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안녕하세요? - 글래디 골드 시리즈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4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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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라킨의 『오늘도 안녕하세요?』는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 작품이다. ‘편안한’, ‘안락한’을 뜻하는 추리소설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cozy’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장르의 작품들은 기존 추리소설과는 색다른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조앤 플루크의 음식 살인사건 시리즈를 보면 그 특징이 잘 나타나는데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나 필립 말로의 터프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아마추어 탐정(일반인)이 작은 마을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 많다. 전반적인 분위기도 밝고 유쾌해서 살인사건을 다룬다고 해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하드보일드의 정 반대쪽에 존재하고 있다면 이해가 쉬울까?

코지 미스터리 작품들의 일반적인 특징 중 하나가 작은 마을이나 소도시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작품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기는 하지만,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위의 인물들이 속내를 감춘 범인이었다는 것은 유쾌함 속에 숨어 있는 아이러니다.

플로리다 실버타운의 한 아파트에 사는 글래디 골드는 그녀의 수다스럽고 개성 넘치는 친구들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글래디 골드의 가장 친한 친구인 프랜시가 죽고 그 죽음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글래디 골드는 프랜시와 다른 사람의 죽음에 수상한 공통점—모두 생일 전날 음식을 먹고 죽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하지만 경찰들은 나이 먹은 할머니의 말을 당연한 듯 무시하고 결국 글래디 골드는 그의 친구들과 탐정단(글래디 에이터!)을 만들어 직접 조사에 나서게 되고 쉽게 증거가 발견되어 범인을 잡게 된다. 하지만 너무 딱 맞아 들어가는 상황과 증거는 글래디 골드를 다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수다의 홍수에 빠졌다. 글래디와 그녀의 일당들의 수다와 엉뚱한 사건사고에 파묻혀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할머니들인가.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와 다른 친구들의 죽음을 극복하고 결국 로맨스에 빠지게 되는 글래디 골드를 보고 있으니 웃음 뒤에 슬며시 경외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리타 라킨은 주인공격인 글래디 골드가 ‘미스 마플의 오마주’라고 밝혔지만 엄밀히 이야기한다면 오마주보다는 유쾌한 패러디 같은 느낌이다. 글래디 골드와 미스 마플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미스 마플의 팬이 『오늘도 안녕하세요?』를 모두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건 작가는 미스 마플에게 즐겁고 유쾌한 방식으로 경의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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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 메타포 1
미하엘 엔데 지음, 에드가 엔데 그림, 이병서 옮김 / 메타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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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를 처음 만났던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쯤이었을 거다. 사촌들 중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내 어린 시절 추억의 책을 떠올리노라면 언제나 큰집에 아무렇게나 먼지 뒤집어쓰고 굴러다니는 책들이 생각난다. 프랜시스 버넷의 『비밀의 화원』도,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도 큰집에서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던 책들이었다. 그리고 미하엘 엔데의 『모모』까지도. 그해에도 큰집에서 『모모』를 발견하고선 눈이 번쩍 뜨였다. 생전 처음 보는 제목의 책이었지만, 큰집에서 여러 번 보물을 건진 경험이 있었던지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모』는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난 판타지였고, 무수히 피고 지던 시간의 꽃은 잊히지가 않았다. 『거울 속의 거울』도 미하엘 엔데의 매혹적인 판타지와 이어져 있다. 불친절하지만. 무의식의 어두운 심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아버지 에드가 엔데에게 헌정된 30편의 환상 단편들은 현실보다 더 섬뜩한 현실감을 지니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진실로 다가온다. 또한 『거울 속의 거울』에 담긴 미하엘 엔데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맥락 없는 꿈결처럼,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이 환상에서 저 환상으로,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넘나들며 초고속으로 진행되지만 실은 빈틈없는 메타포와 상징으로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어 그것을 해체해 보려는 뇌세포들이 비명을 지른다. 게다가 1부터 30까지 숫자로 구분되어 있는 짧은 이야기 한 편 한 편은 모두 흩어진 독립적인 조각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소한 사물 하나까지 미싱 링크를 품고서 미하엘 엔데의 우주를 이루며 맞물려 있다. 마치 거대한 톱니 기계를 이루는 무수한 톱니바퀴들처럼. 아주 작은 톱니바퀴 단 하나만 빠져도 한순간에 작동을 멈추는 톱니 기계처럼 미하엘 엔데의 세계도 아주 작은 사물의 부재조차 치명적인 붕괴를 초래한다.

