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와인
백은주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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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부르고뉴 와인을 알고 있을 것이다. 브르고뉴는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 와인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반드시 거쳐 가게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브르고뉴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며 고귀한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브르고뉴만이 보유하고 있는 불가사의하며 놀라운 지질학적 특성에 양조를 하는 인간의 정성과 뛰어난 노하우가 더해져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은,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하며 매력적인 와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와인 교육가이자 부르고뉴 와인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저자 백은주가 저술한 <브르고뉴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부터 브르고뉴의 각 지역별 특징과 포도밭 지도, 주요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등 와인을 공부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대표 와인들을 친절하게 해설하고 수록하였다. 그야말로 브르고뉴 와인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유일무이한 최고의 도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부르고뉴 와인이라는 놀랍고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입문서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저자 백은주는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와인 양조를 전공하고 경희대학교에서 외식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르고뉴의 도멘 드 라 부즈레, 루 뒤몽 그리고 샤토 몽투스 등 여러 도멘에서 포도 재배 및 와인 양조 등의 경험을 쌓고 난 후 귀국하여, 현재 와인 교육가 및 와인 전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브르고뉴 와인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실무 경험을 겸비한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많이 알수록 많이 느낀다는 말처럼 <브르고뉴 와인> 한권이면 와인 애호가로서 와인의 깊은 풍미를 한층 더 느끼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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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버섯 -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사계절 그림책
정지연 지음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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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존재들이 돌고 돌며 일으키는 웅장한 세계"


정지연 작가의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작은 버섯>은 우연히 발생한 작은 솔방울의 두드림으로 숲속의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깨어나고 성장하면서 거대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책이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작은 존재들이 가진 에너지가 순환하면서 거대한 세계를 이루는 것을 경쾌하고 재치넘치는 이미지와 필치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작은 솔방울이 우연히 대지에 떨어지면서 작은 버섯을 깨운다. 깨운다는 것은 에너지를 전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새로운 만남과 탄생을 기점으로 에너지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솔방울이 깨운 버섯이 사슴을 깨우고, 사슴이 다시 버섯들을 깨우는 상호작용을 거쳐 거대한 숲을 만들어 간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 우리 모두를 움직이지. 절망과 희망을 통해, 신념과 사랑을 통해, 우리가 있을 곳을 찾을 때까지. 감겨 있던 것이 풀리는 길 위에서... 그 순환 속, 생명의 순환 속에서... (It's the circle of life. And it moves us all. Through despair and hope, Through faith and love, Till we find our place. On the path unwinding. In the Circle, The Circle of Life.)" - 라이온 킹 <The Circle of Life> 중에서 -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만나는 나무들의 종류를 세어보면서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무가 내 일상 속에 이렇게 깊이 들어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라이온 킹 <The Circle of Life>의 가사처럼, 또 정지연 작가가 <작은 버섯>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처럼 자연은 생각보다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는 것, 또 세상 안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나무는 꽃과 풀, 작은 버섯, 곤충들과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동물들과 인간들의 삶과 연결되고,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연결된다. 에너지의 생성과 소멸을 이토록 재미있고 경쾌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작은 버섯>을 보며 큰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결국 작은 버섯이 커다란 숲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바꾸었으니 말이다. 아니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함께 하는 작은 두드림이 새로운 에너지로 연결되고, 결국 큰 세계를 이룬다는 건 어쩌면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메시지이지 않을까? 작고 약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들의 힘으로 인해 세상이 더 풍요롭게 하고, 하나의 웅장한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은 어른들이 필요로하는 응원이기도 하니 말이다. <작은 버섯>을 읽으며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작은 물결과 파동, 울림을 느꼈다. 이렇게 작가의 진심이 독자들에게 전해진 것이 <작은 버섯>을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을 수상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 낸 울림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계절그림책상 심사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지연 작가는 잔잔한 호수에 퍼지는 물결처럼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작고 고요한 파동이 일어나 간질간질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아직은 책에 담긴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육아를 하는 부모로서 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빠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며 나눴던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길, 또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조금씩 알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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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버섯 -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사계절 그림책
정지연 지음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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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작은 두드림이 새로운 에너지로 연결되고, 결국 큰 세계를 이룬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길,�또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조금씩 알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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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 SF 작가 최의택의 낯설고 익숙한 장애 체험기
최의택 지음 / 교양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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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 전체가, 그리고 내가 썼고 쓰고 있으며 쓰게 될 모든 글이, 나라는 사람이 움직여 온 경로를 미분해서 각각의 사건이 지닌 의미를 해석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적분하여 전체 그리고 플러스 알파의 의미를 추출하는 일일 것이다. 그 결과는 분명 에너제틱할 것이다." (p. 225)

