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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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 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모두 지난 후에는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 신해철, 70년대에 바침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는 소설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에서 예술과 권력의 충돌로 점철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묘사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예술과 문화의 영역마저 재단 받으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당국의 일방적인 오해로 인해 하루 아침에 형식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극도의 불안 속에서 음악가로서의 예술적 자유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존경하는 동료 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를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 매도할 것을 강요 받았고, 말년에는 자신의 신념까지 부정하면서 그의 삶에 수많은 상처를 남긴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나는 시대의 소음을 읽으며, 마왕 신해철을 생각했다. 그 이유는 내가 시대의 소음을 처음 접했던 시점이 그의 기일인 10/27 무렵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시대의 소음에 맞서 문화는 물론 사회, 정치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데 두려워하지 않았던 음악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해철은 나에게 음악인로서 처음 다가왔다. 지금도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인용될 정도로 강렬했던 데뷔의 순간은 당시 어린 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데뷔 후 무한궤도와 솔로 활동들 그리고 밴드 넥스트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내 청소년 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넥스트의 전성기는 락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기 시작한 내 중고등학교 시절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콘서트 티켓도 넥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아티스트로서 그가 제공하는 음악만이 아닌 더 큰 차원의 음악이라는 넓은 세계로 인도해 준 초대자인 동시에 안내자이기도 했다. 고스트스테이션의 DJ로서 그는 이제 막 음악이라는 세계를 탐구해가는 내게 지도였고 네비게이션이었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이전이었던 시기였고, 많은 음반을 사기엔 금전적으로 많이 부족했던 학생신분으로서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최신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창구였고 동시에 좋은 음악을 선별하고 음악관을 확립하는데 지침이 되는 바이블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강헌은 예술가는 예술로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그러한 주장은 예술을 신비화하여 현실로부터 소외시키려는 생각 보다도 더 불순한 사고임을 지적하고 있다. (p. 159) 나도 예술가는 그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영역 안에서는 자유로운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예술의 영역 안에서 마저도 예술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음악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음악이 시대의 소음에 맞서는 역사의 속삭임 이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존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권력의 폭력 앞에서 그들은 예술가 이전의 한 명의 고독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쇼스타코비치가 존경한 스트라빈스키는 혁명후의 러시아에 등을 지고 서방세계에 건너와 미국시민으로 죽었다. 그의 동료 프로코피에프는 서방세계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탄압과 굴욕 속에서 죽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를 떠나지 않고 러시아에서 성장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당신이 예술가라면 예술과 권력의 불협화음이 빚어 낸 시대의 소음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당신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비판하고 지적할 수 있을까?

 

 

 

내가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신해철은 개인의 자유, 그리고 그 한 사람 한사람의 행복만이 인생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 사람이며, 자신이 가진 모든 무기를 동원해 그것을 위협하고 훼손하는 모든 적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고자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p. 199) 그는 예술가로서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현실의 영역에서도 자신과 공동체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알려준 아주 멋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마왕 신해철 (p. 444)

 

 

 

락키드 출신답게 내 젊은 시절의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마왕 신해철에 바치는 헌사도 락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언 헌터의 노래 'Old records never di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 가끔, 인생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하지만 음악은 어디에나 있어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말이죠."

(Sometimes you realize That there is an end to life.

But music's something in the air. Old records never die.)

 

 

 

시대와 기술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 ‘New Experiment Team’이라는 팀명에서도 드러나듯이 락과 밴드음악 포맷 뿐만이 아닌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영화음악, 재즈 등을 넘나드는 도전정신은 아티스트로서 그가 가진 장점이다. 그가 남긴 30여장의 디스코그래피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Adios! 내 어린 시절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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