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은 101가지 101가지 시리즈 (동녘) 3 
공주형 지음, 조장은 그림 / 동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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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는 나.
그러나 미술관을 자주 간다는 이유만으로 그림을 전공했을 것이란 오해를 수없이 받았다.
그럴때면 <천천히 그림읽기>책 덕분이라며 망설임 없이 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서서히 그 책에 대한 기운도 떨어져가고 있는 것인지,그림을 보면 볼수록 자꾸만 벽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어서 솔직히 힘들어 하고 있는 중이였다.
<미술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은 101가지>를 만난 것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무슨무슨 방법이란 제목이 들어간 책은 무조건 읽지 않으려 하는 습관이 있었던 터라,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설명이겠거니 라는 생각도 했었고,길지 않은 내용이라서 조금 가벼운 책은 아닐까 라는 편협한 생각을 했더랬다.
서점에서 서서 몇장 넘겨 보고 말 생각이였는데,구구절절 나에게 필요한 말 같아서 냉큼 구입을 했다는 사실...

 "잘 그리는 것과 잘 감상하는 것은 별개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누구나 작가가 될수 없듯,그림 역시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을,나도 모르는 사이에,혹 그림도 잘 그려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리했었던 것 같다.이제부턴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울어진 마음은 감상의 독이다"
"어떤 미술품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판단은 전적으로 감상자의 자유다.단 좋음과 싫음을 표현할 때에도 작품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아야 한다"

편견을 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술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은 101가지>에 대해서도 이미 편견을 두지 않았던가?
예술을 바라 보는 시선 역시 매번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겠으나,마음을 열어 둔다면 어렵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도,미술이 아니라고,예술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새롭게 해 본다.
열린 마음으로 예술을 바라본다면 싫어 하는 것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게 될 테니까.
미술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혹자는 101가지의 내용이 모두 이와 같은 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101가지 속에는 예술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 지에 대한 철학과 시대를 앞선 탓에 이해받지 못한 미술사적 작품,그리고 미술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상식,그리고 어렵지 않게 설명된 미술의 용어정리까지...알토랑 같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개인적으로 그림을 보러 다니면서,나도 모르는 사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란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고맙고 고마웠다.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그림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를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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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수박 파먹는 쥐>

반가운 (?) 그림이다.
지난해 간송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한동안 눈을 땔수가 없었다.사실에 가까운 수박의 색감하며.너무사실적인 쥐들의 수박 파먹는 모습은 징그러운 것이 아니라 너무 귀여워서 오롯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던 그림이였다. 이제사 그림에 담긴 참뜻을 알게 되였으니..십년 묵은 체중까진 아니어도,무언가 알아내었다는 개운함은 분명하다.

최북,<메추라기>

분명 그림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텐데,화가의 이름이 낯설다. '최 메추라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메추라기를 잘 그렸다는 화가.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그의 메추라기 그림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메추라기의 숨은 뜻을 해석하고,그것을 화가의 삶에 빗대어 설명해 주고 있다.
옮겨 보면 이렇다.
" 한자로 메추라기 '순()'은 옷이 해지다'라는 뜻도 있다.(중략) 애꾸눈에다 해진 옷을 입고 유리걸식을 일삼아 사람들은 그를 거지 화가로 조롱했다."
화가의 그림따라 운명이 흘러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메추라기 그림을 보면서 이제 그저 귀엽다거나 혹은 평화로워 보인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다.적어도 최북의 메추라기 그림을 보면서는 그렇다는 거다. <미술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은 101가지>에서 했던 말이 계속 맴도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보여지는 것 너머의 그 무엇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권용정,<등짐장수>

최북의 '메추라기'그림을 보면서도 한 개인의 불행한 듯한 삶을 마주했다면
권용정의 <등짐장수>에서는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만나게 된다.
오라는 곳 없어도 가야 하고,무겁다고 무조건 내려 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그저 힘겨울땐 잠시 쉬었다기도 하고,조금은 천천히 가면 된다는 것을 화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릴적에 이 그림을 보았다면 등짐장수가 한없이 가엾다 느꼈을 테지만,이제는  등짐장수가 막연히 안쓰럽지만으 않다.등에 진 무게의 차이는 있을수 있겠으나,우리는 등짐장수처럼 저렇게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니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인문,<어부지리>

어부지리 고사를 옮겨 보면 이렇다.
"새는 비만 안 오면 너는 말라 죽는다고 고집했고, 조개는 입만 안 벌리면 너는 굶어 죽는다고 버텼다.그새 어부가 다가와 두 마리를 한꺼번에 챙겼다"

그림의 제목이 어부지리,니 어부지리 고사를 알고 있다면,그림에 대한 이해가 제법 쉬워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어부가 왜 저리 뛰어가나 싶었을 것 같은데..
화가의 생각인지,책 저자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어부지리를 통해 한 치 앞을 못보는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말이 가슴에 오롯이 남는다.

