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은 필멸의 인간이 모두 공평하게 맞아들여야만 하는 불가항력의 운명이다. 팀 보울러의 『리버 보이』는 그런 죽음을 대하는, 죽어가는 자와 그자를 보내고도 삶의 한가운데에 남는 자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은 그 당사자만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 특히 가족과 친구도 있다. 그들도 그를 영면의 세계로 떠나보내면서 죽음을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다.
제스네 가족은 생의 끝자락을 향해 치닫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행길에 동행한다. 그 여행은 화가인 할아버지가 자신의 마지막 그림인 미완성작 ‘리버 보이(river boy)’를 마무리하여 삶을 완성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또한 제스네 가족이 할아버지와 함께한 삶을 반추하여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할아버지가 죽음에 입문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두 삶을 갈라놓는 죽음의 문 앞에서, 할아버지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 문을 넘어 사자(死者)의 세계로 들어서고 제스네 가족은 슬프지만 그래도 이어가야 할, 아직은 남아 있는 자신의 생을 살아가기 위해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그 문을 등지고 생자(生者)의 세계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먼저 들어선 죽음의 문은 필연코 언젠가 제스네 가족도, 그리고 아직은 살아 있는 우리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산 자도 무시로 자신 아닌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기 죽음을 살아 있는 내내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생의 열기로 숨 막힐 듯한 이 세상 곳곳에 죽음이 삶과 어깨를 결은 채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안간힘으로 산골 벽촌에 있는 고향을 찾는다. ‘리버 보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긴 했지만 ‘소년’ 없이 ‘강’으로 캔버스를 메운 미완성작을 들고. 그곳에서 제스는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할아버지의 곁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키면서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걸음을 이끈 강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리버 보이를 만난다.
‘리버 보이’는 소년 시절의 꿈을 간직한 할아버지의 분신이다. 강의 시원에서 강줄기를 타고 바다까지 힘차게 수영해 가는. 리버 보이는 결국은 아름다운 바다에 이르는 강을 일생에 비유한다.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고 강한 햇살을 만나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그리고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라고 단호히 말하는 제스에게 “아름답지 않은 건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라고 담담히 알려준다.
소년 시절 할아버지의 꿈, 리버 보이는 늙은 육신 대신 강이 탄생하는 시원에서 강이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바다까지 마지막 수영을 한다. 할아버지에게 ‘리버 보이’를 완성한다는 것은, 죽음이 자신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죽음이 삶을 놓을 수밖에 없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새 삶을 준비하는 통과제의임을 의미한다.
팀 보울러의 『리버 보이』는 충분히 아름답다. 작가가 형상화하려는 주제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작가의 주제를 구현하는 ‘리버 보이’의 신비로운 존재감이 너무나 약하다. 또한 교과서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교훈’에 치중하고 있다. 노골적인 ‘교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리버 보이』의 다른 장점들이 그만큼 묻힐 수밖에 없다. 나의 박한 별점은 순전히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