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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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책은 삶에 대한 고찰이나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보다는
좋은 부모의 모습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물론 현재의 입시위주의 교육에 대한 교육정책이라든지 학부모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현재의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진지하게는 아니어도 현재 나의 모습에 대해서 성찰하거나 반성하고 생각을 삶에 반영하고 있는가? 부모의 힘에 의해 혹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지금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저런 많은 생각에 휩싸인다. 물론 자신의 삶을 뒤돌아
나에 대해서 고찰하거나 반성할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런 생각을 겨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고 일단은 공부와 같은 일들을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예전의 나의 모습에 대해서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쉬워도 그렇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건 이제는 삶을 뒤돌아본다고 하여도
되돌릴 없다는 것이요, 과거의 삶은 미래를 위한 삶을 위해서 참고 되어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속의 한스 기벤라트는 아버지에 의해 교장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자신의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한스의 삶을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현재의 우리 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 외의 다른 사람들.. 사람들은 우리의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을 위해서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수도원에 들어간 한스의 삶은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생각일 있다.
다만 생각이 너무나도 깊었기에 마음에 병이 생긴 것을 아닌지 한다.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은 나에 대한 모습에 대해 돌아보기를 원한다. 

대학에 들어가 자유라는 이름의 방종은
우리의 현재의 우리아이들의 삶에 대해서 뒤돌아봐야 사항으로 본다..
아이들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런 물음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대학에서 취업이 안되 공부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아는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있는 여유를 가질 없다는 .. 그것은 참으로 아타깝다.)

책에서 끝의 결말이 약간 애매하게 나온다.
한스가 자살 것인지아니면 그냥 술에 취해서 사고사로 일어난 일인지 불문명하다.
다른 사람들은 한스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한스가 자살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아직은 그에게 희망은 있을 것으로 본다. 적어도 목사가 되는 수도원 생활은 아니더라도
기계공으로서의 새로운 삶에 아직까지 미적응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가 되거나 그런 비슷한 입장이 된다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것인가?
이미 정해진 순서나 방법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아니면 아이들이 원하는 삶의 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그렇다.)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아이가 원하는 그리고 바라는 것에 대해서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6 12 27 ~ 2007 1 6 읽음
                         2007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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