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르네상스?

2011년 10월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발표가 인상적이다. 자기네들이 "우수한 전통 문화의 충실한 전승자이자 인솔자"였단다. 과연 그랬던가, 뒷말이 많았다. 논쟁도 일었다. 지켜보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어차피 역사학 논문이 아니다. 중국의 향후를 더듬는 정치 선언으로 접수할 일이다.

절묘한 것은 오히려 시점이다. 신해혁명 100년이었다. 신해 이래 중국은 좌/우 불문, 반(反)전통이었다. 5·4 좌파는 동구를, 5·4 우파는 서구를 전범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 중국 공산당이었다. 신문화 운동의 탯줄에서 자라나, 문화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새 문화의 혁명을 추구했다.

표적은 고전 문명의 정수인 공자와 유학이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다. 루쉰은 유교 문명을 식인(食人)에 비유했고, 마오쩌둥은 스스로를 진시황에 빗대었다. 흡사 20세기 판 '분서갱유(焚書坑儒)'였던 것이다.

그 비난과 수모 속에서도 유학의 명맥은 이어졌다. 근거지는 중원의 밖이었다. 타이완은 대륙의 급진적 실험을 비판하며, '정통 중국', '문화 중국', '자유 중국'의 보루를 자임했다. 유학의 계승자와 보호자를 자처한 것이다. 하더라도 좌우로 양분된 정치사상을 넘보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문화적 정체성을 담지하고, 근대의 도덕적 위기를 치유한다는 수줍은 차원에 머물렀다. 치국과 평천하가 아니라 수신과 제가에 그쳤던 것이다.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구미를 풍미한 신유학의 면모가 대저 그러했다. 자유 진영의 품에서 심성을 갈고 닦는, 다소곳한 냉전형 유학으로 자족한 것이다.

작금 대륙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다시, 치국과 평천하를 담당하는 정치 유학의 부활이다. 후진타오 시대의 슬로건은 '조화 사회'였다. 유학의 언어와 이념이 관방 담론에 침투한 것이다. 때를 맞춤하여 마오보다 더 큰 공자상이 톈안먼에 들어서기도 했다. 당장 혁명 원로들과 마오파의 반발이 거셌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곧장 철거되었다.

허나 사소한 해프닝이 아니다. 왕년의 '신청년'들이 구닥다리, 늙다리가 된 것이다. 신과 구가 뒤집혀질 기미이다. 유학 붐이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은 백번 적확하다.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한 것이다. 중국의 지배 이념이 100년을 거슬러 고전 사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탓이다. 이미 세계를 누비며 중국을 선전하는 것은 '마오 어록'이 아니라 '공자 학원'이다.

신좌파의 일부는 '유가 사회주의 공화국'을 주창한다.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삼되, 전통 문명과의 결합을 꾀한다. 그래서 명실상부 '중화인민공화국', 중화 문명에 인민 공화국을 더한다는 것이다. 삐딱한 이들은 국가에 친화적인 발상이라며 눈을 흘긴다. 옳은 지적이다. 허나 유학 전통에선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재야는 국가와 척을 지며 자율성을 고수하는 시민 사회와는 다르다. 국가가 지식인을 포섭했다거나, 지식인이 국가와 타협했다는 비판은 매우 근대적인 잣대의 소산이다. 마침 우파 가운데 일부도 '유가 헌정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유학과 헌정, 민주를 결부지어 담론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어느새 좌·우 이념 구도에서 유가 내부의 학파 간 논쟁으로 재편되는 형세이다. 입장 차이는 있으되, 조정과 재야 모두 유학으로 합류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섣부른 과언일지 모른다. 그러나 맹탕 허언만도 아닐 것이다. 본디 동방의 혁명(revolution)이란 복고(復古), 즉 되돌리고(re-volve) 되살리는 것(Re-naissance)이었다. 길게 보면 꽤나 익숙한 풍경이다.

