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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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고용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제는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비록 공중파는 아니라고 하나 인기 있는 드라마의 소재로도 쓰일 정도니 말이다. 2004년 공채로 채용된 KTX 여승무원들은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며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사회의 냉대였다. 그나마 법원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주는가 했지만 며칠 전 대법원에서는 결국 이들은 코레일 직원이 아니며, 불법파견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비정규직과 파견직이 생긴 결과를 반영이라도 하듯. KTX 여승무원들이 지난 10여 년 간 흘린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사회학과 출신의 강사인 저자가 강의 중에 겪은 당황스러운 사건에서 출발한다.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에서 위에서 언급한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예로 들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대단히 냉담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학생들의 이런 정서에 주목한다. 자신들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생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을 요구하디니! 대체 이 생각의 근원은 무엇일까?


과거 대학생들은 사회적 문제의 최전선에 서는 것을 자처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노동자들의 삶 자체를 바꾸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낭만이 사라진 것은 오래. 더 나아가 노동자의 삶,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들을 하나의 경쟁자로 보고 그들의 요구를 떼쓰기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여기에 끼어드는 것은 저들이야 말로 경쟁의 패배자, 자기계발에 게으른 이들이라는 판단이다. 저들은 저들의 몫을 받았다. 그러므로 저들의 요구는 정당하지 못하다.


'괴물이 되어 버린 이십대의 자화상'이라는 부제 만큼이나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씁쓸함을 남긴다. 《88만원 세대》에서는 바리케이트라도 치고, 짱돌이라도 들면서, 연대하라고 주문했지만 그 소리가 먹히지도 않는 현실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들은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가해자의 자리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은 2013년에 나왔다. 고작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스스로 속물이기를 자처하는 세대의 출현. 과연 이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누군가 말한다. 지옥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헬조선의 청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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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안동림 역주, 장자색인 수록 현암사 동양고전
장자 원전, 안동림 역주 / 현암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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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자 세미나가 끝났다. 올해 1월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1년이 걸린 셈이다. 더 빨리 읽는 방법도 있었지만 꼼꼼하게 읽는다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편을 원문을 짚어가며 읽으니 6개월이 걸리더라, 7-8월엔 내용을 정리하며 내편을 다시 읽었다. 9월부터 11월엔 외•잡편을 후루룩 읽었다. 분량으로야 외잡편이 훨씬 많지만 내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시간을 투자했다. 과연 그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오늘 세미나 회원들과 이야기하면서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역시 《장자》의 정수는 내편 7편에 있기 때문에. 반년 넘게 내편에 쏟았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다.

 

겨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혹은 7월 무더운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의 초입까지 이 무거운 책을 들고 다녔는데 이제는 손에서 놓게 되었다며 모두 즐거운 얼굴이다. 하긴 1000쪽이 넘는 책이니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매주 읽는 부분이라곤 때로는 4-5쪽, 많을 때에도 50페이지 정도를 넘는 일이 별로 없었으니. 여담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번역은 2006년 판으로 여기에는 색인 부분이 없다. 2010년 개정2판을 내면서 색인 부분을 넣었는데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다. 괜히 책을 무겁고 비싸게 만든 건 아닐까? 

 

무게와 부피 이외에도 이 책의 단점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번역문과 원문, 주석을 연이어 붙여놓았는데 번역문, 원문, 주석을 오가며 읽기엔 좀 불편한 편집이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글씨가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 분량도 많은데 책의 만듦새가 이러니 혼자서 독서할 요량으로 읽기엔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과도한 해석을 덜어내고, 읽을 수 있는 번역으로 내놓았다는 점에서는 매우 훌륭한 책이 틀림없다. 내편만 번역한 같은 출판사의 오강남 역, 연암서가의 김학주 역,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 역 등을 살펴보았는데 안동림 역보다 크게 나은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글항아리에서 최근에 나온 김갑수 역과 이학사에서 나온 그래이엄의 영역본 번역에 관심이 가나 이 두 책을 읽는 것은 당분간 미뤄야겠다. 올해의 《장자》 읽기는 그만~!

