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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가면 - 성폭력 퀴어 생존자 이야기
노유다 지음 / 움직씨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 오스카 레반트 -
과거경험에 대한 기억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화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남아 개인의 의식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수도 있고 뼈아픈 추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수 있다.
"기억은 움직임을 싫어한다. 사물을 정지된 상태로 유지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다른 많은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장면도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
- 바다 (The Sea) 중에서 -
<코끼리 가면>은 가족 내 성폭력 생존자의 자전 소설이자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그림책이다. 특히 ‘글그림책’(노블 그래픽)
이라는 형식이 주목할만한데, 스토리텔링을 극대화한다는 측면도
있지만,기억을 다루는 소설의 주제에 걸맞게 화석화된 기억들의
장면장면들을 이미지화하여 전달하는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고통스러운 기억 저편의 기억을
재생하고 증언하는 피해자의 용기를 상징한다. 코끼리는 매우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은 동물로 정평이 나 있다.
죽은 동료나 가족의 마른 뼈를 알아보고 코로 만지기도 하며,
수백 킬로미터에 떨어진 물가를 기억하며, 심지어 35년 전에
헤어진 인간을 다시 만나며 과거를 기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두머리인 '가장 암컷'은 전체 가족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동할 길, 과일나무가 있는 곳, 가뭄에
물을 찾는 방법, 그 밖에 생존에 필요한 정보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은 어린 암컷들에게 전수되고, 후에 이 암컷 중의
한 마리가 우두머리가 된다.
본 소설속의 코끼리는 이러한 습성을 상징화한 것이다. 또한
소설의 제목 <코끼리 가면>은 이러한 코끼리의 본능을 억제하고
제어하는 현실적인 장벽을 의미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는
그래서 더 울리는 바가 크다. 치유는 현실의 어려움과 과거의
고통을 넘어서야만이 가능하며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위해
진보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움직여야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현명해지는 (Old and Wise) 코끼리처럼...
이 책을 펴낸 ‘움직씨’라는 생경한 출판사명은 ‘동사’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출판사명에 말글만 앞선 진보,
‘위선’을 경계하며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맞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출판사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행동하는 진보 그 첫걸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