▲ 공자. ⓒ프레시안

제국의 정치철학

유학은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최장의, 그리고 최강의 정치 이념이다. 공자가 입안한 이래 여타 사상과의 치열한 대결과 경합 속에서 두 번의 1000년을 군림했다. 그것도 인구가 가장 많은 제국의 철학으로 거의 일관되게 정통 사상의 지위를 누렸다. 중국의 월등한 규모를 감안하자면, 여태 어느 사상과 이론도 그 다양하고 복잡한 제도 설계를 감당해 본적이 없다 하겠다. 그리하여 변방의 몽골족과 만주족이 중원을 제패하더라도, 그 제도적 관성만은 유구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뿐인가. 조선과 월남, 류큐 등도 중원을 모방하고자 열심을 다했다. 유럽의 근대철학을 일군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치도 동방의 '철학자 정치'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는 메이지 유신의 기저에도 주자학의 흔적이 역력했다고 실토하는 형편이다. 마침내 사무라이(士)가 칼을 접고, 붓을 든 선비(士)가 되어간 것이다. 즉 유학은 불과 100년 전까지도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권위를 지닌 굴지의 정치철학이었다.

그러나 유학은 근대와 불화했다. 도무지 인간에 대한 이해부터 턱없이 달랐다. 유학에 개인은 없다. In-dividual,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독자를 상정할 수 없었다. 인간은 자자손손, DNA 네트워크의 한 매듭일 뿐이다. 홀로 됨이 없기에, 자유나 평등 같은 추상적 관념을 따르지도 않는다. 상대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사람은 그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그물망 안에서 자리한다. 부모-자식, 아내-남편, 윗사람-아랫사람, 친구 그리고 통치자-피치자의 다섯 관계이다. 이 오륜을 벗어난 인간관계는 21세기에도 없다. 오륜을 방기하는 해탈과 구원은 패륜이라 여겼다. 여기에는 만민을 평등하게 대하는'법(law)'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륜은 맺고 끊을 수 있는 사회 계약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예'(禮)에 정과 성을 쏟아야 한다(克己復禮). 즉 예는 차등과 위계의 논리이다. 다만 오해를 고쳐둘 필요는 있다. 예가 일방향은 아니다. 왕이 왕 노릇을 못하면 왕이 아니다. 그런 왕은 목을 치고 끌어내려야 한다. 역성 혁명은 정당한 것이다. 즉 예는 쌍방을 규제하고 구속한다. 의무일 뿐 아니라, 권리이기도하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하는 예로써 군주를 압박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에 견주자면 못할 노릇이었다.

유학은 인간의 부족함과 모자람도 냉철하게 파악했다. 그럼에도 초월자에 의지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혹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똥밭일지언정 이승에서 구르자 했다. 그러나 자치와 코뮌의 낭만을 품지도 않았다. 범인이 범인을 다스리는 것은 하향평준화이다. 인간다운 생활에서 통치와 지배는 불가결하다. 그래서 통치를 필요악으로 여기는 자유주의와도 다르고, 일체의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즘과도 다르다.

도덕의 옹호자, 문명의 보증인이 정치를 해야 한다. 성인이 무위의 정치를 펼 수는 있으되, 정치적 권위가 없는 문명은 존속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통치자는 단지 힘 센 이가 아니다. 어진 사람, 덕을 체현하고 윤리적으로 빼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도리어 개방적이다. 덕은 스스로 갈고 닦는 것이지,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부와 신분의 세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일찍이 과거제를 도입하여 정치의 문호를 개방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배우고, 익히고, 익으면, 누구도 정치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는 군주는 더더욱 성인군자의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것이 유학이 추구한 민주이다. 물론 제대로 실현되었던가는 별개이다.

유학은 국가 간에도 주권과 평등을 말하지 않았다. 나라 사이의 크고 작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 명백한 사실에서 출발해 올바름을 구할 뿐이다. 이름 하여, 실학이다. 대소 간의 역할에 차이가 없을 수 없다. 자유로운 개인이 만인과 투쟁하듯, 평등한 국가는 만국과 투쟁한다. 전국 시대, 아노미와 카오스의 아수라장이다. 위계 없이는 질서도 없다. 위계 없는 평등은 혼돈일 뿐이다.