 

어제와 오늘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꿈/비전/목표가 무엇이냐고. 글쎄... 그런 것을 생각하고 살지 않고 있다. 그저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내고 싶을 뿐이다. 소박한 소망일지 모르나 연구자로 살아남고 싶기도 하다. 그것은 내 앞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윤리처럼 노력한다고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꽃밭같은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장자》의 말을 빌리면 가시나무 길을 걷는 것 같은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시밭길을 걷는 법을 장자는 일러준다. 굽이굽이 걸으라. 한편 장자식의 표현을 빌리면 길 없는 길을 가고, 발 없이 달리며, 날개 없이 날아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게 뭔 헛소리냐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있을법하다. 그러나 《장자》를 읽는 내내 그것은 단순히 허망한 말을 넘어 실재적인 지혜를 심어주며, 나아가 어떤 위로까지 선물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자》는 내게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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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 논어집주 - 주자와 제자들의 토론
박성규 옮김 / 소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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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이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주어야 할까? 쉽지 않은 일이다. 무릇 《논어》를 공부하는 데는 번역서 보다 원문으로 천천히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혼자서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원문만으로는 워낙 오리무중이라 간단한 해설이라도 필요하기 마련인데, 어떤 주석을 읽느냐에 따라 《논어》를 읽는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원문으로 읽는 것도 그럴진대, 번역문은 오죽할까? 《논어》 강의하면서 책을 선정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고민이다. 지나치게 해설이 많은 책은 읽는데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깔끔하게 번역만 되어 있는 책이 좋은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올해 몇 차례 《논어》를 강의할 일이 있었다. 청소년에게 강의할 때에는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김형찬 역을 선택했다. 크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숱한 《논어》 번역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고, 그렇기에 가장 구하기도 쉽고, 가장 보편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과는... 글쎄 잘 모르겠다. 번역문이 그렇게 좋은 것 같지도 않고, 밑에 붙은 주석이 원문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는가 하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 읽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다른 책이 떠오르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산의 미야자키 이치사다역과 올재에서 나온 이을호 역이 생각나는데 둘 다 김형찬 역보다 훨씬 낫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처음 가볍게 《논어》를 읽는 경우야 그렇지만, 마음 잡고 본격적으로 읽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선호되었던 책은 전통문화연구회의 성백효 역이다. 이른바 파란책. 현토가 붙은 만큼 전통적인 해석을 따라 번역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단점은 오늘 우리의 언어 환경과 동떨어진 번역이라는 데 있다. 읽다보면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쏭달쏭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래도 주희의 주석까지 읽으려면 이 책이 가장 좋은 책으로 손꼽혔다. 그러던 와중 소나무의 박성규 역이 나왔다. 늘 《논어》 번역이 쏟아지는 와중에 주희의 주석을 번역한 책은 찾기 어려웠던 차,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책의 특징은 '대역'이라는 이름처럼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원문이 오른쪽에는 번역문이 실려 있는 체계이다. '논어집주'라는 제목처럼 주희의 해석을 기준으로 원문을 옮겼다. 번역문은 성백효 역보다는 읽기가 수월하다. 또 하나의 장점은 밑에 《어류》 및 기타 번역, 연구서 가운데 관련 부분을 꼽아 실었다는 점이다. 본래 제목은 '주희와 제자들의 토론'이라고 붙일 생각이었다는데, 아마도 《어류》에서 《논어》에 관련된 부분을 꼽아 심도 깊게 접근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추측해본다. 여튼 결과적으로는 주희의 주석과 《혹문》 및 《어류》 등에서 관련된 부분을 충실히 싣는 형태가 되었는데 공부하는 사람으로는 매우 반가운 편집이다. 수고한 편집자에게 박수를!