그런 꿈을 자주 꾼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그림 ‘상대성Relativity’ 속에 출구나 도착점 없이 무한히 연결되는 계단들을 오르내리며 헤매는. 꿈속에서 얼마나 오래 이리저리 무작위로 계단을 옮겨 다녀도 언제나 내가 처음 출발했던 계단으로 돌아오는. ‘깨어나고 싶은 꿈’ 같은 현실을 기반으로 세워진 미하엘 엔데의 우주는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일지라도 그의 판타지는 오히려 ‘깨어나고 싶어도 결코 깨어나지지 않는 꿈’으로 현실을 무섭게 되비추며 환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영원한 부재의 순간을 맞닥뜨리기까지 부질없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미궁 같은 현실을 끝없이 헤매고 다녀야 하는 숙명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래서 『거울 속의 거울』에 맞물려 있는 미하엘 엔데의 환상 조각들은 날카로운 날을 세우며 나에게 돌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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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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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L. 세이어즈는 세계 명작 단편 추리소설을 꼽으면 반드시 들어가는 「의혹」의 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에 비견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시체는 누구?』는 작가의 처녀작이자 귀족 탐정 피터 웜지 경이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작품에는 색다른 탐정뿐 아니라 이제는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형태가 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려 깊고 유능한 하인이며 조수인 번터,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충실한 경찰이자 친구인 파커, 융통성이 없을 뿐 아니라 무능한 경찰로 대표되는 서그가 있다. 특히 귀족이자 애서가이며 고서(초판본) 수집이 취미인 부유하고 유쾌한(때로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피터 웜지 경을 탐정으로 내세워 살인 사건이 일어난 추리소설에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독특한 점이다.

평범한 건축가인 팁스의 집에서 발견된 황금 코안경을 걸친 나체의 기묘한 시체가 발견되고 부유한 유태인 사업가의 느닷없는 실종이 함께 발생한다. 피터 웜지 경은 살인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범인에 의해 깊이 얽혀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느긋하게 마음을 비우고 읽어야 한다. 요즈음 등장하는 작품들처럼 허를 찌르는 트릭이나 놀랄 만한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작품의 등장 시기가 1923년이라는 것이나 이것이 작가의 처녀작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이후 피터 웜지 경은 여러 사건을 통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니 『시체는 누구?』만으로 이 시리즈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지 않나 싶다.

이 작품에는 정통적인 방식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외에도 색다른 캐릭터가 있다. 바로 번터의 존재가 그것인데, 피터 웜지 경과 번터는 귀족과 하인인 동시에 사건에서 활약하는 콤비이기도 하다.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왓슨 역의 번터가 단순한 사건의 기록자이거나 우직한 조언자였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모시는 귀족에게 할 말을 다 할 뿐 아니라 사진 촬영과 지문을 채취하는 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모으고 증인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청취하며 탐정을 돕는 등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은 상당히 이채롭다. 이러한 구성은 후에 랜달 갤릿의 다아시경 시리즈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귀족 탐정인 다아시 경과 조력자인 마술사 마스터 숀의 관계는 웜지 경과 번터의 관계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유쾌하며 지적인, 가끔은 수다스러운 탐정을 좋아한다면 피터 웜지 경에게도 관심을 가져보시라. 첫 등장인 만큼 아직은 엉성하고 서툴긴 하지만 그의 여유롭고 즐거운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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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on the Pink
이명랑 지음 / 세계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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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애들은 왜 저럴까……’라고 한껏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벽화에도 있었다는 ‘요새 애들’이라는 우스개를 언급하지 않아도 은퇴한 노년이건, 사회에 찌들어 있는 중년이건, 고등학교 딱지를 갓 떼고 대학에 입학한 청년이건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고 무서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잠깐만 학생 시절을 기억해 보자. 예전에도 일부의 공부 잘하는 그룹,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 그룹, 또 일부의 날라리 그룹이 있었다. 지금은?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공부 그룹과 날라리 그룹 들이 조금 더 자기 역할에 충실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포르노를 보는 대신 섹스를 하고 양아치라 불리는 대신 날라리라 불리는 차이랄까. 요새 애들만 ‘저럴까’가 아니라 예전 애들도 ‘저럴까’로 불렸고 시간이 지나 미래 애들도 ‘저럴까’로 불릴 것이다. 요새 날라리만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예전 양아치들도 무서웠다. 예전이라고 우등생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양아치가 나눠 가질 수 있었을까? 추억을 포장하는 덕분에 희미해졌을 뿐이다.