그래서 차등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차등이 형평에 맞아야 한다. 차등은 차별과는 또 다른 것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모시되, 큰 나라도 작은 나라를 섬겨야 한다. 그래야 작은 나라는 자율을 꾀할 수 있고, 큰 나라는 권위를 누릴 수 있다. 이 상호 구속의 길항이 기우뚱하면서도 역동적인 균형을 이룬다. 경쟁을 억제하고, 협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누천년 동방의 사회 진화가 도출해 낸 역사의 합리적 선택이다. 즉 사대와 사소도 쌍방을 규제한다. 이 합의가 깨어지면, 천하는 다시 대란이다. 즉 위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좋은 위계를 만드는 것이 지상(地上)의 길이다. 만국 공법과 세력 균형과는 매우 다른 접근법이다.

그래서 종족, 민족, 국가를 지고의 가치로 삼지 말라 가르쳤다. 절대 국가는 독이다. 국가는 사해가 동포이고 천하가 태평한 대동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국가도 사(私)에 그치는 것이다. 혹여 국가를 절대이성의 담지체라 여기는 헤겔식 백일몽을 꾸어서는 천만 아니 된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에 집어넣어, 하늘 아래 봉인해 두었다.

오직, 오로지, 천하만이 공(天下爲公)인 것이다. 국경 개념이 희미해져 간다는(과연 그런지는 따져 보아야겠으나…) 21세기에 찬찬히 음미해 볼 대목이다. 세계(World)와 천하(天下), 지난 100년과 1000년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볼 일이다.

민주주의의 민주화

근대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를 표방한다. 그래서 권력을 견제하고 제한하는 제도가 발달했다. 법치가 그러하고, 삼권 분립이 그러하고, 선거가 그러하다. 반면 유학은 인민을 위한 통치를 강조한다. 민본을 표방하는 정치의 장인을 길러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학습을 강조한다.

대학(大學)은 소학(小學)에서 출발한다. 하나 보면 열을 알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어릴 적 몸가짐부터 철저하게 규율하는 것이다. 그래도 권력을 접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작금 정치를 도맡는 이들이 어떻게 양성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선거로 선출된 이들과 과거(科擧)로 선발된 이들의 평균치를 비교하면 어떠할까? 단정하기 쉽지 않다.

과거를 대체한 선거마저 광고에 잠식당한 지 오래다. 올해 현장에서 지켜본 미국 대선은 역사상 가장 값비싼 선거였다. 민주, 공화 양당이 한 해 동안 쏟아부었던 비용이 세계 50위권 국가의 국내 총생산(GDP)에 해당한단다. 아연실색했다. 과연 그 비용에 합당한 사회적 결과를 산출하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지켜보는 재미는 컸다. 막판 박빙의 승부가 아슬아슬했다. 스포츠 못지않은 대중문화에 근사한 것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가 양서는 아니며, 박스오피스 1위가 명화도 아니다. 다수가 정의는 더더욱 아니다. 과연 선거가 수준 높은 정치를 담보해주는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호흡 가다듬고 생각해볼 일이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투표를 한다고 만사형통, 만병통치가 아니다. 정치의 질(quality)과 정부의 능력(performance) 등 따져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민주도 어디까지나 좋은 정치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번영을 낳았다는 통설은 기각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속하면서도 '선진국'들은 쇠퇴일로이다. 민주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식민주의 탓이었다. 민주주의는 덤이었을 뿐이다. 전 지구적 비민주가 국지적 민주를 가능케 했다. 전 지구적 민주가 증진되자 비교우위가 사라진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욕망 충족에 충실한 과잉 성장 문명의 정치 질서이다. 산업혁명 이래의 특수한 사회적 조건에 즉응한 제도적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150년의 잔치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예외 상태'였다면? 저성장과 탈성장의 자연 상태로 되돌아간다면? 미래는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이다. 그래서 민주의 신화를 해체할 필요가 있다. 민본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를 일방적으로 편들기 힘들고, 민본을 쉬이 매도하기 힘듦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냉전기만 해도 민주주의는 복수(複數)였다. 사회주의 국가도 민주주의 진영임을 자부했다. 그래서 자유 진영의 쇄신을 압박했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탈냉전 이후 더욱 경직된 셈이다. 즉 의식과 상상력의 차원에서 냉전은 그치지 않았다. 탈냉전이 아니라 냉전이 내면화된 것이다. 그래서 매사를 민주와 독재로 나눈다. 그 탓에 지구화라는 제도의 획일화가 단행될 수 있었다.

