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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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의 법칙 자체도 의미 있지만 모든 법칙은 ‘질서’와 ‘혼돈’, ‘의미’와 ‘책임’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될 수 있고, 이러한 큰 흐름 안에서 우리는 법칙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변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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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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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힘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래서 인생은 참으로 고단하다. 어떤 때는 정신을 차리고 멋지게 이겨낸다 해도, 잔인한 순간은 거듭 찾아오며 순간으로 끝나지 않기도 한다.“ (P. 320)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오랜 시간에 걸친 기다림과 유산의 아픔도 겪었기에 둘째의 탄생은 우리 가족에게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출산 후 한동안은 친척과 지인들의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 들 뜬 마음으로 지냈고, 그 이후에는 아직 어린 첫째를 다독이면서 또,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와 산후조리를 하는 아내를 보살피며 지냈다. 특히, 코로나라는 상황적 특수성이 맞물리면서 출산부터 산후조리까지 2주가 넘는 긴 시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된 첫째는 새로운 환경 적응에 유독 힘들어 했다. 산후조리를 마친 아내는 둘째와 함께 귀가를 했고, 마침내 첫째는 엄마와 감격적인 모녀상봉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극적이게도 그 이후에 발생했다. 갑자기 첫째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했다. 미열과 함께 콧물이 나는 증상이 그동안 몇 번 겪었던 감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나기 시작한 열은 39도까지 올랐고, 며칠 동안 꾸준히 해열제를 써도 떨어지지 않았다. 열이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에 가서 우선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이후 갖가지 검사가 이어졌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급성폐렴과 관련하여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고, 노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받았다.


문제는 피검사 수치에서 발생했다. 혈액 1 마이크로 리터당 4,000개에서 10,000개가 정상 범주라는 백혈구 수치가 2,700이 나온 것이다. 검사 결과에 대해 병원에서는 감기 등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경우에도 백혈구 수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재검사를 권했다. 아내와 나는 첫째 아이의 흉부 엑스레이와 소변검사 결과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검사만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뒤 나온 재검사 결과는 정말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백혈구 수치는 2,000까지 떨어져 있었고, 혈소판과 호중구 등 혈액 관련 3개의 수치가 모두 좋지 않아 소아 혈액 전문병원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담당의사의 소견이었다.


”질서의 신 오시리스도 조각조각 부서질 수 있다. 이런 일은 개인, 가족, 도시, 국가에서 항상 일어난다. 사랑이 끝날 때, 경력이 단절될 때, 소중한 꿈이 날아갈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익숙했던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는 체념, 불안, 불확실, 절망이 들어찬다. 허무주의와 심연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등장해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삶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결국 혼돈이 출현한다. “ (P. 149)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그토록 원하던 둘째가 태어나면서 마침내 아내와 함께 꿈꾸던 이상적인 가족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고, 그 안쪽을 우리 가족은 어떠한 형태의 기쁨과 추억의 색으로 채워 나갈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점에 가족의 안정을 뒤흔드는 혼돈이 갑자기 찾아왔다. 질서가 무너진 곳에 들어선 것은 원망과 현실부정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고, ‘검사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일시적 수치 감소를 확대해석한 과잉진단이나 과잉진료는 아닐까?’하는 의구심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중 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건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불안과 두려움은 자가 증식하며 다른 모든 감정을 잠재우며 무한정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얼마나 소요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치료 기간을 견뎌내야 하는 첫째가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린이집 보다 유치원 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첫째가 또래 친구들과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삶을 너무나 이른 나이에 포기해야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러한 삶 대신 고통과 인내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정해지지 않는 혼돈의 시간 동안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작위성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 첫째의 치료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아내와 나 모두 같은 생각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둘째가 있었기에 전적으로 첫째만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기간과 가족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계산해야 했고, 그러한 제약조건하에서 아내와 나의 역할분담 또한 고려해야 했다. 아내가 첫째를 우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내가 신생아인 둘째를 돌보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지만, 그러면서 회사생활까지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따라서 새롭게 주어진 조건하에서 삶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필요한 기간과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했다. 나와 내 가족을 둘러싼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그곳에 사는 괴물은 점점 더 포악해져갔다. 삶의 의미는 빛을 잃어갔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만일 여러분이 인생의 한계에 용감하게 맞선다면, 고통의 해독제가 되어줄 삶의 목적을 갖게 된다. 심연과 자발적으로 눈을 맞춘다는 것은 삶의 어려움과 그에 딸린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짊어질 능력이 당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P. 410)


