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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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약성경에는 불행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영생의 비결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 19:21)'고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가르친다. 이에 부자 청년은 '재물이 너무 많은 까닭'에 낙담하고 만다. 그리고 이 부자 청년의 얘기는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라는 유명한 경구로 마무리된다. 이 구절은 지구상의 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구절이 아닐지 모르겠다.

요즘 우리 시대의 화두는 단연 'IMF 경제위기의 극복'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자는 비록 단서 조항을 붙이기는 했지만 대략 1년 정도의 기한이 지나면 위기국면은 극복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전망은 사람들의 희망사항과 맞물려 현실과 매우 근접된 것인 양 나타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전망과 기대의 배후에는 풍요한 삶에 대한 간구가 조급증처럼 배어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마음 놓고 소비하고 싶은 욕망과 물질문명이 주는 쾌락에 절어있던 습성이 IMF시대가 요구하는 단순, 소박한 삶을 못견뎌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위대한 저서 '월든(WALDEN)'은 어떻게 다가올까?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측량과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 미국의 저술가이다. '월든'은 1845년 소로우가 28세되던 해에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2년 동안의 삶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월든 호숫가에서의 삶을 기술하면서 필요 이상의 주택과 음식, 의복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이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고발한다.

필요 이상의 소비를 위해서 필요 이상의 노동을 해야하고 이때문에 사람이 마땅히 살아야할 태도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독, 자연과의 교감, 노동의 즐거움, 그리고 이를 통한 삶의 행복이 사라진 오늘의 현대인에게 저자는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위기는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순,소박한 삶의 회복은 현대인에게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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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죽은 사상인가
막스 갈로 지음, 홍세화 옮김 / 당대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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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는가?' 이런 화두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대체로 낙관론에 젖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상황은 이런 낙관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좌익의 진보이념에 찬물을 끼얹었고 기술의 진보에 따른 사회발전에 기대를 걸었던 진영은 과학기술이 초래한 생태계 파괴와 어두운 전망들로 인해 자신이 제기한 낙관론을 스스로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의 평론가 윌리암 파프(William Pfaff)는 '월드 폴리시 저널(World Policy Journal)' 1995-96년 겨울호에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프랑스의 '르 몽드(Le Monde)'지는 이 질문을 받아 프랑스의 정치가와 철학자들을 동원해 논쟁을 펼쳤다.

'지난날의 확신은 의혹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은 당황으로, 더 나아가 환멸로 바뀌었다. 역사는 이제 모든 우연을 낳는 장이 된 듯하고 과학은 모든 위험을 낳는 장이 된 듯하다'고 역사의 불확실성에 기대는 '르 몽드'지 기자 토마 페렌지, '역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도 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라며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철학자 다니엘 벤사이드, '지금까지 우리가 획득한 진보는 결코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며 새로운 형태로의 진보개념 정립을 주창하는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 무기력한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삶의 환경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국경없는 의사' 초대의장 베르나르 쿠쉬네, 인간관계의 인간화(humanisation)를 통한 역사의 진보 방향을 제안하는 역사학자 막스 갈로...

이 책에는 이렇게 역사의 진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독자는 이 다양한 판단들을 즐겁게 포식하면 될 일이다. 한국사회도 새로운 밀레니움(millenium)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가오는 새 역사를 천박한 인식과 호들갑으로 맞지 않으려면 이제 우리도 나름대로의 풍부한 논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생각과 사상도 신토불이(身土不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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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생각한다
김용호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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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고정관념은 과거 생각에서 비롯된 관성(慣性)을 타고 있어서 이 관성을 벗어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중소기업체의 사장은 '30퍼센트의 생산성 증가보다 더 어려웠던 일이 최초 1퍼센트의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기 위한 관성의 변화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여기서 소개하는 김용호의 '몸으로 생각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생각의 관성에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인 김용호는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언론학 박사이며 요즘은 미디어 밸리라는 회사의 조사연구팀장을 맡아 한국판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몸', '커뮤니케이션', '정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우리 '몸'에는 생명체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 몸 내외의 환경과 커뮤니케이션한 정보 창고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몸에는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환희, 맹수와 싸우거나 호숫가에서 즐겁게 살던 기억이 들어있으며 이렇게 축적된 정보는 현재의 몸이 살면서 얻는 정보들과 결합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몸사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의식은 정신의 의식보다 훨씬 풍부한 정보 창고를 형성한다.