그래서 위태롭다. 무릇 뭍 생명 진화의 원천은 다양성이다. 인류의 문명 생태계가 단종재배(monocultue)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저항이 없을 수 없다. 끝내 전 지구적 99퍼센트 운동이 터져 나온 것은 다행한 일이다. 나도 기꺼이 동참했다. 다함께 LA 시청을 점령하고, 작금의 민주주의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음을 타는 목마름으로 고발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민주화'란 정당 정치 강화라는 근대의 반복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 자체를 민주화해야한다. 다른 정치, 다른 민주에 대한 상상력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아랍의 봄'을 서구식 민주주의의 확산이라 오판하고 오독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실상은 그러하지 않다.

아랍은 이슬람 문명의 재건을 향해 민주화되고 있을 뿐이다. 아랍은 서구화는커녕 나날이 이슬람화 되고 있다. 20세기를 양분했던 친서구 세속주의와 반서구 근본주의 사이에서 새 길 찾기에 나선 것이다. 진정 21세기의 출발이라 하겠다. 동아시아도 이와 방불할 것이다. 남아시아도 유사할 법하다. 저마다 고전 문명에 뿌리내린 정치 질서가 (재)굴기 하는 반전의 시대이다.

하늘 아래에 새 것은 없다.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진리는 늘 오래된 것이다. 우리가 뒤늦게 깨달을 뿐이다. 그래서 무릎을 탁, 친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이다. 근대가 전혀 다른 시대인 마냥 착각하는 것이, 근대가 유포한 가장 큰 우매였다. 이미 꿰뚫어 본 이가 있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성 모더니스트, 김수영의 일갈이다.

 

 

/이병한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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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난 기사다. 딴지일보에 대한 윤곽을 대체로 알 수 있는 정보다. 유시민과 진중권의 이름도 보인다.  

 

 줌인]딴지일보 MB가 살려냈다

2009 08/25위클리경향 839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0908201129201&cod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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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박정희에 관한 일화를 퍼왔다. 음. ..... 퍼오지 못하게 막아놓았네 ... 

주소를 붙인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7599&CMPT_CD=P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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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신문 기사를 퍼온다. 기독민주당에서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얼척이 없다.  특히 미국을 부모에 빗대어 얘기하는 것에 아연실색. 마치 조선조 시대 중화로 모신 명나라를 빗대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과연 주자학이 우리 시대에 미친 바는 무엇일까.

 

대형 교회 목사들이 창당한 기독자유민주당이 ‘좌익세력 1000명의 명단’을 올 연말께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0일 창당한 기독자유민주당의 전광훈 고문(사랑제일교회 목사)은 2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빨치산의 육신적 디엔에이(DNA)를 가진 사람 가운데 한국 정치를 장악한 이들이 1천명”이라며 “기독자유민주당 대표인 김충립 박사가 1천명 명단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충립 기독자유민주당 대표는 “좌익 활동을 통해 교도소에 살았던 사람들 명단 등을 발표해 적어도 이들이 대한민국 지도자로 뽑히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라며 “기록과 사실을 토대로 명단을 만들어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명단에는 여야 인사가 두루 포함될 예정이다. 전광훈 목사는 “이재오 전 특임장관, 박형준 대통령실 사회특별보좌관, 정동영·박지원 민주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등이 다 명단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전광훈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산주의가 좋다는 분은 당신들이 원하는 나라, 북한이 있으니 재산을 포함해 다 가져가라’고 체제 선택의 자유를 줬고 그 이후에도 공산당 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처단했다”며 “그때 처단이 무서워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간 사람들이 빨치산이고 그 빨치산의 육신적 디엔에이를 가진 사람이 한나라당 이재오, 민주당 정동영 등 1000명이나 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이들은 결국 사고나 논리에 따라 좌파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흐르는 가치관, 디엔에이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라며 “(이들이 계속 정권을 장악한다면) 대한민국에 소망 없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이들은 대부분 주한미군 철수, 예비군 철폐, 국군 10분의 1 감축,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강령으로 내걸었던 민중당 출신 인사들”이라며 “이들이 정치활동을 계속하려면 자신의 민중당 활동 등 과거로부터 전향했다는 전향의 의사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그 예로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들었다. 전 목사는 “김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 보면 내가 대학 다닐 때와 똑같은 생각 하고 있어’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건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향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정도 선언 해야지. 그말 하기 싫어서 뒤로 빠지면서 한국에서 대통령하겠다, 정치하겠다 나서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또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된 당시 국민이 마음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믿었던 사람 가운데 두 명인 이승만, 김구가 한국에 들어오는 데는 각각 두달, 세달이 걸렸다”며 “좌파가 좋아하는 김구를 한국에 올 수 있게 해준 것은 미국이었고,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 손에서 구원한 것도 미국이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미국을 부모에 빗대어 설명했다. 전 목사는 “부모님이 나를 때려도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존재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없었으면 대한민국도 없었다. 미국이 요즘 통상 문제 몇 가지 섭섭하게 한다고 해서 미국을 비난하는 것은 참 근본을 모르는 행위다”라고 설명했다.

