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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평점 :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LA 흑인폭동 사건으로 한참을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알게 모르게 가해지던 차별에 억눌려왔던 흑인들의 분노가 폭력적으로 표출되었던 그 사건은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파가 국내에 끼칠만큼 컸다. 내가 어렸을 때 '베버리힐즈 아이들'을 필두로한 매끈하게 빠진 미국드라마로 미국은 잘 사는 나라의 대표격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도 주인공들이 백인들이라는 점에는 일말의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온갖 민족들이 섞여사는, 흡사 인종 칵테일이라 표현되기도 하는 미국에서 언제나 백인들이 우선이었고 흑인들은 논외의 존재들이었다.
90년대에도 흑인들이 느끼는 차별은 극심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더더욱 공공연하게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졌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버스를 타는데도 백인이 앉는 자리와 흑인이 앉는 자리가 나누어져 있다니, 내 돈내고 밥 사먹겠다는 데 어디는 피부색 때문에 들어자기도 못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상황들을 혹자는 당연스레 생각했고 혹자는 무시했다. 흑인들 또한 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무감각지고 익숙해 졌고, 그 사실에 분노를 느끼는 흑인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었다. 모두가 그 긴 차별의 역사에 길들여졌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백인의 한 남성이 자신의 피부색을 과감히 바꾸고 그 차별의 현장 가운데로 뛰어든다.
피부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피부색을 바꾸고, 머리를 박박 밀어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스레 예견되는 인종주의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가족을 떠나 홀홀단신으로 미국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딥 사우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피부색이 좀 더 밝았던 때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된다. 사실 그는 자외선에 심하게 탄 것 이외에는 변한게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피부색' 하나로 자신을 단정짓고 평가하고 함부로 대한다. 여행중에 겪은 그런 경험들을 그는 일기로 기록해 놓았고, 여행이 끝난 이후에 책으로 펴냈다. 그리고 그 책 한 권이 몰고혼 후폭풍은 너무나 크고 대단했다. 그는 인종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실천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자신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차별'의 실체를 세상에 발가벗겨 꺼내놓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살해의 위협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고초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과 그의 노력은 세상사람들에게 '차별'에 대한 올바른 시선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와 그의 책으로 인해 미국의 인종 차별문제는 한 걸음 더 해결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비단 '인종차별'에만 국한된 책은 아니다. '다름'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오는 모든 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외국인과의 결혼과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도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피부색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나와는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그러한 편협한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