이 모자라네요...

소설은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감옥에 수감중인 마타 하리의 최후의 순간을 묘사합니다. 담담하고도 당당한 죽음... 그리고 소설은 그녀를 변호했던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마타 하리는 이 편지가 자신이 죽고 난 후 홀로 남겨질 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녀의 인생과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위해 이국적인 인도네시아 자바 섬으로 떠난 마타 하리. 그러나 낯선 문화, 남편의 방탕한 생활, 아들의 죽음 등 평탄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을 이혼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그녀는 파리로 향합니다. 그리고 천둥벌거숭이와 다름없는 처지에서 그녀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동양적 춤으로 파리문화계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뒤이에 따라오는 명성과 부...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그녀와 가까이 하고자 노력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파리에서의  화려한 성공... 하지만 화려한 불꽃은 사그라지고 파리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던 그녀는 독일로 향합니다.

 

마타 하리(여명의 눈동자 혹은 새벽의 눈의 의미를 가진 인도네시아어입니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그리고 책으로도 그녀의 생애가 많이 조명됐기 때문입니다. 스파이 혹은 이중 스파이의 대명사, 치명적인 팜므 파탈 등 그녀를 가리키는 말도 많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

(Margaretha Geertruida Zelle). 네덜란드 출신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로, 다시 파리로 그리고 독일로...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그녀는 암호명 'H21'이라고 불리는 독일 스파이로 프랑스 정관계의 고급정보를 독일 측에 팔아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결국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스파이였는지 시대의 희생양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문서에는 마타 하리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어떤 결정적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합니다. 그러나 마타하리는 여전히 스파이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을 뿐이죠.

파울로 코엘료가 마타 하리에 주목한 것은 삶의 어느 순간에도 자유롭고 독립적이고자 노력한 여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29쪽) 이 문장에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소설을 읽는 내내 (최소한 저에게는) 시대를 앞서간 용기있는 여성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도... 제 독해력의 부족이 큰 이유이겠지만 작가가 마타 하리를 선택한 이유가 제게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본 마타 하리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알고 이를 지극히 잘 활용한 여성일 뿐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당시 사회에(특히 남성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최대 무기는 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특유의 관능미와 신비함(여기에는 그녀의 거짓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됩니다.)으로 파리문화계를 주름잡던 그녀가 니진스키를 비롯한 신진들에게 밀려나고 그 화려함을 다시 찾기 위해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녀와 관계를 맺던 수많은 남성들은 결코 그녀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녀의 마지막에 가서 어떤 남성도 그녀를 편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 말이죠. 결국 육체와 육체가 얽힌 관계였을 뿐이겠죠. 이런 점을 볼 때 작가가 생각한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란 판단에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책은 마타 하리와 그녀의 변호사 클뤼네의 편지 형식으로 진행됩니다.(1, 2부-마타 하리, 3부-클뤼네) 편지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것이 상황이든 생각이든. 즉 사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서술되는 편지 형태의 글은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타 하리의 글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개인적 변명으로만 생각됩니다. 내가 무죄이다를 말하면서 그 타당한 근거가 희박합니다. 물론 전쟁의 광기 속에서 희생된 가녀린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인생을 살다 좌절된 한 개인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리고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라면 그닥 할 말이 없지만...

어쩌면 편지 형식이 아닌 장면 중심의, 대화 중심의 내용 전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더 상상의 여지가 크지 않았을까 읽기의 흥미가 배가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극히 사념적인 전개 위주의 글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명성에도 다소 미치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럼에도 눈길을 머물게 한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머릿속 잔상도 잠시 흩어 뿌리는 그런 문장들...

 

사랑은 범죄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우리를 갑자기 앗아갑니다.(82쪽)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86쪽)

인생은 왜 나로 하여금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일을 겪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힘든 순간들을 견딜 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기 위하여.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지만 그러기 위해 다른 방법, 다른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125쪽)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무리 공포스럽다 해도 이 숲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고 나는 저편에 다다르려 한다는 것이지요. 승리가 왔을 때 나는 관대할 것이고 나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한 이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126쪽)

 

나는 행복을 찾았던 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라 브레 비La vraie vie’, 진정한 삶을 원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상심의 순간들이 함께 있고, 충성과 배신, 두려움과 평화의 순간들이 공존하는 진정한 삶. (157쪽)

'... 당신은 사랑을 철저히 불신하고 굴복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아무게게도 복종하지 않고 그 신비를 해독하려는 사람을 배신할 뿐입니다.'(208쪽)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읽었을, 그리고 상대적으로 만족도도 높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작품이나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저에게는 많이 아쉬운 작품, '스파이'였습니다.

