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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레이트 로젠펠트
다니엘 월러스 글.그림, 문은실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을 휘어잡는 통솔력과 예리한 판단력, 그리고 그에 근거한 거침없는 결단력, 강인한 힘, 절로 머리 숙이게 하는 카리스마와 같은 부족장의 자질을 따진다면 로젠펠트 3세를 로젠펠트 부족의 부족장으로 도저히 인정하기 어렵다. ‘큰 사람’ 애킨스처럼. 하지만 로젠펠트 부족의 서기인 조지의 의뭉스러운 신화화 필터를 거치면,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부족하고 우스꽝스러운 로젠펠트 3세는 신격화되어 무조건적인 찬양의 존재로 거듭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로젠펠트 3세를 바라보는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의 화톳불 회의에 순진한 부족민으로 참여한다면 함께 찬양할 것이고, 사리에 밝고 영악한 애킨스로 참여한다면 헛웃음으로 그의 엉뚱한 판단과 태도를 비웃거나 가소로워할 것이다.
나는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를 읽는 내내 ‘순진한 부족민’과 ‘애킨스’의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양쪽에 발을 엉거주춤 딛고서 로젠펠트 3세의 손을 들어준 다니엘 월러스의 속내를 짐작해 보려 했다가도, 어느 순간 인과관계가 부족하여 모든 설정이 과장되어 있기만 하다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기 힘들기도 했다. 로젠펠트 3세의 백치 같은 순수함이 타인을 감화하는 진정한 힘임을 알 듯하다가도 단순히 어수룩한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물론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가 속내를 숨긴 다니엘 월러스의 능청스러운 이야기에 곧이곧대로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되는 풍자 소설의 일종임은 알고 있다.
다니엘 월러스가 로젠펠트 부족의 서기인 조지의 숯 펜을 빌려 얼마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로젠펠트 3세의 기행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가장 아름다운 부족 여인 샐리를 탐내는 호전적인 윌슨 부족을 피해 이동하다가 아버지가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실족사하는 바람에 평원을 찾아 더 이상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산비탈에 멈춰 선 로젠펠트 3세. 그는 잠을 자다가 자꾸만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부족민을 위해 평원을 찾아 움직일 생각은 않은 채 나무에 몸을 묶은 채 잠들라는 임시방편의 해결책을 내놓고, 족장으로서 위업을 세우기 위해 아무도 없는 초원을 정벌하자고 어처구니없는 전쟁놀이를 강요하며, 윌슨 부족의 침략에 나무로 위장하여 숨어 있자는 우스운 전략을 제안한다. 나는 그런 로젠펠트 3세를 애킨스의 시선으로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단번에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부족민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부족의 가장 똑똑하고 강인하며 뛰어난 전사 애킨스의 도전을 받자 로젠펠트 3세는 샐리와 함께 나눈 사랑의 추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을 때 어서 죽여달라고 외친다. “그게 말이지 나는 어떻게 돼도 괜찮아. 사실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는 상관없어. 내가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중요하지.” 그 외침 한마디가 나를 울렸고, 족장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로젠펠트 3세를 기꺼이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로 부르도록 했다.
사실 내가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에서 “오~ 그레이트”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은 캐릭터가 둘 더 있다. 바로 로젠펠트 부족의 서기인 조지와 윌슨 부족의 족장 윌슨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오~ 그레이트 조지”는 일찍이 신화의 거대한 힘을 알았던 총명한 서기였다. 그는 로젠펠트 부족의 평범한 역사를 재치 있게 과장하고 우아하게 장식할 줄 아는 필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오~ 그레이트 윌슨”은 나를 감동시켰다. 살이 흘러내려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들 만큼 비대했던 윌슨은 오로지 샐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엄청난 살들을 빼고 그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재주넘기를 해낸다. 사랑을 위해 완벽한 체형으로 거듭난 윌슨이 샐리 앞에서 당당히 재주넘기를 해보일 때는 나도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샐리의 사랑을 얻을 수 없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다니엘 월러스가 위대함의 가치를 둔 로젠펠트 3세에게도,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윌슨에게도 동시에 반했으니, 과연 나의 잘못일까? 작가의 잘못일까? 누구의 잘못이든 소설 속 인물들은 제 스스로 맑은 빛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