저자 조던 피터슨은 심연에 들어앉아 있는 괴물에 맞서 힘없는 먹잇감처럼 숨죽이고 움츠리거나 배반자가 되어 악에 봉사하는 대신 맞서 싸우는 게 인간의 본성임을 또, 주변을 지옥으로 바꿀 정도로 원통해하지 않고 존재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견딜 때 진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솔직히 눈앞에 닥친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떨쳐버리고 책임감을 갖고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그저 교과서적인 지침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점점 현실이 되어 목을 죄어오는 삶의 조건 앞에서 나는 숨이 막히고 두려워 혼자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감사는 원망의 대안이며, 어쩌면 유일한 대안일지 모른다. (P. 423)”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현실로 닥친다면 어느 누가 삶에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당신이 고통과 적의에 맞서 진실하고 용감하게 싸운다면 당신은 더 강해지고, 당신의 가족도 더 강해지고, 세계는 더 좋은 곳이 된다. 모든 것이 더 나빠지길 바란다면, 그 대신 분개를 선택하면 된다.” (P. 394)


내가 불안과 두려움, 원망 등 부정적 감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성 보다는 가족이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에게 의지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내가 삶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안정된 질서 속에서 그동안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 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큰 힘이 되었고, 혼돈을 헤쳐 나가는 강력한 무기와 힘으로 작용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게여보, 좀 쉬어. 어차피 장기전이 될 수도 있어.“라고 어둠 속에서 아내가 조용히 건넨 말 한 마디, 회사를 향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말없이 아내와 맞잡았던 손의 온기에서 나는 위로 받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감사가 원망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실재하는 것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독특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본다. 우리가 신뢰와 사랑에 기초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때 그 가능성은 정말로 기적을 일으킨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P. 430)


조던 피터슨은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을 개념화하는 존재 즉, 시간을 인식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현재의 우리는 미래에 매여 있는 동시에 우리의 미래도 현재를 기반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현실에만 해당하는 것이므로 미래의 궁극적 가치를 대변하는 목표와 책임이 없으면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 에서다. 또한, 현실에 실재하는 것과 미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신뢰와 사랑에 기초한 관계에 기반한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그 말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질서 너머의 미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험에 응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는 것으로는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다. 조던 피터슨은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과 본작 <질서 너머>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철학이 담긴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법칙들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절대적인 법칙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모든 법칙들은질서혼돈’, ‘의미책임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될 수 있고, 이러한 큰 흐름 안에서 우리는 법칙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변주할 수 있다.


”당신이 가는 길은 의미 있는 인생의 길,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 해당하는 좁고 험한 길이며, 그 길을 끝까지 종주할 때 비로소 질서와 혼돈이 균형을 이룬다.“ (P. 109)


나는 삶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실천적인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저자 조던 피터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책임이란 다름 아닌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함과 취약성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인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진실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올 수도 있는 반면에 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걷는다는 것은 삶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이고, 삶의 길을 걷는 것이 행복보다 훨씬 더 나은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위험 앞에 선 사람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하고 용감해질 수 있다. 또한 진실한 관계 구축은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하여 어떤 짐이라도 함께 짊어질 수 있다. 우리 가족도 그렇게 삶의 길 위에 설 것이고, 흔들림 없이 함께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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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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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하나와 단둘이 집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머지 가족들의 귀갓길에 그들에게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나와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인생이 고꾸라지는 것은 막을 수 없을 텐데, 그 무너진 인생을 과연 돌릴 수 있을까? 남은 우리는 어떤 가족이 될 것인가? 과거와 상실을 잊어버리지 않은 채로 과연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어느 날 밤 작가 댄 거마인하트의 머리를 스친 우울한 상상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소설 속 코요테의 원래 가족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세 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불현 듯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대한 답으로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자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한번쯤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에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마음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가 3백여 쪽의 페이지에 걸쳐 그것을 조금씩 단단히 이어 붙여주는 책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라는 소설의 홍보문구에 누구나 공감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엄마와 자매를 잃고 그 비극적인 상실을 기억하지 않기로, 그들이 존재했던 것조차 마음속에서 잊기로 아빠와 함께 다짐한 열두 살 소녀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코요테는 일곱 살 때부터 5년째 아빠 로데오와 함께 스쿨버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미국 방방곡곡을 누비눈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여정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5년 전 코요테는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엄마와 언니와 동생을 잃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던 아빠와 딸은 비극적인 상실과 마주하지 않기를 택하여 집을 떠나 움직이는 버스를 집으로 삼았다. 자연히, 이별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코요테의 일상에도 깊이 심어진다. 캠핑장에서 사귄 마음 맞는 친구와도 지금부터 영영 헤어질 것을 알면서 작별 인사 대신 내일 만나자고, 말뿐인 약속을 하는 식이다.

