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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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미리 구매해둔 책이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채 놔두고 있었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발견해 보고 난 후 읽게 된 소설 <패싱>. 역시 감정 전달에 있어서는 영화보다 소설이 더 좋았다.



차별을 피하기 위해, 또는 백인의 혜택을 나눠 갖기 위해 흑인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 '패싱'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피부색은 밝지만 흑인의 피가 섞인 혼혈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클레어'는 아주 예쁘고 이기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쫓아 백인으로 패싱해 인종차별주의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린'은 흑인 의사와 결혼해 흑인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 둘은 어린 시절 친구였으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만남이 지속될수록 서로 간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클레어와 흑인임을 인정하며 평온한 삶을 살고픈 아이린. 둘을 통해 인종 문제와 더불어 계급, 젠더, 성 정체성까지 다양한 문제를 다루게 된다. 초반엔 클레어가 참 악녀처럼 여겨졌지만, 뒤로 갈수록 클레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된 건 사회와 사람들 때문이었을 테니까.


이 이야기는 1920년대에 쓰였다. 그 시대를 너무나 생생하고 섬세하게 담아냈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백인과 흑인 사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그녀들의 삶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어느 편이 더 났다고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소설을 읽었으니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 할 거 같다. 이전에 놓쳤던 내면의 감정을 이번엔 느낄 수 있으리라.


편지를 한편으로 밀어두며, 그녀는 놀라움과 약간의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내면을 휘젓는 격렬한 감정을 주시했다. 그녀가 느끼는 놀라움과 흥미는 크나큰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 P69

별다를 게 없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댄스파티는 중요했다. 말하자면 그것이 아이린 레드필드의 삶에서, 다가올 수년 동안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 새로운 요소가 투입된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클레어 켄드리와의 새로운 우정의 시작이었다. - P107

그녀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손에 넣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희생이라는, 정복의 결정적인 요건을 받아들였으니까. 클레어가 브라이언을 원했다면, 그녀는 돈의 결핍이나 장소 때문에 주저하지 않을 터였다. 그녀가 말했듯, 그녀가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것을 막는 건 마저리뿐이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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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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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80년대 사회주의 체제, 청년 '루드비크'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농촌 활동에 참가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 단연코 눈에 띄었던 청년 '야누시'를 만난다.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에 혼란이 온 루드비크로서 야누시를 향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폴란드를 배경으로 퀴어 로맨스를 그린 이 소설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자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이 떠오르게 만든다. (팬이라면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 강가에서 다시 마주쳐 친해지고 농촌 활동이 끝나고 둘은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서로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속삭이던 둘은 결국 사회주에 체제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갈리고 만다.


현재는 미국 뉴욕에 있는 루드비크가 지난날의 연인이었던 야누시를 그리고 편지를 쓰듯 이야기가 펼쳐지니 더욱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자꾸 비교하게 되지만 <그해, 여름 손님>보다 더 깊고 짙게 다가왔다.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계기부터 결국은 슬픈 결말을 맞게 되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다 좋았던 소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억압 없는 자유로운 시대였다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 소설의 결말이 이대로 끝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한 여름에 다시 읽고픈 소설이다. 올여름 다시 깊고 짙게 빠져봐야겠다.


네가 말을 멈췄고 우리의 시선이 잠시 다시 만났다. "너한테 계속 물어보려고 하고 있었어. 나랑 같이 갈래?" - P80

그러니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리 잔혹하고 지옥도 같은 참상이 펼쳐지더라도, 그 참상을 기록하고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저기 있는 한 의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작디작은 불티에도 불은 붙는 법이니까. - P159

너희 둘은 팔짱을 끼고 걸어갔고, 그런 너를 나는 바라보았다.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를, 네가 내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을 여전히 쥔 채로.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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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세상을 방랑하는 철학 1
파스칼 세이스 지음, 이슬아.송설아 옮김 / 레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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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철학자 파스칼 세이스의 '세상을 방랑하는 철학' 시리즈의 1권인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 시리즈는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한 라디오 방송 원고를 모은 책이라고 한다. 라디오에서 이렇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가 있다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 책은 짧은 단편들로 이뤄져 있으며, 저자는 철학자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즉, 읽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책은 항상 한편씩을 읽고 난 후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렇게나 신기하고 재미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나의 지적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답이 정해진 사건 사고라도 조금 더 색다른 시선으로 보는 법을 배운 것이다.


