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읽지 않은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두고 장바구니의 책들을 본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책들. 올해들어서 무거운 책을 몇개월씩 끌고 가고 가벼운 책은 주말을 이용해서 다 읽어버린다. 원저를 읽기를 시도 하고 있으나, 아직 벤야민이 시초고, 벤야민 다시 읽기를 하반기에 해야한다..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다. 작년과 올해 초는 지젝을 많이 읽었다. 어디다가 밑줄을 쳐야 할지  잘 모르겠는 책이 좋다. 몇번이고 다시 읽어서 눈에 들어오는 책. 지력을 다해서 읽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 나의 핑계이다. 술마시고 괴로워하는 시간은 있으면서 책 읽을 시간을 없다니.. 반성하자. 읽으면서 쓰고 싶은데

황병승 가야 되는데.. 가면 집에서 욕먹고, 그냥 사무실에 7시 까지 책보고 가야겠다. 운동을 한시간할까...

운동한시간 하고 집에가는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운동하면서 강신주강의도 마저 듣고..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는구나. 카톡질과 인터넷에 잦은 접속, 알라딘에 페이퍼 최소한의 할일만 하고,,

 

결국 어제 술한잔하고 열두시나 되서 집에 들어갔다. 가서 .. 피곤하다. 발바닥도 저리고.. 몸이 개운하지가 않은게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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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페이퍼들을 읽어보았다. 2007년이 처음이였고, 내 기억에 꽤 길었다고 생각했던 리뷰들은 진짜 짧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조금 세련되졌다는 것. 아직도 글의 뒷심은 항상 부족하다. 예전의 페이퍼도 잘 나가다가 마무리가 어째 좀 .....하자.. 이런 식으로 자기자신의 결심이라던가,,이렇게 끝을 맺는다. 다소 촌스럽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사람은 힘들때 글을 많이 쓰게 된다. 지금도 힘드니까 이렇게라도 순간, 순간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이들때는 심리학에서 답을 찾으려고도 하고 철학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기도 한다.

나는 묻는다. 내가 제대로 묻고 있는지.. 그 질문 자체의 숙고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질문부터 다시해야 답도 다시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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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벙커1 강신주의 늙음에 대한 간단 후기를 써본다.

전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이후의 늙는다는 것의 의미는 매우 다르다. 전 자본주의시대에 늙음의 경험이 쌓여 현자로 아랫사람에게 존경이 대상이 되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쓸모없음으로 용도폐기가 되버리기 일쑤다. 이제 경험에 따른 정보는 너무나 널려있으며, 누구도 어르신들에게 묻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 해서 최신식의 기계를 만나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벅차며, 최신상품에 소외되고 만다. 그 늙음의 폭이란 것은 점점 더 짧아져서 이제 십대, 이십대를 지난 삼십대도 최신 전자제품 사용을 배워야하며, 배우자 마자 또 새로운 상품이 계속 대체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프로그램과 기계를 매번 새롭게 배워야 하고 부끄러워야하는 상황이 오고 마는 것이다.  

강신주박사님은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였지만, 효는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도 늙고 용도폐기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부터 어르신들을 지키면 나중에 그 자리가 남아있지 않겠는가...하였다. 내가 우리엄마를 아빠를 소홀히 한만큼 우리 자식도 나한테 그렇게 할텐데.. 한편 두렵지만 기대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고... 어찌보면 냉소인데,  사실...부모님을 버리고 몇년간 잘 살아오긴 했다.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을 벗고 내 멋대로 살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그들을 챙기겠다는 말은 아니고, 이제 조금씩 챙겨야겠다는 얘기다. 쓸만큼 쓰고,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는 나누어주어야 할때. 그다지 많이 가져서 그런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냥 내 수준에서 잘 놀았다 싶다. 내 것을 좀 줄이고자 한다. 늙을 수록 더 현명하고 지혜로와 져야 한다. 내 남은 인생을 한병철도 얘기했듯이 늙지는 않고 불시에 죽어버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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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경련이 어제부터 일어난다. 왼쪽 눈꺼풀 위에 파르르,, 파르르 떨린다. 누구는 마그네슘부족이라고 하고 누구는 피로누적이라고 한다. 내 삶의 피로가 눈꺼풀 위에 앉았나.. 심한 다크써클도 그렇고 어릴때부터 종종 알던 다래끼.. 눈이 수난시대는 계속 이였다. 내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이 눈이라서 그런가.. 큰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이런 것들이 신경이 쓰이는 약하디 약한 신체. 그 약한 신체와 어울리는 정신.

 

건강함이라... 어제의 숙취로 손발이 떨린다. 혈당이 급격히 올라간듯... 이렇게 관리가 안되서 큰일이다. 술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불시에 죽기를 원하는가. 불시가 아닌 적시에 죽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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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리파이너리에서 커피마시면서 이책을 읽고 있다.

상처받은 영혼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아도르노의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은 책이다. 몇장의 셀카를 찍어본다. 어색하게 늙은 내 모습이 보기가 좋지 않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포기하자. 그렇다고 싫어할 것도 없고 당당할 것도 없고 머리속에서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명령에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보가 명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눈에 빛은 사라졌는가. 내가 가진 육신의 뇌는 어떠한다.

삶을 집도하는 집도의로서, 거친프레임에서 때로는 가벼운 유리같은 프레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삶에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답일지 모른다.

어떤 프레임을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관계 역시 유동적인 것이다.

관계라는 것 역시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다른 것을 느끼는 법.

점점 더 많은 차이들을 읽어내게 되고, 그 차이들이 모여 정보가 되기도 하지만,

정보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 밖에 모른다.

따라서 입체를 만드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조금 지어진 일부일지 모른다.

 

김유동의 해제에서 발췌해본다.

아도르노(1903~69)

 작곡가의 삶을 포기하고 학자의 길을 간 아도르노는 티 하나 없는 거울처럼 외부 세계를 온전히 자아 속에 기록하고는 ' 더 많은 주체'를 가지고 가장 깊이까지 반성하고 해석하여 이론을 만들고 사악한 전체인 사회에 맛 결을 거슬러 솔질을 하듯 저항을 한 시민의 적이면서 최후의 시민이다. 이러한 아도르노의 삶과 사상은 '20세기 문화가 자기 표현에 이른 것'이라고보아도 될 것 같다.

 

... 미나마 모랄리아의 방법은 개념적 학문이나 형상적 재현의 한계를 극복하는 글쓰기가 어떠한 것인지 보여준다.

 

자신과 외부 세계외의 견실한 관계 설정 속에서 세상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치며 삶을 일구어나가는 ' 주체'였던 예전의 개인이 후기산없사회에 오면서 무력화되고 불구화되고 있는 것이다.

 

체계의 그물망이 더욱더 촘촘해져가는 상황에서 어떤 진정한 출구도 없이 그 세상 속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또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과 그 삶의 토대인 세상을 긍정할 수 밖에없는 현대의 개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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