이 소설은 굉장히 자극적이고 불온하다. 책 속 등장인물의 말투나 거침없어 보이는 행동들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기엔 아찔하고 거북해 보일지 모르지만 요즘 날라리들의 일상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자극적이고 성적인 말투나 상스러운 욕은 굳이 날라리가 아니더라도 요즘 학생들의 일상어가 아니던가.

우연히 학교 짱으로 등극하고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조금씩 더 타락해 가는 소심했던 정아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금 밖으로 자신들을 내몬 세상에 대한 외침, 상처와 실수로 얼룩진 계단을 밟고 나아가는 자신들의 이야기, 무관심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들어달라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날라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며, 날라리들은 거짓된 세상의 관심과 사랑을 거부한다.

작가는 날라리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정아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자신을 짱의 자리에 올려준 ‘쇳조각(칼)’을 버리고 세상의 중심을 향해 달려 나갔다. 세상을 향해 몸을 던져 일탈했지만 결국 금 안의 세계가 가장 평범한 것임을, 그 세계에 맞서는 것이 자신의 길임을 깨달았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되고 싶어서.

책의 표지처럼 청춘은 어지럽거나 뿌옇다. 필요한 것은 줄을 맞추어서 출구를 찾아주려는 사회와 기성세대들의 욕심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나올 수 있도록 빛을 비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영 빠져나올 수 없게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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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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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필멸의 인간이 모두 공평하게 맞아들여야만 하는 불가항력의 운명이다. 팀 보울러의 『리버 보이』는 그런 죽음을 대하는, 죽어가는 자와 그자를 보내고도 삶의 한가운데에 남는 자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은 그 당사자만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 특히 가족과 친구도 있다. 그들도 그를 영면의 세계로 떠나보내면서 죽음을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다.

제스네 가족은 생의 끝자락을 향해 치닫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행길에 동행한다. 그 여행은 화가인 할아버지가 자신의 마지막 그림인 미완성작 ‘리버 보이(river boy)’를 마무리하여 삶을 완성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또한 제스네 가족이 할아버지와 함께한 삶을 반추하여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할아버지가 죽음에 입문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두 삶을 갈라놓는 죽음의 문 앞에서, 할아버지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 문을 넘어 사자(死者)의 세계로 들어서고 제스네 가족은 슬프지만 그래도 이어가야 할, 아직은 남아 있는 자신의 생을 살아가기 위해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그 문을 등지고 생자(生者)의 세계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먼저 들어선 죽음의 문은 필연코 언젠가 제스네 가족도, 그리고 아직은 살아 있는 우리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산 자도 무시로 자신 아닌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기 죽음을 살아 있는 내내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생의 열기로 숨 막힐 듯한 이 세상 곳곳에 죽음이 삶과 어깨를 결은 채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안간힘으로 산골 벽촌에 있는 고향을 찾는다. ‘리버 보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긴 했지만 ‘소년’ 없이 ‘강’으로 캔버스를 메운 미완성작을 들고. 그곳에서 제스는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할아버지의 곁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키면서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걸음을 이끈 강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리버 보이를 만난다.

‘리버 보이’는 소년 시절의 꿈을 간직한 할아버지의 분신이다. 강의 시원에서 강줄기를 타고 바다까지 힘차게 수영해 가는. 리버 보이는 결국은 아름다운 바다에 이르는 강을 일생에 비유한다.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고 강한 햇살을 만나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그리고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라고 단호히 말하는 제스에게 “아름답지 않은 건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라고 담담히 알려준다.

소년 시절 할아버지의 꿈, 리버 보이는 늙은 육신 대신 강이 탄생하는 시원에서 강이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바다까지 마지막 수영을 한다. 할아버지에게 ‘리버 보이’를 완성한다는 것은, 죽음이 자신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죽음이 삶을 놓을 수밖에 없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새 삶을 준비하는 통과제의임을 의미한다.

팀 보울러의 『리버 보이』는 충분히 아름답다. 작가가 형상화하려는 주제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작가의 주제를 구현하는 ‘리버 보이’의 신비로운 존재감이 너무나 약하다. 또한 교과서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교훈’에 치중하고 있다. 노골적인 ‘교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리버 보이』의 다른 장점들이 그만큼 묻힐 수밖에 없다. 나의 박한 별점은 순전히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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