또한 저자는 한 두 가지의 분야가 아닌, 정치, 사회, 과학, 문화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통해 (요즘 핫한 키워드인) '사유'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다. (철학자들의 강렬하고 이야기에 꼭 맞는 표현이 담긴 문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처음 읽을 때는 생소한 장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읽다 보면 그 어떤 철학보다 재미있고 신선하게 다가올 책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서 다음 시리즈를 읽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어느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의 말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적재적소에 정확한 언어를 추구했던 에우리피데스는 "침묵보다 더 강한 말이 있을 때에만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라"고 조언한다. - P55

예술이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필수적이고 유익한 이유는 성과 제일주의와 효율 지상주의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 P141

차 마시기를 예찬하던 니체는 세심한 관찰자적 면모를 보여주는 탁월한 문장을 남겼다. "걷는 모습을 보면, 그가 자신의 길을 찾았는지 알 수 있다. 목표가 어떤 것이든, 자신의 목표에 거의 다다른 사람은 걷지도, 뛰지도 않는다. 그는 춤을 추고 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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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윤미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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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기다렸던 책이 있었을까? 헤르만 헤세와 음악이라니 정말 신비롭고 색다른 조합이라 무척이나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그 기대보다 더 크게 다가온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이 책이야말로 두고두고 읽어야 또 하나의 책이 되었다.



문학뿐만 아니라 회화, 음악, 식물 등 다양한 장르를 사랑하는 헤세는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음악에 깊고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미적으로 지각 가능한 순수한 현재이자, 찰나의 순간이 과거 및 미래와 합일을 이루는 마법"이라고 음악을 표현한 헤세의 문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음악을 섬세하고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할 사람이 또 있을까?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황야의 이리>, <게르트루트>, <유리알 유희> 이 모든 작품에도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이 책을 읽으니 헤세의 작품이 더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한번 음악을 중점에 두고 읽어봐야겠다) 또한 1부 '음악에 대한 독자적인 시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산문, 소설, 시가 담겨있고, 2부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 편지, 일기, 메모 등' 헤세의 자전적이며 직접적인 고백이 담겨있었다.


헤세를 통해 슈만과 쇼팽 그리고 베토벤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저 아름답거나 웅장한 클래식 음악을 만든 거장들로만 생각했었다면, 헤세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섬세함과 깊고 짙은 자신만의 음악 가치관을 느낄 수 있었다.


헤세의 음악적 취향도 알 수 있었으며, 서거 60주기를 맞은 해에 출간되어 더욱 좋았던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스러운 음악가를 기다리고 있던 밤과 깊은 어둠에 대해 알면, 청춘처럼 아름다운 불안정 가운데 그토록 우아하게 흩날린 이 화창한 날의 음악은 우리에게 한층 더 매혹적으로, 한층 더 날렵하고 사랑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 P103

단어가 떠오른다. 이날을 위한 마법의 단어가. 나는 종이에 커다랗게 쓴다. 모-차-르-트. 세계에는 하나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는 음악이라는 비유 안에서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233

일요일, 이제 곧 정오야. 물먹은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려서 집 주위에도 소복하게 쌓였어. 내 감각과 사유는 대개 열정도 없고 활기도 없는데 지금은 아주 밝고 씩씩해. 방금 라디오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두 곡을 잇따라 들었거든. 연주가 귀와 마음을 깨끗하게 쓸어주었어.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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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술라이커 저우아드 지음, 신소희 옮김 / 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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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환자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생각해보면 완치 환자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이제 건강해졌으니 다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에세이는 나에게 정말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의 저자는 4년간의 투병을 견디고 기적처럼 병을 완치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상에 좌절과 상실 그리고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다시 온전하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민하던 저자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하고, 100일간의 자동차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의 동반자는 오직 반려견 '오스카'였다.

24,140킬로미터의 자동차 여행 동안 저자는 길 위의 사람들을 통해 완치 뒤의 공허함을 떨칠 수 있었다. 어쩌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것이리라. 남녀노소 각자만의 깊은 아픔과 상실을 가진 사람들은 그녀가 투병 중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편지를 보내준 사람들이었다. 살아가는 환경도, 마주한 시련도 다 달랐지만, 그들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 나서는 구간에서 나도 모르게 뭉클했다. 단단해지는 저자의 내면만큼 나도 어느새 응원을 보내고 있었으며, 저자의 글쓰기가, 저자의 여행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마침내 자유를 찾으며 이야기는 끝나지만, 어쩌면 또 하나의 시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시련과 아픔이 와도 저자는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물론 나는 프리다 칼로가 아니기에, 나 자신의 불행과 창조적 관계를 맺을 방법을 궁리하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칼로의 책은 내 안에 있던 뭔가를 일깨웠다. 나는 침대에 묶여서도 고통을 창작의 소재로 승화시킨 여러 작가와 예술가의 계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 집에 있을 때도, 그리고 또다시 입원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매일매일 글을 썼다. 분노와 질투와 고통이 바짝 말라붙을 때까지 쓰고 또 썼다. - P148

치명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자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생명과 시간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살아남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 사실은 직접 겪어본 후에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 P247

아름답고 완벽한 건강 상태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목표이며, 그런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끝도 없는 불만족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이 시대에 건강함이란 지금 자신이 지닌 심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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