 



나는 내가 언제나 전사였으며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나의 전투를 치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투들은 삶의 일부였습니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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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진구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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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추리소설답지 않다고...

 

마침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상당히 빠르게 읽었습니다. 가독성 면에서는 합격입니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솔직히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소설의 첫 장면은 강렬했습니다. ~~~ 괜찮겠는데? 그런데... 첫장면과는 무관한 내용의 소설이 전개됐습니다. 물론 소설의 중간에 첫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가 제시되고 마지막에 첫장면 이후의 장면이 제시되고 앞으로의 새로운 사건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끝나기는 하지만... 한 마디로 첫장면에 낚였다고나 할까요?

    

소설의 주인공은 사설탐정이자 백수라고 할 수 있는 김진구입니다. 그에게 이교준이란 남자가 이상한 의뢰를 하면서 소설은 전개됩니다. 교통사고로 아내 유정을 잃은 교준은 아내의 두 언니(남고운과 남문영)에게 장인 남현호의 유산이 상속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의뢰를 하는 것이죠. 현재 장인의 상속인은 새어머니(유재연), 처형 두 명, 그리고 교준의 딸 아름입니다.(상속인인 남유정은 죽고 아름이는 갓난아기이기 때문에 실제 상속인은 이교준입니다.) 교준은 아내의 죽음에 두 언니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진구에게 상속을 막아달라 의뢰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구는 이교준의 의뢰인이 되고 이에 위기를 느낀 남고운과 남문영은 변호사 고진에게 새어머니와 제부인 이교준이 상속을 못하게 해달라고 의뢰를 합니다. 결국 100억을 둘러싼 한 집안의 막장드라마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후에도 이야기는 상당히 꼬이고 엉키며 전개됩니다. 남유정 사고의 가해자와 남고운의 남편의 관계, 이교준과 가해자의 관계, 남유정의 정부 원경호의 등장, 유재연의 임신 등. 그렇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고 이후에 또 어떤 사건이 전개될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상당히 잘 짜여진 각본처럼 내용이 전개됩니다.


하지만...

일단 문체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뭔가 뚝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자 소개를 보니 S대를 나온 현직 판사... ㅎㄷㄷ 그리고 꽤 많은 소설을 썼고 한국추리문학대상도 받았습니다. 꽤 잘 나가는 추리소설 작가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건물의 뼈대와 골조는 무척 튼튼한데 세부적인 마감이 부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구조는 어느 정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사건이란 것들이 현실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제가 꽉 막힌 삶과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막장드라마같은 삶이, 이 뻔뻔함과 교활함이 보편적인가 하는 물음... 그렇기에 소설을 빨리 익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다 내지는 인물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이 간다 하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성이 자꾸 눈에 거슬려서 썩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돈보다는 사람, 가족을 중시하는 인물의 모습입니다. 물론 그 모습 자체가 왜곡된 모습이라고는 해도... 가족을 형성하기 위해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업는, 천륜을 저버리는 인물.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뻔뻔하게 돈을 노리고 달려드는 사람보다 심정적인 면에선 더 공감이 갈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목적이 옳다고 해도 그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순수한 목적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과정까지 순수해야 주위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어찌보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인간의 교활함과 간악함이 극에 달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왜곡된 심리는 나와 주변인들에게 비수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고요. 가족의 형성하기 위한 인물의 교묘한 술수는 결국 가족의 해체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돈을 보고 불나방처럼 남현호이 집에 모여든 다른 이들 역시 가족의 해체에 적극 기여하는 인물이고요. 결론적으로 '가족의 탄생'은 인간과 인간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말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에서는 고진 변호사가 더 중심인물인 것 같습니다. 고진 변호사가 중심인 '유다의 별'을 탈고하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쓴 소설이라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전의 작품들에서 고진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고진이란 인물의 문제해결방식도 김진구와 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작은 단서에서 천재적인 두뇌와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추리... 뭐 사실 현대추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탐정의 모습이기도 하죠. 그리고 진구나 고진 모두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도... 아무튼 작가후기에서 이 작품은 '도진기 월드'의 뼈대가 된다고 합니다. 진구와 고진, 이탁오와 진구, 이탁오의 궁극의 계획... 서두에 언급했지만 이탁오 박사와 진구, 고진이 등장하는 작품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작가의 후속작을 읽게 될 지는 알 수 없으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사건 해결과정에서 드러나는 천재적이면서 세밀한 사건 분석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다만 저처럼 추리 외의 부수적인 면을 신경쓰는 이라면 또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결국 선택과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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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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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엽기적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엽기적이지 않고 순수하고 맑은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상당히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인데 일본에서의 인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2016년 쓰타야 서점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 2016년 토한 베스트셀러 문예서 1위에 오른 책입니다. 일본에서만 78만 부 이상 판매됐다고 하니 상당히 인기있는 책임에 분명합니다. 이 책은 저자인 스미노 요루의 데뷔작으로 소설 투고 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했을 무렵, 라이트 노벨 작가인 이토 키쿠의 눈에 띄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올 여름 영화로도 개봉예정이라고...