 

 

브레히트는 헤겔의 “진리는 구체적이다. (Die Wahrheit ist konkret.)” 라는 명제를 즐겨 인용했다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이는 에세이나 자전적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명제다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내고 구현해내야 한다구체적이지 않고서는 독자의 마음을 관통할 수 없다비비언 고닉도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자서전의 주제는 항상 자기 인식이 우선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기 인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좋은 글은 실제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을 살아 있는 어휘로 표현되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자전적 에세이는 자신의 경험과 체험생각을 솔직하게 담아서 가장 쉽고 명확한 어휘와 문장으로 누구나 읽고 싶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최의택 작가의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화자는 절대적으로 구체적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며불명확하게 또는 모호하게 두리뭉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자전적 글쓰기의 기본 명제를 충실하게 지켜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에세이는 분명 에너제틱하다.

 

 

"장애인이 아닙니다. "장애 '경험자'입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신체적심리적 반응을 보인다이는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신념과 사고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언급되는 A-B-C 법칙처럼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신념(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내는 것이다인간은 저마다 '진실'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고이러한 인식하에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고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삶이란 저마다 쌓아 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삶이라는 건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들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 비비언 고닉 -

 

 

현재의 삶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작가의 지나온 삶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행복했던 기억아픈 추억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고 객관화된 진실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사실 (事實)' 보다 '사연 (事緣)'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기억은 현재의 삶 안에서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이자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다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인물들. 인간 밖의 인물들, 굳이 인간이 아니어도 되는 인물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인물들, 그런 인물들에게 관심이 가는 데요." (p. 161)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엉뚱하고 허튼소리를 잘 하는 또라이인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저 분류로서만 존재하는 당신의 당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기를, 진짜 당신을 찾을 수 있기를, 따옴표를 벗어 던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나는 좋겠다." (p. 285)

 

 

화제가 되었던 룰루 밀러의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대해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라고 불리는 메리 로치는 서정적인 동시에 지적이고, 사소하면서 거대하고, 별나면서도 심오한 완벽한 책으로 평했고 인디애나 존스이자 에밀리 디킨슨라는 별칭을 가진 세계적인 생태학자이자 탐험가, 작가인 사이 몽고메리는 이 책은 당신의 가슴을 사로잡고, 상상력을 장악하고, 예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라고 평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그어 놓은 선 저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소중함과 삶을 살아가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룰루 밀러의 삶에 대한 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중구난방으로 접했던 지식의 단편들이 '조각 모음' 되는 것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인데, 나는 그런 느낌이 정말 좋다. 새로운 앎을 얻는 것도 좋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합쳐져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짜릿함을 선사한다. (p. 50)"는 최의택 작가의 말처럼 삶에 대한 아포리즘은 새로운 지식 보다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의택 작가의 체험적 진리가 담겨 있는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은 정해진 경계를 넘어 진짜 당신의 이름과 삶을 찾을 수 있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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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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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이는 일견 행복으로 충만해 보이는 삶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고통삶에 대한 ‘비의(悲意)’가 내포되어 있다는 삶의 내밀한 속성을 잘 포착해낸 체험적 진리라고 생각한다앤터니 비버의 역작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을 읽는 내내 나는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을 계속 곱씹었다. 저마다의 방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잎맥 (leaf vein)'처럼 삶은 다면적이고 정답을 찾기 힘든 것이고, 그러한 삶들의 집합체가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보다 신중하게 다양한 시각과 사실 검증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 우리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숲 안으로 깊숙이 침잠하여 나뭇잎의 형태와 주위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에도 주목해야한다.

