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매력적인 공간, 화목하지만 바람 잘 날 없는 대가족, 따뜻한 심장을 가슴속에 간직한 수더분한 이웃들, 늘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들과 조화로운 화해, 그리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결말.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 드라마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도쿄밴드왜건』도 가족 드라마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번역자의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그것은 어쩌면 내가 당연히 감지해 냈어야 할, 그리고 작가도 내가 당연히 감지해 주길 바랐을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쇼지 유키야는 “멋진 가족 드라마를 만들어준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소설을 바친다고 헌사를 남겼기 때문이다.

『도쿄밴드왜건』은 화려한 도시 도쿄 외곽에 있는 소박한 헌책방 ‘도쿄밴드왜건’을 대대로 운영해 온 홋타 일가와 이웃들의 시끌벅적한 사계절을 들여다볼 수 있는 4부작 가족 드라마이다. 서술자가 따로 필요 없는 영상 매체(드라마)에 비해 활자 매체(소설)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쇼지 유키야는 홋타 일가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세밀하게 전해 줄 서술자로 이미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서야 할 홋타 사치의 발목을 붙든다.

『도쿄밴드왜건』에 처음 내 눈길을 빼앗긴 것은 ‘헌책방’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때문이었다. 비록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을 것 같은 헌책방 이름 ‘도쿄밴드왜건’의 유래에 대해서도 “묘한 이름이지요? 메이지 18년, 가계를 열 때도 사람들이 이름이 아주 특이하다고 했다는군요.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젊은이가 간판을 올려다보고 ‘건왜드밴쿄도?’ 하고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답니다” 정도로 변죽만 울리고 말았으며, 헌책방 풍경이 생생히 어울어진 사건들이 부재했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웃음 짓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령 할머니 홋타 사치다.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홋타 일가 곁에서 떠나지 않는 그녀는 아들, 손자, 증손자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여전히 건재한 집안 최고의 어른 홋타 칸이치의 아내다. 즉 가족 관계로 홋타 사치를 설명하자면 아들의 어머니, 손자의 할머니, 증손자의 증조할머니가 되겠다. 참으로 귀여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치 할머니. 그녀가 좀더 생동감 있게 그려지지 못하고 독자에게 홋타 일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하기 위한 서술자에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사실은 자신이 부재해도 너무나 잘살아가는 가족의 행복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생생한 생을 꾸려가는 가족들 곁을 떠나 영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사치 할머니처럼 물리적인 죽음의 세계에 들어선 며느리 홋타 아키미의 존재감이 너무도 약하여 가슴 아팠다. 남편이 외도하여 낳아온 자식을 사랑으로 살뜰히 길렀다는 치하밖에 없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 외에는 ‘가족애를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작지만 소중한 감동을 던져준 소설’이라는 틀에 박힌 말 말고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다만, 불평 몇 가지를 늘어놓기 위해 사계절에 이어지는 사건들이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두겠다. 특히 ‘나미코의 백과사전’ 사건에서 아동성애자로 오해받은 켄이 사실은 알고 봤더니 나미코의 친할아버지였다더라는 설정은 너무나 진부했다. 그리고 ‘고양이 벤자민의 『15소년 표류기』’ 사건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유로운 아버지 홋타 가나토가 외치는 ‘러브’도 실은 낯간지럽고 부자연스러웠다. ‘러브’라는 외국어보다, 일본인인 쇼지 유키야라면 일본어 ‘あい’를 쓰고 우리나라 번역자라면 ‘사랑’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냥 “그래, 딱 드라마야!”라고 무릎 치며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읽어나가기에는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책이다. 어렵고 무거운 책으로 지끈지끈 골머리를 앓을 때 펼쳐 들면 홋타 일가가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이밀 것이다. 그들에게는 늘 그들이 소박하게 추적하여 해결할 ‘사실은 가슴 따뜻한 사건’들이 일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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