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으면서, 내가 하루키의 소설 이상으로 그의 에세이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권 한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고양이를 버리다 >을 서가에 꽂으며 살펴보니 소설 보다 에세이가 생각 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사실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출간 소식을 접하자 마자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결정했다. 그 이유는 내가 삶과 일상에 대한 빛나는 통찰 등이 담겨 있는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매력에 빠져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키의 팬 이전에 애묘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루키가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의 전작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으며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루키가 애묘인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양이를 키워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는 이러한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와 정을 나눠왔던 수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그의 곁에서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장수 고양이 '뮤즈'와의 일화들이 에세이에 담겨 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과 괴로움이 있지만, 하루키는 인간과 고양이라는 종의 구분을 넘어서 고양이의 생각과 행동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느끼며 마음을 교류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해준 그의 반려묘 '장수고양이'와의 추억에 대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p. 145)

 


<장수 고양이의 비밀>의 온기 어린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때에 <고양이를 버리다>의 출간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했던 나는 책을 받아보고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놀랐던 건 생각보다 얇고 가벼운 분량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책의 내용과 하루키가 남긴 작가 후기를 보며 이렇게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짧은 글이라서 어떤 형태로 출판하면 좋을지 꽤나 고민했는데, 결국 일러스트와 함꼐 독립된 조그만 책 하나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내용이나 문장의 결로 봐서, 내가 쓴 다른 글과 같이 엮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p. 98, 작가 후기 중에서)

 


내가 책을 읽으며 당황했던 건 책의 분량 보다도 그 내용에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을 보고 예전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에서 느꼈던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책을 구매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러한 내용 전개를 기대하고 예상하면서 애묘인으로서 하루키와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를 버리는' 행위가 어떤 반전을 머금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책을 읽어 나갔는데, 책의 내용 전개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던 것이다.

 


물론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처럼 에세이에서는 하루키가 고양이에 얽힌 두가지 추억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에서 고양이와의 추억은 그와 추억을 공유했던 다른 누군가의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그때 비로소 책의 표지를 다시 살펴보니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밑에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의 아버지의 역사와 그와 함께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p. 87)

 


"그 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품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p. 87)

 


내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취향 그리고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엮어서 독자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하루키 특유의 낙천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하루키 또한 마냥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일정 경지에 올라선 작가 답게 이야기를 쓰는 일은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며, 이는 모두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또 그에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작가로서의 숙명을 언급하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마치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며,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정말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p. 89)

 


하루키는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그의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했을 때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더듬어 간다. 그 역사 속에는 그가 아버지와 공유했던 추억 중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이자 본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를 버리러 간 날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 역사들은 아버지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가족의 역사이며 또한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것은 좀 더 다른 것 아닐까? 하루키가 말했듯이 어쨌든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고 나서 하루키의 에세이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