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북 - 젊은 독서가의 초상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길목 곳곳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진해 있는 자신만의 책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책 이야기라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모자랄 것이다. 『오픈 북』에는 빛나는 유년 시절을 거쳐 열병 가득한 청년 시절을 지나는 동안 마이클 더다와 함께 성장한, 이런 시시콜콜한 책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여기, 키도 작고 뚱뚱하고 운동도 못하고 숫기도 없는 대신 이야기와 활자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마이클 더다가 생애 내내 자신을 점령한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이 책은 이민 2세인 철강 노동자 가정에서 뿔테 안경을 쓰고 촌스럽게 책만 보던 소년 더다가 세련된 지성과 뛰어난 통찰력을 갖추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여 “미국 최고의 서평가”라는 명성을 얻기까지 자신의 생애를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회고하는 마이클 더다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픈 북』이 그의 ‘책’을 이야기하는 책인지, 그의 ‘개인사’를 늘어놓은 책인지 구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의 인생은 ‘책’을 빼놓고서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고, 그가 섭렵했던 ‘책’을 이야기하려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삶’을 술술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픈 북』 갈피갈피마다 들어차 있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에는, 그가 더없이 담담하고도 메마르게 서술하려 노력했음에도 지극한 애정이 묻어난다. 가난한 노동자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열패감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이야기할 때도,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며 경품에 매달리는 어머니를 이야기할 때도,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던 내성적인 소년 시절을 이야기할 때도, 그는 어느 것 하나 감추고 싶은 개인사로 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분명,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인생을 빛나게 해주는 보석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쩌면 이토록 오래전에 지나간 황금 시절을 낱낱이 전부 다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마이클 더다의 『오픈 북』은 ‘뻔한’ 자서전의 식상한 한계를 뛰어넘어 더욱 특별해졌다. 당신이 책과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면, 마이클 더다의 ‘책 이야기’ 혹은 ‘인생 이야기’에 솔깃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당신과 생애를 함께해 온, 당신만의 특별한 책들이 줄줄이 떠오를 것이다. 또한 당신은 그 책들을 다시 들춰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지. 그러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
다니엘 월러스 글.그림, 문은실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을 휘어잡는 통솔력과 예리한 판단력, 그리고 그에 근거한 거침없는 결단력, 강인한 힘, 절로 머리 숙이게 하는 카리스마와 같은 부족장의 자질을 따진다면 로젠펠트 3세를 로젠펠트 부족의 부족장으로 도저히 인정하기 어렵다. ‘큰 사람’ 애킨스처럼. 하지만 로젠펠트 부족의 서기인 조지의 의뭉스러운 신화화 필터를 거치면,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부족하고 우스꽝스러운 로젠펠트 3세는 신격화되어 무조건적인 찬양의 존재로 거듭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로젠펠트 3세를 바라보는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의 화톳불 회의에 순진한 부족민으로 참여한다면 함께 찬양할 것이고, 사리에 밝고 영악한 애킨스로 참여한다면 헛웃음으로 그의 엉뚱한 판단과 태도를 비웃거나 가소로워할 것이다.

나는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를 읽는 내내 ‘순진한 부족민’과 ‘애킨스’의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양쪽에 발을 엉거주춤 딛고서 로젠펠트 3세의 손을 들어준 다니엘 월러스의 속내를 짐작해 보려 했다가도, 어느 순간 인과관계가 부족하여 모든 설정이 과장되어 있기만 하다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기 힘들기도 했다. 로젠펠트 3세의 백치 같은 순수함이 타인을 감화하는 진정한 힘임을 알 듯하다가도 단순히 어수룩한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물론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가 속내를 숨긴 다니엘 월러스의 능청스러운 이야기에 곧이곧대로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되는 풍자 소설의 일종임은 알고 있다.

다니엘 월러스가 로젠펠트 부족의 서기인 조지의 숯 펜을 빌려 얼마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로젠펠트 3세의 기행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가장 아름다운 부족 여인 샐리를 탐내는 호전적인 윌슨 부족을 피해 이동하다가 아버지가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실족사하는 바람에 평원을 찾아 더 이상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산비탈에 멈춰 선 로젠펠트 3세. 그는 잠을 자다가 자꾸만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부족민을 위해 평원을 찾아 움직일 생각은 않은 채 나무에 몸을 묶은 채 잠들라는 임시방편의 해결책을 내놓고, 족장으로서 위업을 세우기 위해 아무도 없는 초원을 정벌하자고 어처구니없는 전쟁놀이를 강요하며, 윌슨 부족의 침략에 나무로 위장하여 숨어 있자는 우스운 전략을 제안한다. 나는 그런 로젠펠트 3세를 애킨스의 시선으로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단번에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부족민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부족의 가장 똑똑하고 강인하며 뛰어난 전사 애킨스의 도전을 받자 로젠펠트 3세는 샐리와 함께 나눈 사랑의 추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을 때 어서 죽여달라고 외친다. “그게 말이지 나는 어떻게 돼도 괜찮아. 사실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는 상관없어. 내가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중요하지.” 그 외침 한마디가 나를 울렸고, 족장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로젠펠트 3세를 기꺼이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로 부르도록 했다.