 


나는 작별이 뭔지 안다. 그리고 작별이 싫다. 가장 좋은 작별은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P. 57)

 

과거를 돌아보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야 코요테. 안돼 아가. 거기로 돌아가지 마. 네 행복은 여기. 지금에 있어. 예전 일은 다 잊어야 해.” (P. 72)

 


코요테와 로데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를 직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규칙을 따른다. ‘아빠를 아빠라고, 딸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 떠나보낸 가족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을 것. 미국 어디든 달려갈 수 있으나 워싱턴 주의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은 것.’ 등이 바로 부녀간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코요테에게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 한 통은 이 모든 규칙을 무시해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건 추억상자야.” 엄마가 말했다. 여자아이 셋과 엄마는 그 상자를 채웠다. 사진이랑 편지, 추억과 머리카락과 작은 보물들로. 그들 자신과 상대의 일부, 함께한 삶의 조각들을 모아서.” (P. 65)

 


코요테는 할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5년 전에 엄마와 자매와 함께 추억 상자를 묻은 고향의 공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코요테는 절대로 그 상자를 잃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위치한 플로리다 주로부터 집은 5,793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불도저가 공원을 밀어버리는 건 고작 나흘 뒤다. 게다가 규칙에 의지해 삶을 지탱해온 아빠는 행선지를 알면 당장 브레이크를 밟을 것이다. 상자를 찾으러 가기로 결심한 코요테는 나름의 방도를 찾는다. 아빠가 알면 절대로 가지 않을 거란 말은 곧, 아빠가 행선지를 모르는 채로 자기를 데려가게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코요테는 자신의 계획에 길가의 승객들을 동참시킨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음악가 레스터, 가정 폭력을 겪다 떠나온 에스페란사 부인과 추후 코요테의 친구가 되는 부인의 아들 살바도르,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가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가출한 밸, 그리고 우연히 코요테의 삶에 들어오게 된 세계에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 아이반까지...

 


고양이와 내가 서로 마주 본 그때 뭔가가 달라졌다. 아주 거대한 뭔가가. 아주 오랫동안 우주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거나 움직이고 있던 것이 드디어 멈추었거나. 무슨 일이었든.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P. 14)

 


추억 상자를 향한 그들과의 동행에서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코요테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우정을 느끼고 작별에 대한 심정의 변화도 겪게 된다. 결국 여정을 거치는 동안 코요테의 작별에 대한 생각도 다음과 같이 변하게 된다.

 


알고 보니 작별에 대한 내 생각도 틀렸다. 최고의 작별은 상대를 두고 떠나지 않는 것이다.” (P. 190)

 


여정의 시작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잊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로 한 약속부터 였다. 따라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빠로데오로 딸은 엘라라는 예쁜 이름 대신 코요테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삶인 만큼 새 출발 한다는 느낌으로 성도 선라이즈로 바꿨다. 하지만 여정을 이어가면서 코요테는 기억한다는 건 과거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기억하고 있다는 것임을, 현재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엄마랑 언니랑 동생을 오늘 지금 기억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엄마랑 언니, 동생 없이는 하루도, 일분도, 일초도 더 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게 된다. 또 자신이 필요한 것은 여행의 파트너가 아니라 아빠임을 당당하게 외친다.

 


그럴 수 없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지금 보고 싶어. 오늘 이 순간에. 사랑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엄마랑 언니, 동생을 지금 사랑해. 오늘 이 순간에.” (P. 281)

 


아빠와 딸은 여행을 하며 히피의 삶을 지향한다. 소설을 읽으며 오늘날의 우리는 히피운동을 어떻게 봐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히피(Hippie 또는 Hippy)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LA 등지 청년층에서부터 시작된,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를 지향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히피운동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속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했던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에서 비롯된 실패한 혁명에 불과한 것일까?

 