 전 목사의 역사인식에는 냉전체제 당시 미소와의 대립관계에서 미국이 세계정치에서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38선을 획정하고, 남한단독정부를 수립하도록 한 지점은 빠져있다.

 그는 이승만 정권 하에서 일어난 보도연맹 사건 등 숱한 양민학살에 대해서도 ‘정당한 것’으로 평가했다. 전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체제 선택의 자유를 줬고 그 뒤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 것으로 이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남북 이동의 자유를 준 적이 없다. 해방 뒤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인 군정 하에서는 비교적 느슨하게 남북간 왕래를 할 수 있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도 법적으로 남북 이동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편법적으로 서로 왕래를 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싫으면 떠나라’고 한 두 마디 한 적은 있지만, 법적으로 체제를 거부하는 인사들을 보내줬다는 발언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승만 정권에서 학살된 이들은 이념과는 무관한 순수 양민이 대부분이었다. 이이화씨는 “일례로 문경 학살만을 본다면, 어린아이, 부녀자 할 것없이 그냥 가만히 밥 하던 사람도 다 데려가 총살하고 파묻는 학살을 자행했다”며 “백번 양보해서 이념이 다른 사람만 죽였다면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학살은 그야말로 순수 양민 학살이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전교조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전교조’를 연구하게 된 개인사를 털어놓았다. 전 목사는 “5년 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부시 죽여’를 방에 써 놓고, 다음날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칼로 찍고 있었다”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시켰다고 말했고, 확인해보니 그 교사는 전교조 교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부터 전교조를 철저히 연구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전교조에 전교조 성향이 아닌 선생님을 침투시켜서 회비도 많이 내게 하는 등 집요하게 조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그 교사는 전교조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가 암암리에 ‘주한미군은 침략군’ ‘이승만은 미국에서 보낸 간첩’ 등 왜곡된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이 교육으로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영향을 받았다”며 “지금의 이런 좌경화 현상은 다 전교조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자신이 기독민주당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교조에 의해서 잘못된 역사를 배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대한민국 건국사를 너무나 모르기 때문”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전 지역구에 기독민주당이 후보를 내어 ‘대한민국을 인정하느냐, 불인정하느냐’를 묻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을 견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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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칼럼을 삽질한다. 우석훈의 시각이 빛이 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근데 마지막 해결 방식을 논하는 것은 사회과학자 답지 않다.  

 

"백인 중산층은 날씬한 몸매, 흑인 가난뱅이는 뚱뚱, 우리는?" 

[우석훈 칼럼] "대학에 '과일방'을 만들자" 

 

노무현 시절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2만불 경제'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요약하면, 2만불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으니, 그 때까지만 참고 버티자는 것이다. 그 얘기는 결국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되었다. "엎드려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 그렇게 군대 간 것처럼 참고 버티라는 게, 노무현 시대를 지나 현 정부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2만불까지만 참고 버티자는 정부 운영 방침이 되었다.