사실 내가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에서 “오~ 그레이트”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은 캐릭터가 둘 더 있다. 바로 로젠펠트 부족의 서기인 조지와 윌슨 부족의 족장 윌슨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오~ 그레이트 조지”는 일찍이 신화의 거대한 힘을 알았던 총명한 서기였다. 그는 로젠펠트 부족의 평범한 역사를 재치 있게 과장하고 우아하게 장식할 줄 아는 필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오~ 그레이트 윌슨”은 나를 감동시켰다. 살이 흘러내려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들 만큼 비대했던 윌슨은 오로지 샐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엄청난 살들을 빼고 그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재주넘기를 해낸다. 사랑을 위해 완벽한 체형으로 거듭난 윌슨이 샐리 앞에서 당당히 재주넘기를 해보일 때는 나도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샐리의 사랑을 얻을 수 없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다니엘 월러스가 위대함의 가치를 둔 로젠펠트 3세에게도,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윌슨에게도 동시에 반했으니, 과연 나의 잘못일까? 작가의 잘못일까? 누구의 잘못이든 소설 속 인물들은 제 스스로 맑은 빛을 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매력적인 공간, 화목하지만 바람 잘 날 없는 대가족, 따뜻한 심장을 가슴속에 간직한 수더분한 이웃들, 늘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들과 조화로운 화해, 그리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결말.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 드라마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도쿄밴드왜건』도 가족 드라마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번역자의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그것은 어쩌면 내가 당연히 감지해 냈어야 할, 그리고 작가도 내가 당연히 감지해 주길 바랐을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쇼지 유키야는 “멋진 가족 드라마를 만들어준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소설을 바친다고 헌사를 남겼기 때문이다.

『도쿄밴드왜건』은 화려한 도시 도쿄 외곽에 있는 소박한 헌책방 ‘도쿄밴드왜건’을 대대로 운영해 온 홋타 일가와 이웃들의 시끌벅적한 사계절을 들여다볼 수 있는 4부작 가족 드라마이다. 서술자가 따로 필요 없는 영상 매체(드라마)에 비해 활자 매체(소설)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쇼지 유키야는 홋타 일가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세밀하게 전해 줄 서술자로 이미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서야 할 홋타 사치의 발목을 붙든다.

『도쿄밴드왜건』에 처음 내 눈길을 빼앗긴 것은 ‘헌책방’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때문이었다. 비록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을 것 같은 헌책방 이름 ‘도쿄밴드왜건’의 유래에 대해서도 “묘한 이름이지요? 메이지 18년, 가계를 열 때도 사람들이 이름이 아주 특이하다고 했다는군요.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젊은이가 간판을 올려다보고 ‘건왜드밴쿄도?’ 하고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답니다” 정도로 변죽만 울리고 말았으며, 헌책방 풍경이 생생히 어울어진 사건들이 부재했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웃음 짓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령 할머니 홋타 사치다.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홋타 일가 곁에서 떠나지 않는 그녀는 아들, 손자, 증손자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여전히 건재한 집안 최고의 어른 홋타 칸이치의 아내다. 즉 가족 관계로 홋타 사치를 설명하자면 아들의 어머니, 손자의 할머니, 증손자의 증조할머니가 되겠다. 참으로 귀여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치 할머니. 그녀가 좀더 생동감 있게 그려지지 못하고 독자에게 홋타 일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하기 위한 서술자에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사실은 자신이 부재해도 너무나 잘살아가는 가족의 행복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생생한 생을 꾸려가는 가족들 곁을 떠나 영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사치 할머니처럼 물리적인 죽음의 세계에 들어선 며느리 홋타 아키미의 존재감이 너무도 약하여 가슴 아팠다. 남편이 외도하여 낳아온 자식을 사랑으로 살뜰히 길렀다는 치하밖에 없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 외에는 ‘가족애를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작지만 소중한 감동을 던져준 소설’이라는 틀에 박힌 말 말고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다만, 불평 몇 가지를 늘어놓기 위해 사계절에 이어지는 사건들이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두겠다. 특히 ‘나미코의 백과사전’ 사건에서 아동성애자로 오해받은 켄이 사실은 알고 봤더니 나미코의 친할아버지였다더라는 설정은 너무나 진부했다. 그리고 ‘고양이 벤자민의 『15소년 표류기』’ 사건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유로운 아버지 홋타 가나토가 외치는 ‘러브’도 실은 낯간지럽고 부자연스러웠다. ‘러브’라는 외국어보다, 일본인인 쇼지 유키야라면 일본어 ‘あい’를 쓰고 우리나라 번역자라면 ‘사랑’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냥 “그래, 딱 드라마야!”라고 무릎 치며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읽어나가기에는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책이다. 어렵고 무거운 책으로 지끈지끈 골머리를 앓을 때 펼쳐 들면 홋타 일가가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이밀 것이다. 그들에게는 늘 그들이 소박하게 추적하여 해결할 ‘사실은 가슴 따뜻한 사건’들이 일어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
자크 스테른베르그 지음, 권수연 옮김 / 세계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여기 모든 이야기에 한 남자가 있고, 또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감정을 나눈다. 그 감정을 ‘사랑’ 혹은 ‘본능’ 중에서 어느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지만,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영원’에 닿지 못하고 ‘상실’로 치닿는다. 이 소설집의 원제가 “당신 없이 잠드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자크 스테른베르그,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보다 그의 아버지가 나치의 어처구니없는 만행의 모순 속에서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다는 사실이 더욱 콱 박힌다. 그도 안네 프랑크와 별다르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래서 이토록 지독한 상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에 실려 있는 단편들에 등장하는, 남자를 첫눈에 매혹하는 여자들의 모순성에서 비롯되는.