책을 보는 내내 나는, 책의 제목이 어째서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로 정했을까 궁금했다.
작가가 소개해 준 그림과,설명은 무엇하나 잊어버리면 안될,너무도 소중한 글과 그림이였기 때문.
해서,나는  그림을 보는 내내 무엇인가를 계속 기억하고 메모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사성어를 통해,때론 화가의 삶을 통해,선인들의 지혜를 통해,살면서 소중히 해야할 것,혹은 지켜야 할 것,버리면 안될것 들에 대해 많이 배웠다.
어려울수도 있는 이야기.
그러나 그림 한점으로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 후
간결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과 그림이였다.
옛그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만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덧붙임...순우리말에 대한 주석이 함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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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상파'이야기야,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그러나 이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였던가? 화가들 이름 좀 알고,그림 조금 알고 있다고,인상파 이야기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쳤으니.정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상주의는 어느날 뚝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것이 아니였다.그들의 그림을 비아냥하는 평론가 입을 통해 만들어진 것 같지만,실제 인상파의 역사는 길다.그들은 단순히 도전하기 위해 차별화된 그림을 그리려 한 것이 아니였다.19세기 파리가 지향하려 했던 문화,혹은 가치관 등은 그들의 그림 면면에 숨어 있었다.
<인상파,파리를 그리다>그저 감동으로만 만났거나,가벼운 스캔들로만 알았던 그림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인문학적 해석으로 다가왔다.
그림과 화가가 등장하는 것은 기존의 인상파이야기가 다를바가 없겠으나,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달랐기에,이 책을 통해서는 누구의 그림으로 바라보기 보다는,누구의 그림을 통해 당시의 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르누아르의 작품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란 작품을 보았을때,어디서 감동을 느껴야 할 지 잘 몰랐다.개인적으로 르누아르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그 감흥에 쉬이 스며들지 못했다.
그런데,이제 이 그림은 나에게 파리코뮌과 관련하여 연관지어 이해하게 된 그림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내용을 옮겨 보면 이렇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보불전쟁이 끝난 후 강화조약에 불만을 품고 만들어진  파리코뮌 지도부가 있었던 곳이 작품의 무도회장이다. 파리코뮌은 정부군의 반격으로 '피의 주일'이란 끔찍한 잔해를 남긴 책 막을 내리게 되였고...파리코뮌의 첩자로 오인 받았던 르누아르는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의 장소였다는 사실이다.저자는 위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파리지앵의 무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란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저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으려니 생각한 그림 속에 이런 숨은(?) 뜻이 있었다고 하니,감동으로는 느끼진 못한 작품이지만,당시 파리를 이해할수 있는 키워드를 그림으로 만났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밖에도 보물전쟁,혹은 부르주아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자본주의에 대해,가난에 대해서,그리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재개발정책 등등을 인상파들의 그림 속에서 찾아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왜 모네는 기차를 그렸을까? 어째서 드가는 세탁부를 그렸을까? 르누아르가 피아노치는 그림을 그린 이유는...그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였다는 사실을,인문학적 시선은 반복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발코니 하나의 소재만으로도 그것이 그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였음을 알게 되였다. 드가의 발레리나 역시 근대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라고 했으니..

