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은 102세의 베르트 할머니와 경찰의 대치 상황으로 시작한다. 결국, 할머니는 옆집 남자를 총으로 쏘아 부상을 입히게 되고, 이 일로 인해 경찰서로 가서 그를 왜 쏘게 되었는지 심문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택의 지하실에 몇 구의 시체가 있음을 자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체들이 왜 그곳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아픈 삶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한다.

   

 

, 다시 시작할까요? 시신이 총 일곱 구가 발견됐고, 부인은 세 차례의 살인을 자백했어요. 나치 한 명과 두 남편, 나머지 네 명은 누구죠?“

마찬가지야.“

마찬가지라니, 뭐가요?“

괴물들이라고, 또 다른 괴물들.“

    

 

그녀가 이렇게 살인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살인자로 대표되는 그녀의 표면적인 삶, 그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녀의 삶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조망한다. 그녀의 삶의 이면에는 20세기를 지나쳐오는 동안 그녀가 만나왔던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남성 중심의 역사로 인한 폭력과 억압이 있었다. 그녀가 만난 남성들은 설득력 있는 반대 논리를 펼치는 대신, 보다 충격적인 논리를 선택했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과 착취, 모욕이었다. 이는 부족한 지성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손쉬운 방식이었고, 남자들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그녀가 겪어온 남성들은 전쟁을 이용해 그녀의 몸을 탐하려고 한 군인, 가정폭력범, 위선자, 인종차별주의자, 자신의 콤플렉스를 비뚤어진 방식으로 아내에게 투사하거나 자신만의 망상에 빠진 자들이었다. 그녀에게 그들은 괴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맞선 그녀의 대응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전 법을 믿어요."

"그럼 날 지켜줘야 할 순간엔 어디 있었니? 정의와 법은 정략결혼처럼 서로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야. 오래오래 천천히 죽이는 건 살인으로 치지들 않지. 아내를 때리고, 고문하고, 파괴하는 남편은 법으로 처벌받지 않아...“

증거만 있다면, 처벌받습니다.“

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내보일 수 있니?“

    

 

그녀가 오랜 기간 남성들로부터 억압을 받으며 빛을 잃어갈 때, 절실하게 정의와 법을 필요로 했을 때, 정의와 법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의 규칙에서 그녀의 삶을 보장받는 것을 바랄 수 없었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 오직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그녀만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어린 시절 그녀의 수호천사였던 나나 할머니가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수군댈 걸 걱정하는 거야......? 인생은 짧아, 이것아...... 세상의 규칙 따위...... 아무 상관없다고...... 살아야 해...... 할미 말 들어!“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에서)

    

 

모지스 할머니가 자전 에세이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에 남긴 말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화가를 꿈꿨지만, 삶의 무게로 인해 76세가 되어서야 붓을 잡았고, 10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으며,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었다. 그녀는 그녀가 살아낸 삶과 삶의 순간순간을 표현한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누구나 다른 삶의 밀도와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소설 속 베르트 할머니와 같은 삶이 있다면, 모지스 할머니와 같은 삶의 방식도 존재한다. 우리가 그들보다 높은 밀도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베르트 할머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베르트 할머니를 눈앞에 드러나 있는 표면적인 삶만으로 평가하기 이전에 그녀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역사적, 사회적 맥락으로 희생되고 상처를 입었던, 그 이면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게 될 당신도 현실의 삶 앞에 당당할 수 있기를, 또 그녀처럼 열정과 유쾌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당신은 그리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는데?"

"내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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