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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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신비롭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금, 여기’에 붙박인 채 시시각각 온통 ‘현재’를 온전히 밟아 과거를 만들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불안감과 기대감을 나란히 품고서 나아가는 존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간의 일탈을 꿈꾸지 않을까.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여행자의 아내』에는 일명 ‘시간일탈장애자’ 헨리 드탬블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간일탈장애’는 어떤 도구 혹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과거 혹은 미래로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굳이 ‘장애’라 명칭하는 것은 이것이 일종의 ‘능력’으로 간주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여행이긴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로 자신이 원할 때만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무작위로 특정 시간대 아무 상황에나 내동댕이쳐진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에 머물도록 해주는 특정 시간 유전자에 변이 혹은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는 무작위 시간 여행을 질병으로 바라본다.

이 소설에서 헨리 드탬블의 현재는 사실 존재하지 않거나 여러 현재들이 무수히 겹쳐져 어느 한 시점을 ‘현재’라고 단정 짓기가 어렵다.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는 어지럽게 단절된 시간들 속에서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의 흐름은 클레어의 성장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제나 헨리가 시간 여행으로 나타나길, 혹은 시간 여행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클레어의 ‘기다림의 시간’, ‘그리움의 시간’이다.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시간 여행’이라는 까다로운 SF 요소를 빌려왔지만, 그것은 시간조차 뛰어넘은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장치 역할을 한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할 때 그 감동이 가장 짙어진다. 오드리 니페네거는 그 점에서 탁월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문득 의구심이 든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과거 혹은 미래로 불시에 떨어지는 헨리의 시간 여행도 이미 촘촘히 예정된 운명의 수순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들은 미래가 ‘운명’이라 점찍어준 상대와 그저 사랑의 암시에 빠져든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지금, 여기’에 얽매여 있는 존재에게 시공간을 이탈하는 일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짙어도 신비와 경이로 점철된 꿈이니까. 클레어의 시간을 꼭짓점으로 그녀의 과거와 미래, 혹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서성이는 헨리……, 언뜻 그들의 사랑은 달콤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일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나는 이 책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후라도 곳곳에 눈에 띄는 아쉬운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헨리와 클레어가 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충분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난 미래에 네 남편이야’ 혹은 ‘우리는 결혼하게 되어 있대요’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헨리에 대한 클레어의 환상과 동경이 사랑으로 전이됐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만나 클레어의 이야기만 듣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헨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 9ll테러에 관한 한 문단, 그리고 클레어와 고메즈의 스캔들은 불필요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멋진 착상을 더욱 깊이 있게 형상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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