삶은 그들을 계속 쓰러뜨리지만 그들은 계속 일어나서 싸웠다. 두 사람이 한 번쯤은 이기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다. 세상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P. 207)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여행의 동반자가 되지만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도 달랐고, 그들 각자가 도달하는 진리도 저마다 달랐다. 1960년대 히피들은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해나갔다. 바로 반권위주의와 사회변혁의 분위기는 같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정치와 환경운동에 집중했던 이들이 있던 반면 테크놀로지에 주목했던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테크놀로지를 통해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홀 어스 카탈로그 (Whole Earth Catalog)>라는 잡지가 바이블이었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당시의 첨단기술 또는 아직은 기술로 구현되지 않았지만 히피사상을 현실화시킬 빛나는 아이디어로 무장된 제품과 서비스들이 소개된 잡지였다. 자유와 공생, 공유와 개방의 히피문화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오늘날의 PC와 인터넷, SNS로 구체화될 수 있었고,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라는 글로벌 혁신기업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시대의 화두로 남아 있는 스티브 잡스의 말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라)"<홀 어스 카탈로그>의 폐간호에 등장한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10대의 잡스가 읽고 기억하고 있다가 세월이 흘러 재인용한 것이다. 잡지의 창시자 스튜어트 브랜트는 1995년 타임지 기고문을 통해 PC와 인터넷 혁명은 모두 대항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의 기고문의 부제는 "우리는 모두 히피에게 빚을 졌다."였다.

 


삶은 인간의 예측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서 자리해 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 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진지하게 탐구해나가는 것, 또 그러한 과정에서 나름의 대안과 답을 찾아가는 것이 히피문화라 한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한명의 히피로서 저마다의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우린 지금 여기 있다. 아직도 달리고 있지만,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방랑하고 있긴 하지만 찾고 있기도 하다.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아이의 숨결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햇빛과 함께 날아 다니지만 흙을, 뿌리를 내릴 곳을, 꽃을 피울 곳을 찾고 있다. 그게 우리다. 그게 나와 로데오다. 그게 나와 아빠다.” (P. 357)

 


가족의 소중함, 관계의 각별함을 일깨워주는 코요테의 놀라운 여정은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동안 얼마나 더 사랑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스쿨버스 안에서 진실된 삶을 향한 여정의 동반자로 만난다. 그들은 왜 스쿨버스를 타고 여정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이라는 교실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을 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비록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는 순간 차체가 덜덜 떨리고, 때론 브레이크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구식 스쿨버스라 할지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 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 훨씬 낫다.” (P.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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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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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개별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고 결국 그 생명을 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이데거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다.”고 말한 이유는 인간은 매순간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다 종국에는 모두 소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시작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



 

우리는 삶에 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 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얹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삶은 인간의 예측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서 자리해 있다. 누구나 절망에 빠져 부정적 파괴욕망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절망 속에서만 머무르진 않는다. 때론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또 때론 맞서 싸우고 극복하면서 삶을 이어 나간다. 삶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결핍, 아픔들은 자연스럽게 삶의 한 부분으로 녹아든다.

 



"엘리스는 내심 결혼이라는 개념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멸시키고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계속해서 한 사람으로 살기는 너무 힘겨웠다. 그렇게 쉬운 일이 있다니!" (P.164)

 



1980년 영국 런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엘리스는 기다리던 남자를 만나지 못한 대신 자신 보다 열다섯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코니를 만나 헤어나기 힘든 사랑에 빠져든다. 카페 웨이트리스, 극장 안내원, 모델 일을 하며 지내던 엘리스는 이미 작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코니에게 의지하고 그녀에게 보호를 받으며 그녀의 삶 깊숙이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코니와 함께 생활하면 할수록 여성 이전에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앨리스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코니의 소설 <밀랍심장>이 영화화되면서 앨리스와 코니는 미국에 왔지만 그곳에서 엘리스는 할 일 없이 코니만 바라보는 무료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코니가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를 가까이하면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앨리스는 코니를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변심한 연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 로즈를 낳는다.

 



내게 어머니의 상실이란 느낄 수는 있지만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내가 느낀 슬픔은 잠가놓아 열 수 없는 상자였고, 열쇠 없는 집이었으며, 이름을 발음할 수 없는 지도 위 장소였다. 나는 어머니가 없었고 어머니를 가진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잃은 적 없는 대상을 어떻게 그리워할 수 있을까?” (P. 32)

 



2017년 영국 런던, 로즈는 어머니를 죽였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라고 고백한다. 출생 이후 엄마가 남편과 자신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로즈의 삶에서 엄마는 부재했다. 늘 가슴속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지만 엄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고 차별 받는 삶을 살아왔기에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마음속에서 엄마를 죽은 사람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갈수록 깊어갔고, 로즈는 엄마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녀의 연인이었던 소설가 콘스탄스 홀든 (코니)에게 접근한다. 코니를 만나겠다는 일념하에 무작정 출판사로 전화를 건 로즈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로라 브라운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비서로 일하게 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면서 엄마인 앨리스처럼 자신감이 적고, 두려움이 많았던 로즈에서 대담하고 주체적이며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는 로즈로 변화되어간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왔지만, 코니는 내게 어머니 대신 자아를 주었다.'는 고백처럼 로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의 삶의 궤적을 찾기 위해 여정을 시작했지만, 이 여정 속에서 로즈는 엄마의 삶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자신을 돌보듯이 사랑도 돌봐야 해. 사랑이 혼자서 유지되며 자라기를 바랄 순 없어. 우린 사랑을 돌보지 않았어. ,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러길 원하지 않았고.” (P. 324)

