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역사 -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비의 역사> 내가 처음 이 책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이 책의 홍보 문구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었다.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홍보문구의 의미는 저자가 남긴 서문에 더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일상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소비의 역사'를 다룬다. 한국 인문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소비와 관련된 주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비는 고전경제학과 경제사에서도 도외시되었고, 특히 생산을 중시했던 근대사회에서는 소비를 생산과 대비시키며 그 의미를 폄하해왔다. 예를 들어 '생산적인 관계'라는 말에 비해 소비적인 논쟁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평적 대비를 넘어 소비에 열등성과 부정적 함의를 투사한다. 나아가 소비를 사치나 방탕과 연결시키곤 하는 사회적 통념은 결과적으로 소비를 진지한 연구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p. 4)

 

 

과연 그럴까? 소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학문적으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경제학도로서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공급은 스스로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는 세이의 법칙 (Say’s law)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의 주장은 자신들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공황을 맞이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때 등장한 케인즈는 유효수요론 (Theory of effective demand)으로 고전학파의 주장을 반박하며 대공황의 원인을 설명한다. 케인즈의 주장은 공급은 수요에 의해 한정된다는 것이며, 여기서 등장하는 유효수요란 소비를 의미한다. 거시경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는 경제학사는 물론 경제학의 발전을 이끈 큰 원동력이었고, 이를 촉진시킨 화두는 유효수요 즉, 소비였다. 그런데 소비가 경제학과 경제사에서 도외시되었고 소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니…… 저자의 주장이 궁금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저자의 주장의 의미가 어떤 거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거나 쓰는 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나 상징 등의 비물질 요소를 포함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폐기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계형성 및 이데올로기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런 '소비'라는 개념을 살피기 위해 상품, 마케팅, 유통채널, 소비의 주체 등을 총괄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상품에 대한 평가나 불매운동과 같은 행위를 돌아봄으로서 소비의 장구한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저항과 해방, 연대의식을 끄집어내고 있다.책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상품 (Procuct) : 굿즈 Goods, 욕망하다

 

근대초 유럽에서 유언장은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물건들을 소유했고, 어떤 물건들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아내에게 남긴 셰익스피어 일화가 인상 깊었다. 혁명 후 등장한 양복과 기성복의 등장에는 계층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결과였다. 신부의 드레스, 신랑의 턱시도와 관련된 논쟁에서는 최근의 화두인 젠데이슈 및 당시 사회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유럽풍으로 변해가는 중국도자기를 보면서 미지의 세계를 소유하려는 유럽의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비누는 서구 중심적인 제국주의로부터 파생된 인종 차별적 최초의 식민주의 상품이었다.

 

 

 

2. 촉진 (Promotion) : 세일즈 Sales, 유혹하다

 

노동 및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여성들은 18~19c 판매자로서 생산의 대열에 합류하게된다. '판매여성 (Saleswoman)과 상품은 하나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은 이러한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18~19c 약장수의 성공을 마케팅 측면으로 분석해 보면 이방인이 가진 신비주의적 요소, 인쇄물을 통한 광고, 정부의 느슨한 규제 등으로 분석한 대목은 참 흥미로웠다. 19c의 재봉틀을 보면 해외판매와 최초의 할부제 도입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했고, 젠더이슈를 부각시켜 여성적인 물건이라는 광고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 성공의 큰 요인이었다는게 놀라웠다. 에이본 레이디라 불리는 화장품 방문판매원도 소비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판매원도 소비자도 여성인 면에서 마케팅 포커스가 잘 작용되었고 동시에 방문판매라는 획기적인 채널로 이를 극대화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광고와 홍보 목적에서 유행했던 트레이드 카드가 인쇄기술의 발달로 몰락한 사례를 보면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3. 소비주체 (Consuming subjects) : 컨슈머 Consumer, 소비하다

 

소비평활화를 위한 노동계급의 계모임과 과시적 소비 사례에서는 근대식 금융제도가 등장하기 이전 계모임이란 관행적 제도가 언제 어떻게 등장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수집은 과연 소비 행위인가라는 논점과 관련해서는 수집행위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적인 소비행위라는 경제학자 제이콥 바이너의 발언이 흥미로웠다. 근대초 의학서의 비밀스런 소비라는 테마에서는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을 고찰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책의 독자는 본질적으로 텍스트의 세계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여행객이며 저항성을 내포한다는 것은 독자들이 자신만이 독특한 내면세계에 비추어 책을 소화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성형소비의 내셔널리티와 관련된 주제에서는 국가별 문화차이에 따른 소비성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4. 유통 (Place) : 마켓 Market, 확장하다

 

순례지에서 의료 서비스 시장으로 변화한 바스 (Bath) 사례를 보며 유통채널의 진화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거대한 수정궁으로 지어진 영국의 만국박람회는 산업혁명의 성과와 신기한 상품들로 구성되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자 유통 채널이었다. 또한 카탈로그와 홈쇼핑의 등장은 소비의 역사에서 욕망을 평준화시킨 중요한 사건이었다. 쇼핑몰은 19c 미국의 소비문화를 주도한 백화점에서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인구구성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소비공간의 혁명이자 진화였다.

 

 

이 책은 소비라는 하나의 테마를 통해서 본 역사의 발전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H. Carr의 말처럼 이 책은 과거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오늘날 직면한 문제들과 동 떨어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소비라는 주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조망함으로써 역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 또한 소비자 운동의 발생이나 바이 아메리칸 캠페인의 역사, 윤리적 소비의 기원 등을 살펴봄으로서 소비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저항과 해방 연대의 주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홍보문구에 대한 오해와 반발로부터 시작했지만 소비의 역사에 대한 공감과 설득으로 마무리되었다.역사라는 테마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펴보길 원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소비의역사, #설혜심,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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