이 책을 소개하면서 박성규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주자철학의 귀신론》이라는 저서 이외에 번역서만 두 권 내놓았다. 그 책도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출간한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권이 만만치 않은 책이다. 하나는 펑유란의 《중국철학사》 다른 하나는 이 책이다. 선생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논어집주》의 경우 일부에서 번역에 살짝 의문이 드는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로 좋은 번역이었다는 생각이다. 《논어》를 깊이 오래 공부할 사람이라면 꼭 옆에두고 참고할 책이 아닌가 싶다. 분량의 압박이 있지만 구구절절한 해설 없이 깔끔한 번역만으로도 이 책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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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학습만화'라는 말을 싫어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 앞에 '학습'이라는 말을 붙여 특정한 목적을 부여하는 게 싫다. '학습영화'니 '학습음악'이니 하는 말은 없는데 대체 왜 만화에 '학습'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일까? 거기에는 '만화는 공부의 방해물'이라는 낡은 사유가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지. 만화는 만화 나름대로 세계를 구축하면 될 것이다. 학습의 보조물로 사용될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또 다른 공부 재료가 될 수도 있다. 뛰어난 작품은 작품 자체로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어떤 작품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꽤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퓰리쳐 상을 받았던 것처럼 어떤 만화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하나의 텍스트로 평가 받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그랬고, 이 작품 데츠카 오사무의 《붓다》가 그렇다. 

 

이 만화를 구입했던 것은 지름신이 강림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말, 도서 정가제를 앞두고 크게 할인 행사를 했었다. 계속 눈여겨보고 있던차에 몇 권의 소설과 함께 이 책을 덜컥 사고 말았다. 덕분에 시간을 내어 헤세의 《싯다르타》와 더불어 붓다의 삶에 대해 살펴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헤세의 소설도 그렇고 오사무의 만화도 그렇지만 이게 역사적 붓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오사무가 그려내는 붓다의 이야기가 꽤 재미있으며 감동적이라는 점을 짚어두자. 불교 신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붓다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데츠카 오사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충분히 묵직한 작품이라 더욱 좋았다. 특히 생사의 문제를 붙들고 가는 고뇌에 찬 붓다의 모습은 적지 않은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이 책을 '책방 온지곤지'에 가져다 놓을 예정이다. 소장하기에는 부담스럽고 한번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놀러 와서 읽어보기를. 그러고 보니 온지곤지에 가져다 놓는 세 번째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이다. 첫째는 《아돌프에게 고한다》, 둘째는 《나의 손오공》. 안타깝게도 《나의 손오공》은 다 읽지 못했다. 동네 카페에서 읽은 《도로로》도 꽤 재미있었는데 언젠가는 구해놓아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끝판왕은 《불새》가 되지 않을까? 어서 총알을 예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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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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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구에게는 성삼위일체의 하나이자, 구원자일 것이다. 반면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모두 날조되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다. 마르잔 사트라피가 《페르세폴리스》에서 그려낸 그 이란 혁명 말이다. 미국에서 10대를 보낸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종교학을 배우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한다. 

 

무슬림이 쓴 예수 이야기라는 자체로도 매력적이지 않나? 게다가 한때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하였던 이력은 그 매력을 배로 증폭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책 내용은 '종교학'이라는 그의 전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이력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경계한 탓일까? 내용은 대체로 건조하며 학술적인 테두리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미국 종교학자의 연구서'라는 특징이 강하게 드러날 뿐이다. 저자는 대중들을 위해서 썼다고 하나 한국의 실정에 얼마나 먹힐지는 의문이다.

 

예수에 얽힌 이야기, 신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우리 풍토에서는 극단을 달린다. 한쪽에서는 이런 책을 불경하다고 배척할 것이며, 한쪽에서는 예수의 이야기에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읽는 것을 무척이나 귀찮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시 유대 사회의 뿌리 깊은 민족 운동, 열심당 - 젤롯당의 한 인물로 예수를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는 책 표지의 문장에는 하나의 표현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유대 전통에 사로잡힌'.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그의 주장이 이른바 '예수 세미나' 구성원의 연구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술술 읽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그가 그려낸 예수의 모습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건 좀 실망이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크로산이나 안병무의 예수가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책의 제목인 '젤롯'은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유명한 유닛, '질럿'과 같다. 단도를 품은 혁명당,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진하는 질럿과 대체 예수가 무슨 관계라는 말일까? 궁금하다면 책을 한번 펼쳐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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