 


인생은 참 이상하지 않은가. 전 남자친구가 코니를 데려오다니. 그리고 인생은 기적이 아닌가. 코니가 오고 싶어하다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서로 용서할 일도 너무 많았다.” (P. 455)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 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컨페션>의 등장인물들처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는 이유는 삶을 구성하는 각 주체들이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고, 그러한 의미들이 어우러지면 삶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연극의 무대가 아닌 인생의 무대에서는 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3자의 눈으로 보면 누군가는 주연으로 누군가는 조연으로 보이겠지만, 모든 사람이 삶이 부여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또 주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컨페션>은 삶이란 혼자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하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또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닫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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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5-08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잭와일드 2021-05-09 09: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날 되세요~

잭와일드 2021-05-09 09: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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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살아가다보면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각각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로서 그러한 경험을 함께 하며 더 단단해진다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서로 기대어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함께 헤쳐간다. 가족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는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우주를 삼킨 소년>을 읽으며 나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의 개념을 사라지고, 원자화된 개인이 새로운 형태의 분자 가족을 형성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저자 약력을 보면 트렌드 돌턴은 수차례에 걸쳐 우수 기자상과 올해의 기자상을 수상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소설가로서의 데뷔작인 본 작품 한 편으로 그해의 문학상과 올해의 책을 석권하며 전 세계 34개국을 사로잡았다. <우주를 삼킨 소년>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로,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가정환경 속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12살 소년 엘리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엘리의 엄마 '프랜시스'는 변호사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바람과는 달리 마약에 빠져 인생이 꼬였다. 새아빠 '라일'은 엄마가 마약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었다. '오거스트'는 여섯 살 이후로 입을 닫아 버렸다. 또 두 소년을 보살피는 시터인 '아서 슬림' 할아버지는 살인자로서 또 전설의 탈옥수로서 악명이 높은 범죄자다. 이들이 12살 소년 엘리의 가족 구성원들이다. 가족 구성원들의 간략한 프로필만 보더라도 정상적인 가족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엘리는 이러한 가정 환경 속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에요?”

슬림 할아버지는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건 왜 물어?”

내 눈에 눈물이 차올라 관자놀이로 흘러내린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

나는 할아버지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는 병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푸른 하늘과 구름.

난 좋은 사람이야.”

슬림 할아버지가 말한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기도 하지. 누구나 다 그래, 꼬마야. 우리 안에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조금씩 있거든. 항상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려워.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지.” (p. 23)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존재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한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동반자와 나누는 몇 마디 대화로 울적함이나 불안은 어느 순간 털어버릴 수 있고, 사랑스런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부정적 감정을 떨쳐낼 수 있다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니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고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안을 얻는다.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상적인 가족상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형태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듯이 이상적인 가족은 획일화된 답지가 아닌 개개인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우리 각각은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우리 각각이 이루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도 완전하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의 삶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더 나아진 삶"으로 이끈다.

 

 

그날 병원에서 네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 물었지 엘리. 나도 그 생각을 해봤다. 아주 많이. 그저 선택의 문제라고, 그때 말해줬어야 하는데. 네 과거도, 엄마도, 아빠도, 네 출신도 상관없어. 그저 선택일 뿐이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말이다. 그게 다야.” (p. 351)

 

 

<우주를 삼킨 소년>"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성장 소설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때로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어 삶을 구속하고, 절망에 빠지게 만들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힘든 현실의 일렁임을 극복할 때 한층 더 성숙한 삶, 사랑이 충만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걸 우리는 엘리의 가족을 보며 깨닫는다. 굴곡진 삶을 견뎌내야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묵묵히 지켜봐 주고 지지해 줄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조언 아닐까세월의 일렁임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완전한 조각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왜 그랬어, ?” “뭐가?” “왜 말을 안 했느냐고.” 형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 더 안전하니까. 그러면 아무도 안 다치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 형은 달 웅덩이를 내려다보고 빙긋 웃는다. “네가 다칠까 봐 그래, 엘리. 우리가 다칠까 봐.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엘리,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겁먹을 거야.” “그게 뭔데?” “중요한 일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일들,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일들. 그다음엔 우리를 오해할 거야, 엘리. 그러다가 사람들이 나를 잡아갈 텐데 그럼 누가 널 돌봐줘.” (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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