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독깨비 (책콩 어린이) 1
알렉스 쉬어러 지음, 원지인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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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주 긴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 싶을 때가 있다. 꼬꼬마일 때부터 무엇이든 내 뜻대로 잘 안 되면 불쑥 그런 마음이 치솟았다. ‘시간을 훌쩍 타고 넘으면 지금 같은 문제는 다 해결되고 평온해지겠지. 그때는 모든 일이 내 중심으로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릴 거야.’ 그런 마음으로 먼 훗날을 상상하며 지금의 나를 떠나 있었다. 10년도, 20년도, 30년도, 아무리 긴 시간도 두렵지 않았다. 누구에게 뭉텅 잘라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나쁘기 그지없는 ‘지금’만 벗어날 수 있다면.

하지만 내게서 당장 사라져도 아쉬울 것 없었던 무한정의 시간은, 내가 자라면서 점점 줄어들고 내게 남은 한정의 시간을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옛날 거칠 것 없을 줄만 알았던 미래를 현재로 사는 나는, 언제 어느 때든 삶은 나쁘기 그지없는 ‘지금’이 흩뿌려진 지뢰밭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떼어내도 ‘지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나쁘기 그지없는 것만 같은 ‘지금’에 좋은 시간, 기쁜 자리도 함께 숨어 있다는 위안까지.

알렉스 쉬어러의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에 나오는 칼리와 메르디스도 시간의 두려움을 모르는 꼬마 소녀들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하고 죽음을 코앞에 둔 마녀에게 생기 가득한 몸을 빼앗기기 전에는. 그렇게 남은 시간이 많은 몸을 빼앗아 얼마나 오래도록 자신의 시간을 연장해 왔는지 모를 마녀의 생기 빠진 몸을 대신 갖게 되기 전에는. 순식간에 시간을 도둑맞아 소녀에서 할머니로 살아갈 처지에 놓인 칼리와 메르디스는 생기를 다한 육신의 불편한 고통뿐 아니라 좋은 일과 나쁜 일도 겪으며 시간을 차곡차곡 밟아 나이가 드는 것도 소중한 기회임을 알게 된다.

시간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던 소녀가 성큼성큼 자라서 문득 뒤를 돌아본다. 똑딱똑딱 지나온 시간의 기억들은 군데군데 좀먹어 넓게 놓인 징검돌처럼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순식간에 빛의 속도로 먼 어제에서 오늘, 지금, 여기에 선 듯, 그냥 줘버리고서는 억지로 빼앗긴 듯. 남은 시간 동안은 내 소중한 시간을 스스로 빼앗는 마녀로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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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존 (양장, 한정판) 오멜라스 클래식
올라프 스태플든 지음, 김창규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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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인디고 칠드런Indigo Children’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남색의 오라을 타고 태어나는 현재의 인류를 대체할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반사회적이며 자신을 고귀하게 생각하고 창조적이고 천재성을 지닌다. 그레그 베어의 『다윈의 라디오』나 게임 ‘인디고 프로페시’ 등이 이들을 흥미롭게 다룬 작품들이다. 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 역시 새로운 인류를 이야기한다. ‘호모 슈페리얼Homo Superior’이라는 초인류를 다룬 최초의 작품이며 이후 발표된 모든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존의 아버지의 친구이자 존에게는 충실한 사냥개로 취급되는 현 인류인 나의 기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미숙아로 태어난 존 웨인라이트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현 인류의 문제점을 겪으며 자기와 같은 동료를 모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렸다.

존과 그들의 동료는 초인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슈퍼 히어로(과학의 힘이나 외계의 힘, 유전자적 변형으로 힘을 얻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이 작품이 슈퍼히어로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의심할 수 없지만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제3의 존재인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다음 세대의 인류다. 존이 현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를 경멸하면서도 때때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도 ‘호모 슈페리얼’ 역시 인간에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의 일대기를 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존에게 심부름꾼이며 사냥개 취급을 받는 나는 현재의 가치관에 반하는 존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현 인류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존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호기심을 느낀다.

존이 현 인류를 경멸하는 것처럼 현 인류 역시 새로운 인류를 거부하고 두려워한다. 그들은 정상적인 외모를 가지지 못했고 반 사회적이며 천재적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존의 세계가 결국엔 현 인류에 위협이 되리라 판단해서 그들을 말살한다. 호모 사피엔스란 과거에서 절대 교훈을 얻지 못하며 증오로 뭉친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존의 분석이며 현대 문명을 보는 올라프 스태플든의 시각이기도 하다.