 

 

"비버는 전략적 상황의 큰 그림과 현장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들의 의미를 솜씨 있게 결합시킨다. 이 책의 강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놀라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사건들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설득력 있게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 애덤 시스먼 (옵서버

 

 

독소전쟁이 역사적으로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독소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단일 전쟁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2차 세계대전과 독소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이 3할이 넘는 인구를, 소련은 4할이 넘는 인구를 오로지 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동원하였다. 세계사를 통틀어 단일국가가 전쟁 수행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구를 동원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양 국가의 인명피해는 3,000만명이 넘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전체 인명 피해의 절반가량에 해당한다. 이념대립, 자원확보, 전쟁상황하의 전략적 선택 등 독소전쟁 발발의 배경과 의미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지만게르만족과 슬라브족간에 벌러진 정복전쟁을 넘어 상대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절멸전쟁이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이유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도적 행위와 온갖 비인간적인 만행들은 이러한 비극적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2차 대전과 독일의 몰락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관심사사상적 배경고민과 감정들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또한 명시적으로 표명된 것과 이와 반대로 암묵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관례와 도덕관습과 가치까지도 되짚어봐야 한다또한,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진, 어두운 이면들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사건이자 미래의 형성에 일정부분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 자리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발발하고, 범죄와 재난상황이 일어나면 처음에는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가 점차 명료하게 전모가 밝혀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모호한 면이 걷히면 정확한 그림이 잡힌다그리고 대중이 이를 받아들인다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진실과 무관할 때도 많다. 대중들이 연표로만 기억하고 쉽게 오해하거나 쉽게 지나쳐버리고마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들이 그렇다. 전쟁 당시에는 현실로 존재했을 이데올로기의 망령과 그로 인한 살인과 공포는 먼 훗날에도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못하고, 이해관계자들이 만들어 낸 허상만 존재하는 사례가 많다.

 

 

"비버는 복잡한 군사적 움직임들과 여기에 책임 있는 사령관들의 논리를 대단히 명확하게 서술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전쟁의 실제 희생자들에게도 섬세하게 신경을 쓴다. 어른용 철모에 불안한 얼굴이 가려진 소년들, 여러 번 윤간을 당하는 사이사이 가까스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들, 가족 농장이나 배우자의 무덤을 떠나고 싶지 않아 지옥의 한가운데에 놓인 노인들. 그 결과 현대 역사서의 걸작이 탄생했다." - 마이클 벌리 (가디언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이 학계와 언론에 이르기까지 걸작 논픽션으로 오늘날까지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를린 전투는 1945416일부터 52일까지 2주에 불과한 기간 동안 벌여졌지만, 작가는 베를린 함락과 독일이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베를린 전투 발발 이전부터 시공간을 오가며,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비버는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베를린 전투가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대적 상황부터 이를 둘러싼 주요 인물들의 심리상태까지 독일과 소련의 입장을 균형있게 다루며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기록보관소 자료, 일기, 회고록을 바탕으로 수백만 명의 경험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마치 영화를 방불케하는 시공간의 변화와 교차편집 방식,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롱샷이 반복되는 서술은 독자들의 혼을 빼놓으며 당혹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역사를 입체감 있게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일전에 읽었던 '봄의 제전 (Rites of Spring: The Great War and the Birth of the Modern Age)'에서 저자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1차 세계대전의 의미에 대해 다룬 수많은 저술서 중에서 만족스러운 저작들은 대부분 시인과 소설가문학 비평가들한테서 나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역사는 이성이 살아 있던 18세기와 19세기 합리주의 시대에 널리 지지를 받았지만 1차 대전 이후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세기의 감수성에 적응하지 못했고전쟁의 배경과 그 참혹한 현실전쟁의 의미에 상응하는 설명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의미에서다에곤 프리델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고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도 '집단적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사회 환경과 접점을 잃어버린 개인적 반응꿈과 신화만이 있을 뿐'이라며 역사를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시켰다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을 읽으며,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말에 다시 한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와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이 뛰어난 역사서로 평가 받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치 독일은 절대 악이라고 평가하고 낙인을 찍는다. 물론 나치 독일이 벌인 수많은 전쟁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서도 인류와 인간애를 지키기 ㅟ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고, 소련이 나치의 침략에 저항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규모 강간 등 그 신성한성취를 더럽히는 행위도 있었음을 저자 비버는 언급하고 있다. 전쟁에서는 누구도 해당자의 역할 또는 정복자의 역할만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 깨닫는다.

