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들은 협박이라 말하지 않는다 - 두려움,의무감,죄책감이 당신을 힘들게 할때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소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협박>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책에서 다루는 <협박>은 우리가 흔히 "지금 나를 공갈 협박하는거야?" 할 때의 그 협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협박 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 순간의 '당혹'과 나 또한 한 명의 '제대로 된' 협박자였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이 순간이 괴롭고 힘들 뿐이다.
책의 <협박>은 법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위협하는 강력한 형태의 조종"을 의미하는 <감정적 협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할 것도 없고 이름도 생소한 이 <감정적 협박>이 왜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문제는 "설령 우리가 다른 모든 면에서는 노련하고 성공적일지 몰라도, 이 <감정적 협박>에 얽히기만 하면 당혹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데 있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 협박>에 분개하고 좌절을 느끼면서도 '평화'라는 명분으로 협박에 굴복하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만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볼 때 끊임 없이 우리를 조종해서 성인답게,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고 있는 '나'답게 처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협박자들은 대개 배우자나 부모, 형제 또는 친구, 애인, 직장 상사, 동료와 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넌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니? 너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 또 그러면 난 '콱'죽어버릴 거야!"
"얘야, 정히 그렇다면 우린 더이상 널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그래도 좋다면 그 여자와 결혼해라."
"직장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내게도 다 생각이 있지. 당장 사표를 쓰게!"
"야, 친구사이에 이런 것 하나 못들어 주냐? 넌 친구도 아냐 임마!"
"자긴 날 사랑하지 않는거야, 진즉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우린 이쯤에서 갈라 서는 게 낫겠어!"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던 정겨운(?) 소리들이 아닌가. 가만히 되짚어보자. 이런 말을 듣게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잘 살펴 보면, 그들과 헤어지거나 외면당하거나 관계가 소원해 질 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들의 요구에 쉽게 굴복해 버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행위에는 어느 구석에도 삶의 주체로서의 '당당한 <나>가 없다. 순식간에 정체성을 상실당하게 되는 그 순간에는 어쩌면 자존심 따위는 스스로 호주머니 속에 구겨 넣어버리는 지도 모른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던 것같다. 그리고 협박에 굴복할 때면 늘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번에도 또 졌어. 양보하는 건 항상 내 쪽이군. 나는 왜 내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 거지?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했던 것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껏 그렇게 살아 왔다. 그리고 내일을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뻔하고 뻔한' 스토리는 끊임 없이 우리네 인생에 도돌이표를 찍게 되는 걸까?
책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협박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가리기 위해 드리워 놓은 짙은 <안개>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어떤 식으로 조종하고 있는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개(FOG)>란 협박자들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두려움(Fear), 의무감(Obligation), 죄책감(Guilt)의 약칭이다.
우리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까닭에 협박자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떤 때에 상처를 받는지. 그리고 대개의 경우 우리의 가장 은밀한 비밀까지도 송두리째 알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를 굴복시킬 위협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 내밀한 지식들을 이용해서 안개(FOG)를 뿜어대는 것이다. 그러면 순식간에 안개 속에 갖힌 우리는 그자리에 쓰러져서 특유의 영민함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항복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그들은 협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에 나타난 <협박>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그 협박 앞에 나약하게 무릎 꿇어 온 우리의 실상이다.
살다보면 가끔씩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봐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스스에게 묻게 된다.
"누가 나의 진정한 협력자고, 누가 나를 위해하려는 자인가?"
책은 말한다. 가장 친근감을 느끼고, 늘 내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왜일까? 그들의 사소한 부탁 속에는 소위 <협박>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이, 상사가, 애인이, 우리에게 어떻게 압력을 가해 오는지 알고 싶다면 책을 들여다 보라.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의 나를 이곳에 끌어다 놓은 수많은 원인들과 만나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니...
그리고 설혹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기 마련인 법,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답을 들고 바로잡아 나가면 될 것 아니겠는가.
저자는 <갑정적 협박>의 유형들과 극복 대안을 선험자들(5명)의 실례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약점단추 제거하기>로 명명된 '안개(FOG)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가치관과 의견, 자신의 믿음과 바람을 당당히 지켜내기위한 "특별한 용기"와 "생각 멈추기" "죄가 없다는 확신과 해방감" "정체성 확립" "의견과 사실 구분하기" "협박 되돌려주기" 등이다.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지만, 쉽게 생각해서 속단할 사항들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물안에 앉아서는 하늘 전체를 볼 수 없음을 인지한다면, 한 번쯤 책 속에 들어가 <나>와 <우리>를 찬찬히 관찰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도 모르게 저지른 나의 <감정적 협박>때문에 상처입었을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분들께 이 글로 사죄의 말씀을 대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