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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기욤 뮈소란 작가를 알게된 계기는 "구해줘 (2006)"를 접하면서였다. "구해줘"는 출간 즉시 주목 받기 시작하여 장장 200주 동안 아마존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그의 대표작이다. 로맨스와 미스터리의 절묘한조합으로 스릴과 서스펜스,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기욤 뮈소란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난 3년간 겨울에 출간된 "지금 이 순간 (2015)", "브루클린의 소녀(2016)", "파리의 아파트 (2017)"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올 겨울도 마찬가지로 그의 신간소설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내용뿐만 아니라 소설의 배경까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지금 같은 환절기에 어울리는 본 소설 "아가씨와 밤 (2018)"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기뻤다.("아가씨와 밤"은 1992년의 겨울과 2017년의 봄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나는 책의 뒷표지에 인용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기다리던 스릴러! 이 소설의 결말을 미리 귀띔해주는 건 범죄행위나 다름없다."는 AFP의 추천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따라서, 본 리뷰에서는 추후 소설을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소회 위주로 서술하고자 한다.
사건은 1992년 겨울, 프랑스 코트다쥐르의 생텍쥐페리고교에서 발생한다. 갑자기 몰아닥친 눈사태로 캠퍼스가 마비되던 날,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이 대상이었던 빙카 로크웰이 철학교사 알렉시와 함께 사라졌고, 연인사이였던 그들이 파리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25년의 세월이 지난 2017년 봄, 생텍쥐페리고교는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오래된 체육관을 허물고 첨단시설을 갖춘 현대식 다목적 건물의 착공식을 계획하고 행사에 졸업생과 교직원을 초대한다. 1992년 졸업 동기인 토마, 막심, 파니는 각자 25년 동안 숨겨온 진실이 드러날 위기에서 사건의 전모를 아는 누군가의 복수 메시지를 받고 옛 교정에 모이게 된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 지냈지만 그들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무려 25년 동안 다모클레스의 검을 머리 위에 매달고 지내왔다.
"우리는 인생의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퍼즐 조각을 맞춰 가든 항상 빈자리가 남아있게 마련이다. 마치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있듯이." –제프리 유제니데스 – (360쪽)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라는 찬사와 함께 등장하여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작가 제프리 유제니데스는 삶이란 퍼즐을 맞춰나가다 보면 누구나 부딪치게 되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할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인한 공백과 한계, 삶의 조각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소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제프리 유제니데스의 이 말이 본 소설 '아가씨와 밤'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핵심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토마는 소설 속에서 "누구나 세 개의 삶을 가지고 있다. 공적인 삶, 사적인 삶 그리고 비밀스러운 삶."이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말을 인용한다. (157쪽)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은 고통과 환희, 모순으로 점철된 인생의 복잡성과 이해하기 어렵고 상반되는 욕망으로 얽혀 있는 삶에 대해서 자주 언급한다.
"넌 소설을 쓰는 작가라서 그런지 늘 허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세상은 네가 생각하듯 그리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곳이 아니야. 삶의 현장은 어디나 전쟁터이고, 기본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어." (183쪽)
"너도 이제 독해져라. 인생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넌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실존은 그 자체가 전투이다. 산다는 건 결국 지속적인 승리의 축적이다.’라고 한 글을 읽어봤을 거야." (185쪽)
"문명이란 불타는 혼돈 위를 살짝 덮고 있는 얇은 막에 불과해. 산다는 건 어차피 누구에게나 전쟁이라는 걸 잊지마" (292쪽)
'삶은 전쟁'이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표현처럼 우리의 삶은 소중하지만 때로는 무의미하고 잔인한 것이기도 하다. 삶은 불확실성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고,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삶을 완전히 통제한다는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마다가 내포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온 사건의 당사자들인 토마, 막심, 파니 조차 25년의 세월이 지날 때까지도 사건의 전체 내막을 알지 못한다. 상반되는 욕망들은 각자의 비밀스러운 삶과 나아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만들어내지만, 때론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희생이라는 옵션을 선택하여 저마다가 가진 가치를 지키기도 한다. 혼돈 속에서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없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진짜 삶의 의미는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의 조각을 맞추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