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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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고찰 1, 우상과 멘토

예전에 내 친구를 따라다닌 것이 있었다. 스토커라는 말은 아니고..
대학교 1학년때의 친구인데(지금도 친구, 그때와의 느낌은은 다르지만) 난 그 친구의 모습을 본받을려고 했었다.
뭐 내가 특별히 부족하다거나 행동이 이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해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그친구를 따라다닌 이유는 내가 봐서는 그 친구가 행동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본받을만하고
나에게는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따라다녔는지 모르겠다. 특별하게 배운거는 없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그 친구를 따라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게한 어떤 자극제와 같은 역할은 아니었을까 한다.
예전에는 내성적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좀 나아진 모습이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변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서는 그 친구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본받아야 겠다는 생각은 없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완벽하다거나 썩 마음에 든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본받고 나아진다는 개념보다는 나 스스로 나를 만들어간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일 것이다.

책의 데미안도 어쩌면 그런 역할을 하는 내 친구의 모습이라고 본다.
나에게는 없는 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그 누군가를 따라하고 본받으려 하는 싱클레어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아니었을까?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떠나면서 데미안을 우상화 생각하는 것으로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고민하고 고찰하면서 나의 자아실현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끝에 신처럼 우상화되어서 넘아가는 부분은 마음에 안든다. 신처럼 우상화되어질 대상은 아닐라고 생각된다.
데미안이 하는 행동들은 그냥 본받고 따라하는 우상의로서의 행동이기 보다는 타인에게 조언을 하는 멘토의 역할에 더 치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싱클레어가 사랑하는 에바부인도 멘토에 가깝다.

지금에서는 예전의 그 친구는 우상이었다. 하지만 멘토의 역할이 더 강하지는 않았을까?

      2006년 12월 19일 ~ 27일 읽고 2007년 1월 3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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