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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ㅣ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현대에 이르러 바다라는 공간이 우주로 대체된 것처럼 보인다. 우주선(shïp)을 타고 망망한 우주 공간을 누비는 스페이스 오페라 류의 SF를 읽다 보면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범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모험소설이라면 바다를 배경으로 해야 하는 것이 원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귀환 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신화 속에서도 바다는 곧 모험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대항해시대’와 시드 마이어의 ‘해적’과 같은 게임들, ‘캐러비안의 해적’ 등의 영화와 ‘나디아’ 등의 애니메이션 역시 바다(우주)를 무대로 숨가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 호가 등장하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와 지금 이야기할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소설 쪽에서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라는 이름은 작품 속 등장인물인 잭 오브리와 스티븐 머투린에서 따온 것이다. 돈과 여자 같은 현실적인 욕망에 충실하며 속물이기도 하지만 배를 지휘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한 잭 오브리, 이상을 추구하며 사려가 깊지만 때로는 내성적으로 보이는 듯한 스티븐 머투린이라는 약간은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설정의 두 사람을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대영제국 해군 대위인 잭 오브리는 ‘소피 호’의 함장으로 임명을 받고 의사인 스티브 머투린과 부관인 제임스 딜런, 조함장인 마셜 같은 함선을 이끌어갈 여러 인물을 만나게 된다. 불편했던 첫 만남과 이후 이어지는 오브리-머투린의 관계는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큰 줄기다. 호송 업무로 시작을 알린 ‘소피 호’와 선원들은 무역과 약탈, 프랑스와 에스파냐 같은 당시 적국의 함선들과의 전투 등을 거치며 공인된 해적이기도 한 사략선으로 활동한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해양모험소설이라는 장르 안에 가두기에는 그 내용이 방대하다. 19세기 바다를 장악하려 했던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 등 유럽의 역사적 상황과 문화 등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기 때문이다. 범선에 대한 치밀한 고증과 해전의 섬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이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을 가장 즐겁게 읽는 방법은 ‘소피 호’의 선원이 되는 것이다.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선원의 눈으로 감상하고 느끼며 거친 바다를 함께 항해하는 것이다. 거친 바다와 위험한 모험을 함께하겠다면 어서 ‘소피 호’에 오르길 바란다.
국내 출간된 2권의 책을 번역하는 데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단순 계산으로 권당 1년으로 잡아도 이 시리즈 전체인 21편이 출간되려면 아직도 19년이 남았다. 부디 이 거대한 작업이 순조로운 항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