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
자크 스테른베르그 지음, 권수연 옮김 / 세계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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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모든 이야기에 한 남자가 있고, 또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감정을 나눈다. 그 감정을 ‘사랑’ 혹은 ‘본능’ 중에서 어느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지만,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영원’에 닿지 못하고 ‘상실’로 치닿는다. 이 소설집의 원제가 “당신 없이 잠드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자크 스테른베르그,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보다 그의 아버지가 나치의 어처구니없는 만행의 모순 속에서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다는 사실이 더욱 콱 박힌다. 그도 안네 프랑크와 별다르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래서 이토록 지독한 상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에 실려 있는 단편들에 등장하는, 남자를 첫눈에 매혹하는 여자들의 모순성에서 비롯되는.

자크 스테른베르그의 아주 짧은 혹은 제법 긴 단편들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을 남자를 인정사정없이 뇌살하는 여자들의 공통점이었다. 금발 머리, 균형 잡힌 아름다운 얼굴, 호리호리한 몸매, 봉긋한 가슴, 예쁜 엉덩이, 그리고 모순적인 성격과 그에 못지 않은 모순적인 일상, 이 모든 것들이 참을 수 없는 성적 도발을 일으킨다. ‘팜므 파탈’의 화신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과, 늘 성적으로 이끌려 안절부절못하는 남자들의 줄지은 등장에, 잠깐 유치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크 스테른베르그가 자신의 성적인 이상형의 분신들을 놓고 허무한 사랑의 상실감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극단적으로는 혹시 그는 성적인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라는 의심까지. 그러나 성적 환상에 휩싸여 있어도 끈적거리지 않고 마냥 담백하기만 한 작가의 문장에는 차가운 냉소와 뜨거운 열정의 줄다리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서늘한 반전과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 있었다.

사랑은 무엇일까? 여자의 섹슈얼리티에 오로지 성적으로 집착하는 남자들과 남자의 본능적인 욕망에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아낌없이 조응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호감과 이끌림은 과연 ‘사랑’일까, ‘본능’일까 고민했다. 사실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는 성적 본능도 포함되어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사랑하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공명하고 싶은 욕심이 움트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본능의 경계는 너무도 모호하다. 그 두 가지를 나누어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본능의 커다란 범주 안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본능+ α’를 ‘사랑’이라고 여겼던 내게 자크 스테른베르그는 집합 기호가 틀렸다고 말한다. ‘사랑⊃본능’이 아니라 ‘본능⊃사랑’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 속 ‘상실’은 허무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변주된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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