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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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이 소설의 홍보문구이다. 소설은 주인공 김지영씨의 이상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의사가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지영씨는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p. 26)하는 할머니와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p. 35)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해야한다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p. 68) 배우며 자랐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불행히도 김지영씨는 그 "아무나"에 속했다. 태어나면서 부여 받은 주민등록번호는 여성은 2번이었고, 초등학생 때의 학급번호도 남자부터였다. 남자부터 급식을 먹었고, 반장도 남자가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학창시절 남성으로부터의 스토킹, 언어폭력은 그 자체의 고통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시장에서 홍보대행사에 어렵게 입사하여 악착같이 살아남지만, 아이를 가진 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 생활도, 일도, 꿈도, 심지어 자신까지 전부 포기하고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맘충'이라는 비난이었다. 그녀는 결국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

 

 

인물, 사건, 배경 등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아니 평범함을 넘어 진부한 쪽에 가깝다. 이 소설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철저하게 평범하고 진부한 개별적 요소로 쌓아 올린 소설의 구성은 역설적으로 이 소설을 빛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코세대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재현해낸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평균적인 삶은 독자들에게 진부함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영씨'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삶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씨의 담당의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좌절을 겪은 아내를 지켜보며 평범한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여성으로서의 김지영씨의 삶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지만 그러한 그마저도 자신의 병원에서 일할 직원을 채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성차별적인 사고에 머물고 있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올해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올해부터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소설 속 김지영의 말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소설 속 지원이 보다 다섯 살이 많은 과학자와 작가를 꿈꾸는 딸이 있음을 밝히며 딸이 살아갈 세상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될 것을 믿고 그를 위해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나도 아버지로서 갓 태어난 딸이 살아갈 세상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지길 바란다.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딸이 성장해가면서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자인 네가 그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로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았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p.156)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올해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김지영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포스트 김지영들을 현재의 김지영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임을 믿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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