몸의 생각은 정신의 생각이 대상과 집요하게 거리를 두려하는 것과는 달리 원초적으로 거리를 없애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몸끼리 닿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몸은 현재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또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흥미있는 코멘트를 한다. '성서의 글자가 지배하면서 영성 대신 지식이 신앙의 기초로 자라잡았다. 사람들은 신을 느끼거나 전율하기 이전에 신을 알아야 했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목회자와 신도로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또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거리가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했지만 이제는 커뮤니케이션이 거리를 바꾼다고 주장한다.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면 멀리 떨어진 땅도 가까이 와서 붙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자에게는 통일도 이미 진행 중인 사건이다. 통일이 단순히 국가 간의 통합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한의 상품이 남한의 거리에 진열되어 있고 제3국을 통해서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들이 빈번히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이 이미 진행 중인 사건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을 때리는 저자의 발언은 이렇게 끝이 없다. 흥미있는 것은 저자의 이런 주장들은 모두 영화라는 텍스트 상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끝까지 독자의 관심을 잃지 않는 것도 이 책이 갖는 장점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이전에 '몸으로 생각한다'의 전편 격에 속하는 '와우'(박영률 출판사 刊)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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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박한제 / 한길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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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글 이전에 생각이 있고 생각은 머리와 가슴 속에 정리되지 않은 말들로 고여있다. 그러다가 머리와 가슴이 생각과 말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넘쳐나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펜을 들거나 피시의 모니터에 불을 켜고 키보드를 두둘겨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면 그 사람은 비로소 글 쓸 자격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46년생인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인 박한제(朴漢濟)는 나이 50에 이르게 되면서 드디어 가슴 속에 고여있던 마음의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나의 오십자술'이란 부제가 붙은 '인생'이란 제목의 자서전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다.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번듯한 자리를 빼고나면 저자에게 이렇다하게 '튀는' 구석이 없다.

오히려 16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작은 키 때문에 맞선 본 여성에게 퇴짜를 맞아 깊은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고 집 안에는 '20년이 넘도록 쓰는 싱크대와 10년이 넘은 텔리비젼, 15년을 써온 선풍기, 12년이나 된 가스레인지'를 두고 사는 구식 성격에, 손을 사용하는 모든 운동에는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는 문제투성이의 인물이다. 게다가 강박증마저 심해서 평소의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시험에는 번번이 떨어져 서울대학교도 여러 차례 실패한 끝에야 겨우 입학에 성공하더니 결국은 그의 마지막 시험이 될 지 모르는 운전면허시험에마저-그것도 서울대학교 교수 신분으로 상당한 준비를 한 끝에 치른 필기시험에서-낙방하는 낭패를 겪게된다. 저자의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들은 이 책에 숨김없이 자발적으로 폭로되고 있다. 독자는 예상치 않았던 '서울대학교 교수'의 연속되는 실패담에 못된 쾌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독자의 이런 '못된 쾌감'은 곧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잘난 점과 못난 점은 다 있게 마련이고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잘난 점과 못난 점을 함께 지고 사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내성적인 성격은 말을 아낀 대신 깊은 생각을 하게 했고 이를 통해서 볼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된 것이다.

책을 읽다가 필자가 밑줄을 그어놓은 글들 중 일부를 옮겨본다. ''젊은 날 면책될 수 없는 우행과 거짓에서 비롯된 고뇌'는 해소되지 않고 아직도 가시처럼 나의 가슴을 찌르고 있다. 이 거짓의 세워에서 해방되는 날은 언제인가? 나도 진실 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망각과 거짓말' 중에서)
'...노여움보다 더 아픈 것은 허무함입니다. 정조와 충절은 한번 잃으면 그만인 것입니다...'('정희성 시인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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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아내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구판) 10
앙드레 쉐디드 지음, 임선옥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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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욥의 이야기는 가장 극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하나님은 사단과 내기를 하는데 그 대상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욥1:1)' 욥이다. 사단은 욥을 시험하기 위해서 재산과 자식을 빼앗아가고 그래도 욥이 신앙을 지키자 이번에는 욥의 온몸에 악창(惡瘡)이 나게 해 욥을 시험한다. 이 철저한 고난 가운데 욥은 재 속에 앉아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배반하지 않는다. 이런 욥을 향하여 참다못한 그의 아내는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純全)을 굳게 지키느뇨...하나님을 욕(辱)하고 죽으라(욥 2:9)'고 절규한다. 욥기에서 등장하는 욥의 아내는 이 장면의 단 한번 뿐이다.

이집트 출신의 프랑스 여성작가 앙드레 쉐디드(Andree Chedid)는 욥기에 단 한번 등장하는 욥의 아내가 내뱉은 이 단 한 마디의 절규로부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작가는 마음 속으로 질문한다.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남편을 경멸했을까? 그녀는 엄청난 시련 중에도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던 욥에게 이런 신성모독(神聖冒瀆)의 발언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의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욥의 부부는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통해 견디기 힘든 시련을 극복해간다.

욥과 그 아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신앙소설이 아니다.굳이 범주를 나누면 여성 작가가 쓴 아주 짧은 여성주의 소설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단지 성경의 한 장면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을 뿐이다. 작가는 이 모티브를 통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는 고난에 반응하는 욥 부부의 서로 다른 방식에 주목한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이다. 욥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반면 그의 아내는 저항적이고 감성적이다.성경에 단 한번 등장하는 그녀의 절규도 이런 기질에서 나온 것일뿐, 그녀가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 작가의 판단이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욥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기를 얻는다. 욥 부부의 이 이야기는 결혼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앞뒤로 펼쳐지고 아가서의 말씀은 이들 부부의 사랑의 밀어로 등장한다.제목에서 신앙소설이라는 선입견을 받았던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결코 기독교 소설이 아니라 한 노부부의 아름다운 생의 기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난 속에서도 서로를 믿는 부부 간의 깊은 신뢰, 아름다운 사랑과 믿음...특히 부부 간의 이별을 그린 마지막 장면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사랑보다 더 진실한 신앙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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