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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직장에서도 나보다 많은 월급에 승진도 잘하고, 가정에서도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아내를 둔 남편 ‘나’의 ‘반은 엄살, 반은 진심’ 이야기가 다비드 아비께르의 『오, 나의 마나님』에 가득하다. 아내의 월급이 인상될 때 나의 월급은 깎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아내가 승진할 때 나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면 고맙기 그지없다. 가정 밖의 주도권을 아내에게 빼앗겼다. 결혼 전에는 혼자 생활하면서 요리도 하고 세탁기도 돌렸으니 가정에서는 주도권 잡기가 용이할 줄 알았다. 그러나 천만에, 야무진 아내의 손끝에 비하면 집안일에도 어수룩하기 짝이 없으니 액자를 걸 못조차 아내처럼 뚝딱 박지 못한다. ‘나’는 아내가, 아니 단순하고 명료하고 직접적인 명령으로 이루어진 아내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행하는 ‘아내의 보조’가 되었다.
이처럼 『오, 나의 마나님』은 슈퍼우먼 아내의 막강한 영향력에 짓눌린 채 마피아 영화의 보스, 혹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의 듬직한 가장, 찰스 잉걸스의 남성적인 존재감을 그리워하는 신종新種 남편의 애환을 시종일관 시니컬한 위트와 유머로 풍자한다. 하지만 수다쟁이 아줌마처럼 시시콜콜 줄줄이 토해 내는 남편인 ‘나’의 불평불만 가득한 푸념의 기저에는 잘나가는 아내를 뻐기고 싶은 모순된 마음도 깔려 있다. 소위 성공적인 위치를 점유한 남자들 사이에 별 볼일 없는 남자로 찌그러지려는 찰나에 절묘하게 등장하여 단번에 그치들을 상대로 KO승을 거두도록 도와준 멋진 차림의 완벽한 아내를 노골적으로 자랑하기도 한다.
모든 일에 완벽한 아내로 인해 점점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지는 남편의 현실을 과장되게 비하하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시시콜콜한 일들, 『오, 나의 마나님』의 남편인 ‘나’가 그토록 부당하게 맡겨진 일이라고 항변하는 일들은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들이며, 지금까지는 대체로 ‘아내’ 혹은 ‘엄마’라는 별칭을 지닌 여자들이 기꺼이 맡아온 일들이다. 가족을 이루어 사회적인 생존의 역할 분담이 분명했던 시절, 경제적인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의 확고부동한 권위는 식구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으며 온갖 잡다한 집안일에 치이면서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묵묵히 인내했던 아내들에게 무작정 희생을 강요하며 부당하게 대우해 왔다. 하지만 남편들의 호시절은 살기 팍팍한 사회와 함께 휩쓸려 가버렸다. 자신에게 막강한 권위를 부여해 주었던 경제적인 책임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진 것이다. 이제 아내들이 가정 밖으로 나서서 남편의 권위를 동강 낸다. 아내들이 가정 밖에서 성공적으로 제 몫을 다하는 동안 남편들은? 애초에 비합리적으로 상향 조정된 부당한 옛 권위의 향수에 젖어 직장에서도 내몰리고 가정에서도 소외되는 비극을 초래했다.
다비드 아비께르가 “이 책을 성별간의 전쟁에 관한 책이나 한 성의 다른 성에 대한 승리의 이야기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한국어판 머리말)고 말한 것처럼, 나 역시 그런 마음이다. 이제 부부의 역할 분담에서 성별은 무의미해졌다. 경제적 책임뿐만 아니라 요리, 청소, 세탁,육아 등등 모든 일을 함께해야 한다. 모든 일에 함께 익숙해지도록. 이런저런 이유로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이 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슈퍼맨 남편도, 슈퍼우먼 아내도 없다. 또한 마나님도, 돌쇠도 없다. 그저 환상의 짝꿍, 부부가 있을 뿐. 서로 자리를 빼앗거나 빼앗기지 않고 서로에게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는. 그래서 두 자리를 한 자리로 넓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