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삶은 별자리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별자리는 저마다 거리와 밝기가 다른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또한각각의 별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제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하지만 별들은 인간의 가시거리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군집된 별자리로 인식하게 된다수천 년의 시간 동안 별자리의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의 이면에는 이런 사실이 숨겨져 있다.

 


삶을 뜻하는 단어 '하임'은 복수형이다. 히브리어로 삶은 단수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언어는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여러 삶이 있고, 그 삶들은 연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다고 말한다.” (p. 33)

 


 <당신이 살았던 날들>을 읽으며 저자의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별자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서 또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이 세계를 유랑하는 방랑자들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내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과 죽음은 끊임없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p. 23)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상실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종국에는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 저자의 말처럼 아무도 삶과 죽음에 대해 명확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삶과 죽음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손발을 맞춰 춤을 추는 두 사람처럼 삶에 닥치는 상실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힘겹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상실을 경험하며 우리는 때론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으로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색의 근원을 파랑과 노랑 두 가지로 규정한다. 이는 빛과 그림자, 힘과 나약함, 포용과 분리를 상징하며 두 가지 색의 공존은 역동적인 의미를 생성하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노란색 조끼와 푸른 연미복을 입은 이유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러한 괴테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베르테르의 열정적 사랑이 금빛 물결이 되어 흘러가다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여 저 푸른 심연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삶을 살아가다보면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삶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손을 맞잡은 곳에서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