 

 

수천만 명이 죽고 부상당하고 나서야 2차 세계대전전쟁은 끝이 났다경제는 파탄이 났고각 국에서는 분쟁이 발생했다패전국은 거리를 배회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위장하였고승전국은 이겼지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자유존엄정의는 전쟁이 초래한 막대한 희생을 생각할 때 공허하기만 했다옛 권위와 전통 가치는 신뢰를 잃었다그러나 옛것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권위와 가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전쟁에 들인 막대한 노력특히 강렬한 정서적 헌신은 평화를 달성하는 작업에서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었고 유럽은 엄청난 우울감에 빠져들었다유토피아적인 사회적 꿈은 전쟁 후 닥친 인플레이션과 실업빈곤인플루엔자 유행병으로 잔인하게 지워졌다결국 평화에 뒤이어 불가피하게 환멸과 허무가 찾아왔다전쟁이 그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끔찍한 생각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한동안 그런 생각 자체를 묻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순간의 생생함 속에서 찾고 향락과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앤터니 비버의 역작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를 읽으며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se)’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사덴은 상처를 주는것, ‘프로이데는 환희라는 뜻으로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줌으로서 느끼는 환희를 의미한다우리 중 누구도 한번쯤은 스탈린이나 히틀러처럼 세상의 정복 또는 멸망을 꿈꾸거나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부정적 파괴욕망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우리 마음속에는 나의 행위로 인해 타인이 처하게 되는 고난적 상황을 기뻐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이런 심리적 기제는 어떠한 상황하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너무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세상에 나라는 자기정체성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깃든 상태에서 악은 발현될 수 있다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공허하고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악이 구체화되는 것이다불평등한 격차가 역전의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회개선의 가능성그 여지 조차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과 허무를 느낀다그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고통과 고뇌의 원인 조차 규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구조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는 순간개인이 세계와 단절되고 사회와 유리되었을 때 악은 발현되는 것이다.

 

 

"극도의 고통, 심지어 타락조차 인간 본성의 최악의 모습뿐 아니라 최선의 모습을 끄러낼 수 있다. 많은 소련군 병사들은 독일의 민간인들을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 이데올로기로 인간성이 파괴된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세계에서 뜻밖의 다정함과 희생에 가까운 몇몇 행동은, 만약 그조차도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이야기에 작은 등불을 밝혀준다." (p. 57)

 

 

물론 완벽한 이념은 없다이데올로기는 적절한 방법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지나친 경쟁 속에서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악이 매력적인 이유는 악은 오로지 자기자신과 자신의 방식을 믿는 확고한 신뢰가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만 옳고 나만 믿을 수 있다라는 생각은 나 이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점차 파편화되고 원자화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 속에서 악은 번성한다악을 극복하는 방법은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 가능하다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공존하며 살아 갈 수 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계에 절망하며 무릎 꿇지 않고 같이 신뢰공감연대하며 상호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그것이 사소한 변화와 미약한 성공이라고 하더라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2022년 봄유럽에선 또 다른 '봄의 제전'이 펼쳐졌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우리는 본서에서 다룬 바와 같이 그동안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시작되어 명분과 목적 없는 전쟁이 결국 황폐함과 절망만이 남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지켜봐왔다유발 하라리는 국가는 스토리 위에 만들어지며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앞으로 어두운 시대가 끝나고 난 후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전할 스토리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한다이는 나는 대피할 곳이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며 끝까지 수도에 남아 항전 의지를 전한 대통령항복하라는 러시아 함대 앞에 '엿이나 먹어 버려라'하며 굴하지 않고장렬하게 전사한 13명의 스네이크 섬의 수비 대원들맨 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막아내려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하라리는 국가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태어나며 장기적으로이 이야기들의 힘은 탱크보다 강하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우크라이나에 하루 속히 봄이 찾아오길 바란다우크라이나의 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의 가사처럼 적들이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가 지켜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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