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백년손님 - 벼슬하지 못한 부마와 그 가문의 이야기
신채용 지음 / 역사비평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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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학문의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쓸 곳이 없고,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펼칠 곳이 없다. (학무소용, 재무소전)  



이는 조선왕실의 백년손님이자 왕의 사위인 부마를 표현하는 말이다.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식민사관으로 인해 광복 이후 7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조선시대와 조선왕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종식되지 않은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왜 작가는 부마에 주목하였을까? 이는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였다. 부마는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생소한 존재였기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고, "학부소용, 재무소전"의 한계를 지닌 부마라는 존재를 통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본다는 것인지 의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문물제도가 어느 정도 완미되는 성종 전까지는 부마들도 일반 관료처럼 높은 관직에 올라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과거에 응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도에 이르러 경국대전이 반포되고 조정 내에 사림 세력이 등장하는 등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정착되어가자 부자의 정치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성종 이후부터 부자는 법에 따라 주어진 관직만 받아야 했으며, 일반 관료처럼 조정이 나가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허락됩니다 않았고, 과거 응시 또한 철저하게 제한 받았다. 이 같은 원칙이 세워지고 시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왕조가 성리학을 국가 기념으로 삼아 건국되었다는 이유가 크다. 성리학에서 중요시하는 명분과 의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왕의 가까운 인척인 사위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은 분명 용납되지 못할 사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마 가운데에는 벼슬하지 못하는 슬픔을 극복하고 탁월한 서예가나 문사로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많다. 이 또한 성리학에서 지향하는 궁극적인 인간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속세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은거하셔서 수기의 자세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자를 길러내 향촌 사회에 그 이념을 뿌리내리게 하는 은일지사였다.


부마는 왕의 사위일 뿐만 아니라 왕위를 물려 받을 세자에게는 자형이나 매부이고, 세손에게는 고모부가 되는 존재이다. 이는 부마로 간택되었을 때 부마 당사자는 정치 참여가 제한되었던 데 반해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은 왕실의 인척으로서 국왕의 근위 세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조선시대 정치 세력에 대한 연구가 전기에는 공신과 훈척, 사림파를 중심으로, 중기와 후기에는 동인, 서인, 노론, 소론 등 각 붕당을 중심으로 연구되었고, 왕실 관련 연구에서는 왕비나 후궁만을 주목했기 때문에 왕의 사위인 부자라는 존재와 그 세력은 간과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의 삶에서는 부마 자신을 비롯하여 그 아버지나 자손들이 정치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부마를 비롯한 그 가문의 정치적 역할과 의상은 조선시대 정치 세력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작가가 밝힌 바와 같이 부자는 왕의 최측근이지만 벼슬할 수 없는 신분이기 때문에 그 개인에 대한 자료는 소수를 제외하고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의 총 92명의 부마 가운데 정치 문화 부분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12명의 부마를 선택하여 그들을 개인별 열전의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에게 선택된 12명의 부마는 다음과 같다.


1.
태조 부마 흥안군 이제 : 개국공신의 운명
2.
문종 부마 영양위 정종 : 단종의 보호자
3.
성종 부마 풍원위 임숭재 : 연산군의 채홍사
4.
연산군 부마 능양위 구문경 : 폐지로 인한 이혼
5.
성종 부마 고원위 신항 : 뛰어난 문장가
6.
중종 부마 여성위 송인 : 문집을 남긴 문사
7.
선조 부마 해숭위 윤신지 : 장원급제 실력
8.
선조 부마 동양위 신익성 : 강직한 척화론자
9.
효종 부마 동평위 정재륜 : 숙종의 밀사
10.
현종 부마 해창위 오태주 : 중국에 알려진 명필
11.
영조 부마 금성위 박명원 : 박지원은 함께한 사행
12.
영조 부마 찬성의 황인점 : 정조 특명의 사행




부모는 왕의 사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을 간택해준 왕에게 협조하면서 서구적인 자세를 튀하거나 왕의 악행을 부추기는 등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군주의 훌륭한 조력자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선왕조 500년을 회고하고 평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바와 같이 역사속 헤게모니 다툼으로 정치적 지향점과 운영방식이 변화하였을 때 부마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던 존재를 통해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 느꼈다. 때로는 정치판의 한가운데에서 때로는 속세를 떠난 문인으로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부마라는 존재가 궁금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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