소설의 첫 장면에서 결말이 제시됩니다. 이제 문제는 그 결말까지 얼마나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끌고 가냐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꽤 성공한 듯 보입니다. 상당히 재미있게 쭉쭉 책장이 넘어갑니다. 중간중간 엷은 웃음을 띄게도 하고 때로는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궁금함으로 책장은 빠르게 넘어갑니다. 책을 빠르게 읽는다면 4시간 정도? 천천히 읽어도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재미와 가벼움 혹은 상쾌함을 지닌 책입니다.

'나'는 지극히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그러면서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그런 내가 맹장수술의 실밥을 뽑기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발견한 공책 한 권... ‘공병(共病)문고’  몇 문장 읽고 공책을 덮었을 때 들려온 목소리. 예쁘고 명랑한 같은  반 친구(?) 사쿠라가 나타나 공책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황한 나,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짓는 사쿠라. 그리고 그녀는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의 병을 비밀로 해 달라 부탁합니다. 그 후 그녀와 나는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고 같이 도서관 도우미 역할도 하게 됩니다. 이 후에는 익히 짐작할 만한 내용-흔히 보이고 읽히는 청춘 남녀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가는-이 전개됩니다. 무한리필고깃집에도 가고 디저트뷔페도 가고 신칸센을 타고 여행도 가고... 그리고 전혀 어울리는 않는 두 남녀에 대한 친구들의 관심과 질투가 자연스럽게 생기고 연적과도 같은 존재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결말...


글쎄요... 나이가 꽤 들어서인지 사쿠라와 나의 사랑이야기가 참 맑게 다가왔습니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순수한 젊은 남녀의 모습. 거기다 죽어가는 여학생과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없는 남학생의 사랑. 한 쪽은 밝고 명랑하고 예뻐서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없어도 누구 하나 쉽게 눈치채지 못할 반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학생.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두 남녀가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물론 이 일상이 사쿠라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정말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였습니다.)... 비슷한 나이라면 가슴을 설레며 읽을 수 있고, 저처럼 나이가 꽤 됐다면 지난 청춘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며 읽을 만한 책입니다. 재미있게 읽었네요 ㅎㅎ


 

하지만 이 정도 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순수하고 안타까운 사랑에 공감하며 아쉬워하는 정도의 마음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괜찮은 책입니다. 물론 막판의 반전이나 마지막까지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지만... 그 궁금증은 왜 궁금해 했나?하는 자책을 동반할 만큼 아무런 단서나 실마리가 되지 않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영화의 맥거핀(macguffin)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작가도 이런 정도의 효과를 노리면 '나'의 이름을 숨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유치하게 다가오기는 합니다. ㅎㅎ


'사랑해'라는 말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말일 것입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이 세상 그 어떤 단어보다 순수하고 맑은 말일 것입니다.

'사랑해'라는 말을 꼭 해야 하는 순간, 미처 하지 못해서 후회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결코 남발해서도 안 되지만, 결코 아껴서도 안 되는 말입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지금 내 옆의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마음을 담아 전달해야 하는 말입니다.

'사랑해'라는 말을 피부 깊이 느끼고 싶다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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