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마지막 그림 - 삶의 마지막 순간, 손끝에서 피어난 한 점의 그림
이유리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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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은 무얼 예감했고 무얼 그렸나?'

 

그림에 조예가 없지만(아니 조예가 없기에!)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림에 관련된 책도 좋아하고요.

오직 제목에 끌려서 산 책입니다. 화가가 남긴 마지막 그림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을까가 궁금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은 4부로 구성됐습니다.

1 사랑, 그토록 간절했던 : 이중섭, 잔 에뷔테른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에드워드 호퍼, 나혜석 
2 부상당한 희망 :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펠릭스 누스바움 
3 예민한 영혼에 드리워진 덫 : 폴 고갱,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마크 로스코, 장 미셸 바스키아, 잭슨 폴록
4 화려한 성공, 뜻밖의 최후 : 카라바조, 렘브란트,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당연히 알고 있던 내용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있었습니다.(새로운 것이 훨씬 많았지만...)

책은 화가의 마지막 그림을 소개하고 화가의 전반적인 생애와 몇 작품을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파란만장했던 19명 화가의 삶의 순간들을 만납니다.

이중섭의 '돌아오지 않는 강'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생각케 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두 코미디언'에서는 마지막을 함께 하는 부부를 떠올립니다. 한 사람은 평생을 아내와 아들들을 그리워하다 객사를 하고 한 사람은 아내의 희생을 바판으로 성공한 삶을 살다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화가의 그림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인생입니다.

 

최초의 근대여성화가이지 작가였던 나혜석은 한 사람(최린)을 잘못 만나 나락으로 떨어지고 한 사람은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캐롤 앤 라우리와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인생 최대의 후원자이자 멘토를 만나 인생역전을 이룹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은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희비를 가르기도 합니다.

 

한편 장 미셸 바스키아나 잭슨 폴록처럼 자본주의의 탐욕에 의해 그 재능이 일찌감치 소진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화가들도 만납니다. 젊은 날의 감당키 어려운,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성공은 그들의 능력과 꿈을 소진시켰습니다. 알콜과 마약에 찌들은 그들의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너무나 짧고 강렬한 삶과 죽음이었기에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잭슨 폴록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내 그림은 중심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똑같은 양의 관심에 기초해 있다'(238쪽) 결국 그림의 형태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에 따라' 그림을 감상하면 되는 것입니다. 화가의 말과 생각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림이 전하는 그 느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책의 마지막에는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큰 화가들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도피생활끝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카라바조, 재능만큼이나 낭비벽이 심했던, 화려한 젊은 날을 보내 묘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빈 손으로 떠난 렘브란트, 사랑과 미의 완벽한 모습을 형상화하다 종교화를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한, 부와 명예를 누리다 가난과 고독으로 스러져간 보티첼리,

동성애자이면서도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미켈란젤로. 외모콤플렉스를 가져기에(사소한 다툼으로 코가 무너져버린...ㅠ.ㅠ.) 이를 극복하고자  정확한 인체 비례와 대칭 구도로 조각된 작품들로 균형과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한 미켈란 젤로. 하지만 그는 20대 때 조각한 이상미의 극치 '피에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론다니니 피에타'를 통해서 다시 종교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19명의 화가와 그들의 마지막 그림...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나 빈센트 반 고흐였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그의 유작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그의 마지막 작품은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뿌리(미완성 유작)'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그림을 그리던 화가가 자살을 택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반 고흐를 놀리기 좋아하던 세크레탕이라는 인물에 의한 타살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책에 소개된 그림 '나무뿌리'는 상당히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생명에의 예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림만 보면 그의 자살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점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도 많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붉은(핏빛의) 수박을 그린 그녀. 그리고 그림에 쓴 'VIVA LA VIDA(인생 만세)'. 평생 고통과 싸우며 산 그녀가 남긴 말이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있어도 살아있기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이라도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고통을 견디기에는 쉽지 않았나 봅니다. 그녀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131쪽)'이라고 남긴 것을 보면 말이지요.

 

마지막이란 말은 언제나 아련한 슬픔을 줍니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란 낭만적인 언사는 나이가 들수록 멀게만 느껴집니다. 책에 소개된 화가들 중 생전에 부와 명예를 누린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세속적 성공을 하지 못하고 죽었거나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혹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애잔함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그림은 남아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삶을 추억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흔히 '불꽃같은 삶'이란 표현을 씁니다. 이 책에 실린 화가들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 아닐까 합니다.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을 묵묵히 그린 사람들... 때론 세파에 꺾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예술혼은 그 자체로 불꽃입니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흐름을 지속하지만 타오르는 불꽃은 언젠가 사위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불은 꺼졌다. 하지만 남은 불씨는 아직도 뜨겁다'(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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