1935년에 발표된, 무려 73년이 흐른 지금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독특하다. 73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과 다른 것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상한 존』은 조화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와 공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한다. 존이 말한 인류의 재창조 계획이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결국 현재의 인류 스스로 변화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 변화에는 물론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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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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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중국소설의 특징인지, 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풍자소설의 장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둥시의 소설집 『언어 없는 생활』의 다섯 중편 모두에는 극단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씁쓸한 해학과 위트로 작가가 꼬집는 현실 사회의 단면들이 비틀어져 있다. 그 단면들의 실체는 호러보다 잔혹하기 그지없어 읽는 내내 불편하고, 과장된 극단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이건 좀 심한 설정 아니야?’라고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되비쳐내는 진실들은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표제작인 「언어 없는 생활」은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 능력(보고 듣고 말하는 능력) 중 딱 한 가지만 부족한 세 사람이 사회와 어우러지는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힘겨운 희망이 어떻게 어그러지는가를 보여준다. 표지에는 각자 능동적으로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닫는 세 사람이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듣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못 보는 장님 아버지와 보고 말하지만 아무 소리도 못 듣는 귀머거리 아들, 보고 듣지만 아무 말도 못 하는 벙어리 며느리일 뿐이다. 딱 한 가지 능력만 부족할 뿐인데도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섬으로 고립시킨다. 그들이 각자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을 서로에게서 메우면서 절묘하게 세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춘 한 사람의 역할을 해내도 말이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부족한 하나는 나보다 열등하여 무시해도 괜찮은 빈틈일 뿐이다.

「느리게 성장하기」에도 하나 부족한 마슝이 등장한다.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룩거리게 되자 숨기고 싶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사회의 얕잡아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마슝은 자신의 결핍을 감추는 방법을 선택한다. ‘비록 절름발이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하고 과시하기 위함인 듯 그악스럽게 살아간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종용한다.

「살인자의 동굴」은 살인자 아들 모우즈를 끝까지 숨기려는 어머니 친어의 애끓는 모정을 그려낸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 심지어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 모우즈를 찾아 고발하려는 아버지와 형제의 눈을 피해 어머니 친어는 ‘자신만 알고 있는 동굴’에 감추고 나날이 생명이 꺼져가는 아들 모우즈를 거둔다. 처음에는 비뚤어진 모정처럼 보였다. 아들이 저토록 참담한 지경에 이르도록 ‘동굴’에만 숨겨두지 말고 차라리 자수시켜 형벌이 감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중국의 형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살인은 살인으로만 갚는다면 친어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어만 아는 동굴, ‘자궁’은 아들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일 터.

「음란한 마을」은 거리낌없이 몸을 팔아도 부끄럽지 않은 창녀촌에서 유일하게 교육받은 치우위의 탈출기다. 몸을 팔아 자기 학비를 댄 어머니까지 모멸하던 치우위는 창녀촌에서 탈출하길 꿈꾸지만 세상 어디든 음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마도 치우위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옌안’도 똑같을 것이다. 다만 창녀촌에서 극대화되어 있을 뿐.

「시선을 멀리 던지다」에는 술꾼에 게으름뱅이, 철면피인 남편과 이혼하지도 못한 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만 바라보며 박복하게 살아가는 리우징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배 곯지 말라는 염원을 실어 도시에 사는 고모 손에 억지로 딸려 보냈다가 고모가 자기 아들을 팔아넘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전 재산을 털어 아들을 찾지만, ‘운동화’로 대변되는 도시의 풍요로움을 이미 맛본 아들은 이제 어머니 리우징의 곁을 스스로 떠난다. 억척스럽게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를 지켜온 리우징에게 남은 것은 자기 자신조차 없는 허탈함뿐이다.

『언어 없는 생활』에 수록된 다섯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이것들은 그저 사족에 불과하다. 둥시의 불편한 진실이 잘 버무려진 이야기들은 직접 읽어봐야 얼마나 씁쓸한지, 얼마나 가슴 아픈지, 얼마나 잔혹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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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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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삶을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여과 없이 투명하게 담아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 삶처럼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사람의 눈과 머릿속 의식을 통과한 현실은 그 순간부터 재구성된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무장할 수 있는 과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상상의 공간에 속하는 ‘미래’는 언급할 것도 없겠지.