자, 2만불이 되었는데, 지켜진 약속은 없다. 그 대신 우리에게 신빈곤 현상이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제 발전 초기에 존재하던 보편적 빈곤 대신에, 일정한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경제 구조적인 문제로 문제를 요즘은 '신빈곤 현상'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서점가에서 사회과학 서가 크기 만한 신빈곤 서가가 별도로 등장한 것은 벌써 몇 년째 되었다. 우리나라 교보문고에도 최근 빈곤이 별도로 분류가 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현상을 '양극화'라고 주로 부른다. 원래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등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라서 소득 빈곤화 현상을 지칭하기에는 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이 용어가 지금의 신빈곤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문제점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 현상을 '격차 사회'라고 부른다. 두 나라 사이의 차이점은, 한국에서 양극화라는 용어가 등장한 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주게 되었지만, 일본은 격차 사회라는 용어가 퍼지면서 자민당 장기 집권이 깨지고 일본 민주당 정권이 생겨났다. 묘한 차이점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것임은 물론, 이게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박복한 대통령을 만나서 국민들이 고생하는 것, 이게 안타까울 뿐이다. 선진국 경제 내에서 벌어지는 신빈곤 현상은, 지금까지는 신자유주의를 강화시켜왔던 영미계열, 유럽 경제의 약한 고리였던 라틴계열,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뚜렷한 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진짜로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번영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손을 빌린 경제 선진화 모델이라는, 노무현 중후반 이후에 추진했던 그 방향이 과연 옳은 것인가, 지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우리의 박복한 대통령이 결국 5년간의 통치를 통해서 남겨줄 것은, 엄청나게 극심해진 정부 채무와 지자체 채무, 그리고 부실해진 금융경제와 복원해야 할 수많은 시멘트 덩어리들,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다음 정권이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현 정부가 남겨주고 간 빚 덩어리 속에서 "도저히 해볼 대책이 없다"고 국채 상환하고, 긴축 재정하느라고 허리가 휠게 분명하다.

조심스러운 예상이지만, 지금이라도 경제 방어정책을 쓰지 않고 대통령과 형님 마음대로 하는 경제 운영이라면, 결국 대통령이 탈당하고 대선을 관리하는 거국 내각을 꾸리게 되었던 지난 날의 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갈 가능성이 크다. 전국을 거대한 청계천으로 만들겠다는 토건 사업이, 국민 내부에서 신빈곤 현상이 일반화되는 이 시점에 과연 옳은 것인지,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생태 파괴와 같은 고상하고 장기적인 목표와는 별도로, 토건에 의한 재정정책이 과연 지금과 같이 중장비가 투입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승수효과가 발생할 것인가, 이런 건 좀 꼼꼼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점점 더 식물 정권으로 바뀌어 갈 것이고, 대통령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 외에는 새로운 것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아마 그들도 뭔가 하는 척만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1위를 달리는 박근혜 대표처럼, 당분간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은 대통령의 실정을 노리지, 진짜로 뭔가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내년 총선 때까지, 정부 측이든, 야당 측이든, 적극적으로 반빈곤 프로그램을 제시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정치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풀 방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는 비겁하다. 박복한 대통령은 용감하고, 박근혜는 비겁하고, 손학규도 비겁하다. 내가 뭘 잘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 보다는 대통령이 뭘 못해서, 자신이 어부지리를 보겠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

자, 상황은 그런데, 지금의 신빈곤 현상을 그냥 방치해두어도 좋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우리의 신빈곤 현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게 시급할지, 논리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신빈곤 현상은 경제의 약한 고리를 먼저 타격한다. 미국의 경우는 흑인 등 유색인종이었다. 우리의 경우는 20대, 여성 그리고 지방거주민들이 그 약한 고리를 형성할 것이라는 게 내 가설이다. 여기에 보조 축으로 학력과 같은 것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10여년쯤 전에 미국에서 유색인종과 정크푸드 문제가 한참 논의된 적이 있었다. 이 문제가 미국처럼 그냥 방치되면, 빈곤형 비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결국 WASP라고 부르는 백인 중산층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날씬몸매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비만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도 벌써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형할인마트에서 대표적인 정크 푸드이며 고비만 식품피자치킨을 대폭 할인해서 팔기 시작했다. 할인마트의 포화와 신빈곤 현상이 결합되어서 이런 기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 <슈퍼 사이즈 미> 포스터

모건 스퍼록 감독이 직접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어떻게 육체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다큐 <슈퍼 사이즈 미>를 한 번 참고해서 보시면 좋겠다. 누군들 유기농 식단이 좋은 줄 모르고, 친환경 음식자기 자식에게 먹이고 싶지 않은 부모가 누가 있겠나?

