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죽은 사상인가
막스 갈로 지음, 홍세화 옮김 / 당대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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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는가?' 이런 화두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대체로 낙관론에 젖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상황은 이런 낙관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좌익의 진보이념에 찬물을 끼얹었고 기술의 진보에 따른 사회발전에 기대를 걸었던 진영은 과학기술이 초래한 생태계 파괴와 어두운 전망들로 인해 자신이 제기한 낙관론을 스스로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의 평론가 윌리암 파프(William Pfaff)는 '월드 폴리시 저널(World Policy Journal)' 1995-96년 겨울호에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프랑스의 '르 몽드(Le Monde)'지는 이 질문을 받아 프랑스의 정치가와 철학자들을 동원해 논쟁을 펼쳤다.

'지난날의 확신은 의혹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은 당황으로, 더 나아가 환멸로 바뀌었다. 역사는 이제 모든 우연을 낳는 장이 된 듯하고 과학은 모든 위험을 낳는 장이 된 듯하다'고 역사의 불확실성에 기대는 '르 몽드'지 기자 토마 페렌지, '역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도 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라며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철학자 다니엘 벤사이드, '지금까지 우리가 획득한 진보는 결코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며 새로운 형태로의 진보개념 정립을 주창하는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 무기력한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삶의 환경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국경없는 의사' 초대의장 베르나르 쿠쉬네, 인간관계의 인간화(humanisation)를 통한 역사의 진보 방향을 제안하는 역사학자 막스 갈로...

이 책에는 이렇게 역사의 진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독자는 이 다양한 판단들을 즐겁게 포식하면 될 일이다. 한국사회도 새로운 밀레니움(millenium)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가오는 새 역사를 천박한 인식과 호들갑으로 맞지 않으려면 이제 우리도 나름대로의 풍부한 논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생각과 사상도 신토불이(身土不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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