파리가 변화 화고 있었던 시기에 등장한 인상파는 어쩌면 당연히 태동할 수 밖에 없는 사조였는지도 모른다.낡은 중세도시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인상파 그림을 통해서는 감동을 받았다면,인문학적 시선을 통해 내가 만난건,보불전쟁,오스망의 파리 도시 재개발 정책(이 정책 덕분에 파리 예술의 특징을 직선의 미학이라 불리기도...),부르주아,자본주의등이 그림에 어떻게 등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시선이였다.
인상파들에 대한 그림과 간단한 해석이 붙은 정도의 책일 거라 생각한 것은 나의 기우였다.요즘 들어 '드가'의 그림이 좋아서 다시 인상파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인상파의 매력이 생각 보다 훨씬 더 많지 않은가? 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 형태로 이해하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 
한명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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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성당에서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빛나는 모자이크와 각종 성물을 장식하는 귀금속과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리적인 빛은 바로 이 비가시적인 빛의 상징,바로 일자의 빛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비잔틴예술을 통해, 감동을 받은 적이 나는 아직 없다.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화려해서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왜 화려하게 보석으로 장식했을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물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그저 귀동냥으로 들은 것과 책을 통해 만난 그림에서 들었던 설명이 고작이였을 뿐.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죽음을 통한 중세미술에 대한 이해와 기하학을 통한 피라미드,그리고 미술을 통해 만난 중세미술과 바로크미술에 대한 시선이였다.
물론 요즘 나의 관심사가 중세미술과 바로크에 꽂혀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중세와 피라미드에 관한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져 가는 시간이였다.
중세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그러니까 역사적.혹은 당시의 시대적 지식 없이 예술을 바라 본다면 감동을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는 것일터. 물론,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해도 여전히 감동이 오지 않을수도 있다.그러나 시대상을 이해하게 된다면,적어도 중세미술의 특징들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이와 함께 재미있었던 시선은 기하학을 통해 바라본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파라오,그리고 내세에 대한 집착,노동자들의 죽음 정도였다.그러나 이 책을 통해 피라미드라는것이 이집트인들에게는 단순한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 아니였음을 알게 된다.이집트시대의 미술은 '죽은 자를 위한 예술'이였을 뿐.
책의 저자도 머릿말에서 언급했지만,피라미드를 이해하기 위해 학문적인 접근 방식도 필요하지만,그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전체를 아우르는 우주와 같은 철학이 아니였을까? 예를를면,철학이라든가 역사 혹은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 같은...

 책의 제목은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이였지만,나는 그보다 더 많은 시선을 만났다는 생각이다.
모나드나 진화 같은 시선은 여전히 어렵고 난해 했지만,기하학을 통해 바라본 피라미드와 죽음과 미술을 통해 바라본 중세와 바로크의 미술에서 마주친 시선은 수없이 많았다.사실 예술을 읽는데는 어쩌면 하나의 뿌리만 있어도 될지 모른다.바로 감동! 그러나 때로는 감동으로 마주하기에는 힘든,혹은 더 알고 싶은 관심이 생겨나기에,다양한 시선들이 가지처럼 생겨 나오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9가지의 시선이란 것도 생소했고,시선으로 정의되어진 이름들도 낯설었지만,그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예술을 읽는 시선들의 흥미로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어느날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불현듯 이였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어디선가 읽은 듯한 시가 떠 올랐고,반대로 시나 소설 속 한장면에서 언젠가 보았던 혹은 좋아 하는 화가의 그림이 연상되기 시작했다.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선생도 안중식의 <성재 수간도>를 보는 순간 악상이 떠올라 '밤의 소리'란 곡을 지었다고 하니,문학과 그림,혹은 음악은 모양만 다를뿐  모두 '예술'이란 한 뿌리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나는 <그림,문학에 취하다>란 책을 꽤나 흥미롭게 읽을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에겐 죄송스럽지만,나는 이 책을 보는 순간 내가 '까막눈'이 된것 같은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저자가 말하는 글과 그림을 통해 전혀 취할수 없었으니..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하나,별점을 줄 수가 없었다.
분명,한시를 충분히 이해하고,옛그림에 대한 앎이 있다면 꽤나 흥미로웠을 법도 한데,나에겐 어려웠다.
당연히,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별점을 낮게 줄수도 없거니와,반대로 훌륭해(?) 보이는 듯 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동 받지 못한 책에 별점을 넉넉하게 줄수 없는 일이 벌어 지고 만것이다.
그럼에도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조금도 대중성 있는 접근을 해주었다면,좋지 않았을까..

어디서 감동을 취해야 할지를 모르니,구구절절 힘들고 난해했음을 토로하는 것도 조금은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소감은 '어렵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밖에.
허나,훗날 다시 읽어 보고,한시와 그림에 반드시 취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