정부가 자기 국민들을 버리면, 미국처럼 중산층 혹은 부유층은 극단적인 웰빙으로 가고, 유색인종 등 신빈곤 계층은 정크푸드로 연명하게 되는 지독할 정도의 식품의 하이엔드 현상이 벌어진다. 다 나라 망할 때 생겨나는 현상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가고 있다.

이런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상징적인 식품이 바로 과일이다. 정부가 신빈곤 현상을 그냥 방치하면, 과일을 먹을 수 없는 국민들이 생겨난다. 유색인종과 과일, 이건 오래된 논의 중의 하나이다. 그 현상이 한국에도 이미 벌어졌다.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복잡한 영양학 논의는 뒤로 미루자. 어쨌든 우리는 누구나 과일을 먹는 게 건강에 좋고, 특히 발달기의 어린이나 청소년일수록 더 많은 과일을 먹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 학교 급식이라는 게 도입되면서, 일단은 유소년기에 과일을 먹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는 갖추어져 있다. 과일을 복지의 척도로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과일 복지로부터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단 과일의 사각 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집에 나와 있는 20대, 즉 대학생알바 등, 이런 사람들은 과일을 먹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 용돈이나 시간당 시급 생각해보면, 사과와 같은 과일을 선뜻 집어 들기가 어렵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요즘 대학생이나 20대 강연을 하면서 최근에 과일을 언제 먹었는지 물어본다. 실제 지난 한 달 내에 과일을 먹은 적이 없다고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강연 끝나고 나오는 길에, 사실은 자신이 한 달 동안 한 번도 과일을 못 먹었다고 얘기하는 대학생들은 종종 된다. 눈물이 찔끔 나는 장면이다.

많은 유럽 국가의 경우는, 50만 원 미만의 연간 등록금을 내면서도 대학 식단에 50% 정도의 국가 보조금이 붙는다. 우리는 일부 대학에서 학생생협의 형태로 식당을 운영하지만, 그것도 대학재단이 수익성을 높일려고 자꾸 외부 케이터링 업체에 위탁하는 형편이다. 대학의 학교 식당에서 과일 구경하기가 쉽지가 않다. 교수 식당에는 과일이 나오는 곳이 많은데, 학생 식당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그렇다고 지금 대학교에 학생들 과일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보조금 주자는 얘기했다가는, 오세훈 시장 같은 인사들이 나서서 나라 망칠 포퓰리즘이라고 난리를 칠 거다. 20대 초반이면 아직 발육이 다 끝난 게 아니라서 어떻게 과일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공동체나 국가가 살펴야 하는데, 우리의 공동체는 이미 깨진지 오래이고, 국가는 지금 삽질 하느라고 아주 바쁘시다.

이 문제는 여당이나 야당 혹은 정부대책 따질 것 없이, 대학에서 조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1000만 원 이상씩 등록금을 받고 있는 대학에서, 과일방 하나 운영해주면 될 것 같다. 테이블 몇 개 놓고 과일 쌓아놓고, 친구들끼리 와서 깎아먹고 갈 수 있게 해주는데, 무슨 엄청난 돈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학생들이 하루에 사과 한 알이라도 먹을 수 있게, 과일방 하나 운영하는 건, 대학 당국에 그렇게 큰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 대학생은 그렇다치고, 시급 받는 편의점 알바 등 대학에서 과일을 먹을 수 없는 청년들의 경우는 어떻게 할까? 현재로서는 동네라고 부르든 마을이라고 부르든, 편의점 등 알바들이 있는 지역이 공동체로서의 최소한의 감성을 회복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편의점에 가면서 과일 하나, 귤 하나, 알바들에게 건네줄 최소한의 따뜻함을 아직 우리 사회가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이 넉넉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우리가 겪어나가야 할 이 미증유의 사태, 신빈곤 앞에서 국가든 공동체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럽기는 할 것이다. 아마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단기간에 큰 변화가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개인들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기도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더 가난해진다고 하더라도, 아직 발육이 채 끝나지 않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과일도 먹이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우리가 가난한 것은 아니고, 또 사람 사는 사회가 그렇게 박해져도 안될 것 같다. 과일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회, 그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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