영화든 소설이든, 심지어 다큐멘터리나 뉴스든, 한 장의 사진이든 조금은 더하고 조금은 덜하며 실제 삶을 좀더 극적으로 과장한다. 좀더 기쁘게, 좀더 슬프게, 좀더 활기차게, 좀더 무료하게, 좀더 사랑스럽게, 좀더 예쁘게, 좀더 다정하게, 좀더 추하게, 좀더 비참하게, 좀더 파란만장하게……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삶의 측면만을 골라 부각하고 축소하며 재단하여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서 ‘좀더’의 수위에 따라 얼마나 실제 삶에 가깝게 담아내느냐가 판가름 날 것이다. 아무리 실제 삶에 근접해도 0.000000……1 차이의 짝퉁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혹여 실제 삶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판박이라면 누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뉴스에 귀 기울이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겠는가. 그저 살고 말면 되지. 우리는 늘 실제 삶, 그 이상을 꿈꾼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은 더구나 ‘영화’ 같은 ‘소설’이니, 현대 인간의 삶을 기반으로 했다 해도 그 괴리감이 크다. 하지만 그 괴리감만큼 흐뭇하게, 행복하게, 재미있게 읽힌다. 『영화처럼』에는 모두 5편의 중∙단편이 들어 있는데, 소설의 제목처럼 각각의 영화가 한 편씩 ‘테마곡’처럼 흐른다. 그리고 다섯 편의 소설, 다섯 편의 영화가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로 향하면서 독립적이었던 이야기들이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는 연작소설의 커다란 테두리를 두른다.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친구 ‘나’와 ‘용일’(※「태양은 가득히」), 유서도 남기지 않고 불현듯 자살한 남편의 기억을 극복해 가는 여자 ‘나’와 그런 그녀를 도와주고 사랑하는 나루미(※「정무문」), 속물인 변호사 아버지 곁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는 ‘이시오카’와 살인자 아버지의 피가 자신의 몸속에도 흐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정체된 싦을 살다가 그런 그녀를 도와주며 사랑하게 된 ‘나’ (※「프랭키와 자니」), 부모의 이혼 위기감을 영화로 달래는 꼬마 ‘유’와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한 대가로 가족을 잃고 복수의 순간을 기다리는 ‘아줌마’ (※「페일 라이더」), 한평생 사랑한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의 슬픔을 위로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도리고에 집안’ (※「사랑의 샘」)은 모두 한동네나 그 언저리에서 살며 비디오 가게 ‘힐츠’에 들르고 영화 ‘로마의 휴일’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보고, 시시한 프랑스 불륜 영화에 불평하면서 우정과 사랑과 신의를 키운다. 불행했던 시작이 급격하게 행복한 끝으로 맺어지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가감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영화’ 같은 ‘소설’인데 뭐 어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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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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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이중 반전으로 광고하는 책들은 장단점을 동시에 지닌 듯싶다. 반전에 대한 기대감이 오히려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집중력을 감소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제목마저 『그날 밤의 거짓말』이라니. 이 얼마나 의심스러운가. 다행히도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은 네 사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의심은 네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 해도 될 것이다.

국왕암살 음모로 잡힌 인가푸 남작, 시인 살람베니, 병사 아제실라오, 그리고 어린 나르시스 이 네 명은 사형 집행일 전날 감옥의 사령관인 ‘총잡이’ 콘살보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불멸의 신’이라 불리는 그들의 배후자의 이름을 단 한 명이라도 적어 내면 네 사람 모두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사형을 집행할 단두대가 설치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방안에 모인 네 사람은 유명한 산적인 치릴로 수도사를 만나게 된다. 불안과 동요로 갈등하는 네 사람을 본 치릴로의 제안으로 살아 있는 마지막 날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것이 비록 꾸며낸 이야기, 거짓말일지라도 말이다.

가장 어린 나르시스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꺼낸다. 절대 잊을 수 없는 행복했던 순간, 첫눈에 반한 부인과의 사랑을 추억한다. 인가푸 남작은 30분 늦게 태어난 쌍둥이 동생과의 애증을 이야기한다. 쌍둥이지만 너무 다른 자신에 대한 분노, 마침내 자신을 변화시킨 동생의 죽음과 이제 곧 그의 곁으로 갈 수 있는 안도감을 이야기한다. 병사인 아제실라오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나고 병사가 되었으며 평생 찾아 다녔던 아버지의 존재와 그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한다. 시인 살람베니는 남편이 사망한 공작부인과 그의 어린 아들과의 추억담을 말하며 시를 읊는다.

하지만 네 명의 사형수는 거짓말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도 애증도 분노도 모두 잘 포장된 거짓말이었다. 네 명은 배후자의 이름을 적지 않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한 『그날 밤의 거짓말』 속의 거짓을 간파한 치릴로 수도사도 그 속에 엄청난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실은 무엇인가. 여러 겹으로 숨겨진 진실은 감옥 사령관 콘살보의 마지막 편지에 드러나게 되고, 그들이 한 거짓말이 어떤 의도였는지도 밝혀진다.

거짓(죽음)과 진실(삶)의 경계는 무엇일까. 네 명의 사형수는 진실을 위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고 치릴로 수도사는 그 거짓을 간파하고 숨겨진 진실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숨겨진 진실이 또 다른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외치는 크레타인의 말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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