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하지만 알고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남을 통해 깨닫게 되었을 때, 그래서 왠지 작아진 듯한 나를 발견하게 될 때 주로 그런 생각을 하곤 하는 것같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스스로 겸연쩍어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 어찌 나만의 일이겠는가마는, 아마도 이런 류의 '얼굴 붉힘' 현상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괴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한 경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삶은 공부의 연속이다"라든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한다"는 말들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말하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칭호에 대해서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신도 그렇지? 쓰지도 않는 것들을 잔뜩 모셔둔 채, '언젠가는 쓸거야,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뿐이야'라며 자위하고 있잖아? 저기 저 책장에 도열한 책들 좀 봐. 어라, 전공서적이네? 당신, 대학 졸업한 지가 십수 년은 넘었지, 아마...? 아직도 저 책들로 공부하시나봐? 졸업 후에 단 한 번이라도 열어본 적 있어? 보지도 않을 걸 왜 모셔둔거야? 나중에 몸 아프면 약에라도 쓰시려나? 이것 봐라,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라이터들은 또 뭐야. 왜, 라이터 장수 되시려고 작정하셨어? ... 주절주절..."
  끝을 모르는 빈정거림... 마치 바로 코 앞에서 저자의 조소가 번지는 듯하다. 하지만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귓가에서 징징 울리는 그 소리는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내' 목소리가 아닌가! 과연 그랬다. 나는 단 한번도 그것들을 <잡동사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의 일부, 심지어는 분신이라는 생각까지 갖고있으니, 필요 없어진 -더이상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에 대한 나의 집착을 비웃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할 밖에...

  잡동사니란 무엇인가? 쓰지 않으면서도 모셔두고 있는 온갖 물품들이다. 좀더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쓸 일도 없고,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제대로 쓴 적도 없는, 하지만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길 거라는 사명을 띠고 당당하게 막대한 생활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응당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이다.
  모양과 형태는 달라도 우리 주위에는 '내책'과 같은 지위를 가진 물품들이 산재해 있다. 그것은 지난 5년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일 수도 있고, 지난 3년간 꺼내 본 적 없는 앨범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오래된 카세트 테잎이며 문구용품, (한 때는)애독했던 잡지들, 각종 수집품(우표, 인형...) 등등 그 수효를 헤아리기도 힘겨울 정도다. 우리의 생활방식 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고 또 그렇기에 간직하고 있는 사연도 가지가지겠지만, 결국은 모두가 <잡동사니>에 불과한 '내 삶의 편린'들...
  우리는 이런 준(準)쓰레기들이 버젓이 우리의 생활공간을 점령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더군다나 적잖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그들에게 생활공간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부지불식간에 내 방과 집, 그리고 사무실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에 열중하며 살고있는 건지도 모른다.

  저자는 20여 년간 풍수지리를 연구한 결과를 근거로 "신주단지 모시듯 쌓아 둔 당신의 잡동사니들을 과감히 정리하라!"고 강력하게 주문한다. 그것도 "하루 속히 없애버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서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 <잡동사니>들이 기(氣)의 흐름을 방해하여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굳이 '풍수지리'까지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잡동사니>들은 항시 방치되기 마련이고 때문에 그 주위에는 세균이나 벌레심지어는 쥐와같은 달갑잖은 손님들이 주로 활동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훨씬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나처럼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 잡동사니를 처리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고 처리방법과 효과를 소개하는 것에 더하여, 우리 몸의 잡동사니 처리법인 '장청소'에 대하여도 일가견을 보여주는 전문가로서의 소상한 주의와 설명이 이채롭다.

  비록 마지막의 '부록'편(세 페이지)에 드러난 주술적 이미지가 마치 무슨 종교의식을 연상시키는 황당함을 자극하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책을 계기로 주변을 돌아보고 미처 버리지 못해 보듬고만 살아왔던 '나쁜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 졌다는 것은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 소위 '내꺼'에 대한 과민반응 증세가 단지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에 불과한 것이며, 그 집착은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뚜렷한(대개는 아픈) 기억이 작용하여 무의식적으로 유발되는 과민반응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나는 좀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아울러 내 <잡동사니>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잡동사니에 불과하지만 타인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책읽기를 마친 후 동사무소 '마을문고'에 기증할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든 '때'가 있긴 있나보다. 내가 목숨처럼 여기던 책을 기증할 생각을 다 하다니...
  시원섭섭... 시집 보내는 자식 혼수를 챙기는 부모의 기분이 이런걸까? 간혹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고개를 디민다. 하지만 생각일뿐, 손이 그대로 노니는 걸 보면 결심이 확고한 것같아 안심이다.
  "비워야 채울 수있다"고 하였던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너무 멀리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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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6-2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끼던 책들을 마을문고에 기증하시다니 정말시원섭섭하시겠어요..
외국작가인데 풍수를 들먹이고 주술까지 나오다니..
이 책 특이해뵈네요 궁금.. ㅎㅎ

자유인 2005-06-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서운은 합니다만... 뿌듯함도 무시할 수 없지요.
세상에 영원한 '새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집이 쓰레기통이 되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많이 가져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를 준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나누는 삶, 베푸는 삶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