자크 스테른베르그의 아주 짧은 혹은 제법 긴 단편들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을 남자를 인정사정없이 뇌살하는 여자들의 공통점이었다. 금발 머리, 균형 잡힌 아름다운 얼굴, 호리호리한 몸매, 봉긋한 가슴, 예쁜 엉덩이, 그리고 모순적인 성격과 그에 못지 않은 모순적인 일상, 이 모든 것들이 참을 수 없는 성적 도발을 일으킨다. ‘팜므 파탈’의 화신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과, 늘 성적으로 이끌려 안절부절못하는 남자들의 줄지은 등장에, 잠깐 유치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크 스테른베르그가 자신의 성적인 이상형의 분신들을 놓고 허무한 사랑의 상실감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극단적으로는 혹시 그는 성적인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라는 의심까지. 그러나 성적 환상에 휩싸여 있어도 끈적거리지 않고 마냥 담백하기만 한 작가의 문장에는 차가운 냉소와 뜨거운 열정의 줄다리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서늘한 반전과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 있었다.

사랑은 무엇일까? 여자의 섹슈얼리티에 오로지 성적으로 집착하는 남자들과 남자의 본능적인 욕망에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아낌없이 조응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호감과 이끌림은 과연 ‘사랑’일까, ‘본능’일까 고민했다. 사실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는 성적 본능도 포함되어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사랑하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공명하고 싶은 욕심이 움트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본능의 경계는 너무도 모호하다. 그 두 가지를 나누어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본능의 커다란 범주 안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본능+ α’를 ‘사랑’이라고 여겼던 내게 자크 스테른베르그는 집합 기호가 틀렸다고 말한다. ‘사랑⊃본능’이 아니라 ‘본능⊃사랑’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 속 ‘상실’은 허무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변주된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에는 늘 불길함이 가득 차 있다. 시계관이라 이름 붙여진 시계를 닮은 이 건축물도 역시 불길함으로 가득 차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십각관에서도 그렇지만 이 시계관에서도 수많은 살인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느껴진다. 일본적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란포의 소설도 그랬고 기괴함과 잔혹함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슥슥 써내려간 것이 이채롭다. 십각관에 비하면 탐정역의 시마다도 훨씬 탐정다운 모습으로 등장했고 트릭 자체도 더 흥미롭고 설득력이 생겼다. 자명종 시계의 모습을 한 시계관에서 이름에 걸맞은 트릭과 함께 대량 살인이 펼쳐진다. 그 대량 살인은 십각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수'이다. 예전의 원한을 마음속에 새겨둔 후 시간이 지나 처절하게 복수하는 것이다. 십각관에서와는 달리 시계관에서는 복수의 이유가 한 번 꼬여 있는 것이 모든 트릭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뭐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읽어 내려가다 보면 범인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관 시리즈 중에서는 제일 유명한 작품이며 읽기에도 재미있다. 다만 시리즈 순서대로 책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만 내주기라도 하는 게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