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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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이런 소설을 만났나 하는 자책이 들 만큼 인상적으로 읽은 소설집입니다. 사실 김금희라는 작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웃 리뷰에서 몇 번 보고 기회가 되면 읽어야지 했던 김금희의 소설들.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습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부터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등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당연히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가 가장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는 글을 쓰던 옛연인 양희. 그 양희를 대기업 영업팀장으로 나름 잘 나가다가 좌천돼 건물 지하에 있는 시설관리팀장으로 있는 필용이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물론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 무대 위의 인물과 관객으로 만나게 되죠.) 양희는 오늘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하지만 언제든 그 사랑이 변할 수 있다고 하는 여자. 필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여자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사랑의 순탄할 리 없습니다. 쓰라린 이별 후에 양희의 집에 찾아간 필용. 그런 필용에게 양희는 말합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그래서 양희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고 한 것일까요? 필용이나 양희나 현실에서는 어찌 보면 패배한 인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비웃음을 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필용과 양희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특히 필용은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삶을 산 것으로 보이니까요. 절망적이고 우울한 현실에서 필용이 만난 소극장 무대 위의 양희는 옛추억을 떠올리는 동시의 현재의 무력감을 잊게 하는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잊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42)’이라는 쉽지 않은 진리를 깨달은 것인지도...

 

김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가 가득한 인물입니다. 조중균이나 세실리아, 개를 기다리는 그녀나 목욕탕에 불을 지른 것으로 오해받는 김대춘이나... 그런데 그들은 그 상처 가득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그것이 내부로부터이든 외부로부터이든)을 가지고 힘들고 고단한 현실에서 끝내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작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봅니다. 메마른 감정처럼, 낡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오랜 관찰을 통해 툭툭 던지듯 문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읽기에 불편합니다.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식당 앞에 확인표를 들고 서 있는 조중균 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탁!하고 막힙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폭력의 시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에 의한 폭력, 가정 내에서의 폭력, 혹은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앞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아파하고 때로는 가해자가 되지만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타인이 당하는 폭력을 발견했을 때지요. 과연 어떤가요? 대부분 나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무관심을 가장하지는 않는지... 김금희의 소설들은 그 아픈 부분을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내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좋았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나타나는 것도 참 오랜만이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순간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모여 한 인간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 속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고 잊고 싶은 상처들도 있습니다. 또한 잊고 싶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의지도 있고요.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견고하게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세실리아처럼 성공한 듯 보이는 인물도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상처 속에서의 삶은 그것이 지금 '잊지 않음'으로 있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상처를 이겨내고서 이 굳건한 현실 위에 서 있으니까요.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니다. 다소의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나가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과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애매한 상태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우리 현실의 모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안의 상처와 억압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책을 읽은 지가 꽤 돼서 작품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간만에 상당히 몰입하면서 읽었고 여러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집이기에 뒤늦게나마 짧은 감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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