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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실제 삶을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여과 없이 투명하게 담아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 삶처럼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사람의 눈과 머릿속 의식을 통과한 현실은 그 순간부터 재구성된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무장할 수 있는 과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상상의 공간에 속하는 ‘미래’는 언급할 것도 없겠지.
영화든 소설이든, 심지어 다큐멘터리나 뉴스든, 한 장의 사진이든 조금은 더하고 조금은 덜하며 실제 삶을 좀더 극적으로 과장한다. 좀더 기쁘게, 좀더 슬프게, 좀더 활기차게, 좀더 무료하게, 좀더 사랑스럽게, 좀더 예쁘게, 좀더 다정하게, 좀더 추하게, 좀더 비참하게, 좀더 파란만장하게……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삶의 측면만을 골라 부각하고 축소하며 재단하여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서 ‘좀더’의 수위에 따라 얼마나 실제 삶에 가깝게 담아내느냐가 판가름 날 것이다. 아무리 실제 삶에 근접해도 0.000000……1 차이의 짝퉁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혹여 실제 삶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판박이라면 누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뉴스에 귀 기울이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겠는가. 그저 살고 말면 되지. 우리는 늘 실제 삶, 그 이상을 꿈꾼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은 더구나 ‘영화’ 같은 ‘소설’이니, 현대 인간의 삶을 기반으로 했다 해도 그 괴리감이 크다. 하지만 그 괴리감만큼 흐뭇하게, 행복하게, 재미있게 읽힌다. 『영화처럼』에는 모두 5편의 중∙단편이 들어 있는데, 소설의 제목처럼 각각의 영화가 한 편씩 ‘테마곡’처럼 흐른다. 그리고 다섯 편의 소설, 다섯 편의 영화가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로 향하면서 독립적이었던 이야기들이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는 연작소설의 커다란 테두리를 두른다.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친구 ‘나’와 ‘용일’(※「태양은 가득히」), 유서도 남기지 않고 불현듯 자살한 남편의 기억을 극복해 가는 여자 ‘나’와 그런 그녀를 도와주고 사랑하는 나루미(※「정무문」), 속물인 변호사 아버지 곁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는 ‘이시오카’와 살인자 아버지의 피가 자신의 몸속에도 흐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정체된 싦을 살다가 그런 그녀를 도와주며 사랑하게 된 ‘나’ (※「프랭키와 자니」), 부모의 이혼 위기감을 영화로 달래는 꼬마 ‘유’와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한 대가로 가족을 잃고 복수의 순간을 기다리는 ‘아줌마’ (※「페일 라이더」), 한평생 사랑한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의 슬픔을 위로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도리고에 집안’ (※「사랑의 샘」)은 모두 한동네나 그 언저리에서 살며 비디오 가게 ‘힐츠’에 들르고 영화 ‘로마의 휴일’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보고, 시시한 프랑스 불륜 영화에 불평하면서 우정과 사랑과 신의를 키운다. 불행했던 시작이 급격하게 행복한 끝으로 맺어지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가감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영화’ 같은 ‘소설’인데 뭐 어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