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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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식 라이선스 계약이자 2022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나온 프랑수아즈 사강의 <길모퉁이 카페>.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사강의 단편집은 사실 처음 읽어보았다. 이번 책엔 총 열아홉 편이 담겨있었는데, 바로 '이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열아홉 가지의 이별. 사강의 시선에선 이별도 아름다웠다.



인생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강. 우리가 사강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심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길모퉁이 카페>는 특히나 더 사강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흘렀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다양한 배경 속 주인공들은 슬픔과 고독에 빠져있었지만, 사강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문장에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꼭 이별만 다룬 것은 아니었다. 당시 사강이 속해 있던 사교계의 모습부터, 죽음을 성찰하는 모습까지 우리가 흔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상황들도 보여주었다. 어떠하게 만났더라도 이별의 순간은 참 아프기만 했다. 이유는 수없이 많았고, 이별이 이뤄지는 과정도 다양했다. 아마도 사강은 더 많은 이별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을 믿지 않았지만 돌연 사랑의 감정이 들기에 떠나려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여행에서 예고도 없이 돌아온 여자는 남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물증을 잡아냈고, 사랑하는 남자를 못 잊고 괴로워하다 다른 남자에게 위로를 얻으려는 여자도 있었으며,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하는 불치병에 걸린 남자도 있었다. 이외에도 <길모퉁이 카페> 속 이별 이야기들은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사랑은 역시 고독과 권태를 함께 가져오나 보다.)


조금은 무겁지만 건조하고 시니컬한 사강의 감성이 그리웠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리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쨋든 이제 그에게 행복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행복이든, 마르트든, 다프네든, 이제 그는 뛰고 또 뛰는 심장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사랑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 P63

‘행복한 사람이 여기 있네.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별로 없는데. 사랑했던 브루노도, 사랑하지 않았던 커트도,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하지만 이 아이는 행복해하는군. 세 시간뿐이지만 그게 어디야.‘ - P120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하가 아닌 것‘은 늘 그랬던 것 같고, ‘그 이상‘도 아닌 것은 그가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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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직업 - 단절된 꿈을 글로 잇는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유성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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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꿈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그저 옛 꿈이기에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직업>의 저자는 10여 년간 수학자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로서 가정을 꾸리는 데 충실해왔다. '나'라는 존재가 지워져만 가는 초조함과 '엄마태만'이라는 사회의 시선에 위축되는 자신을 위로하고자 글을 썼다는 저자. 꿈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었다.



누구든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지만, 신춘문예에 '인증된' 작가의 책은 더욱 읽고 싶어 진다. 저자는 2021년 제9회 한경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수학밖에 모르는 남편과 종일 곁에 맴도는 두 딸, 이사 간 신도시의 '엄마 커뮤니티'에서 소외됐던 날 등 이 모든 것들은 저자의 글쓰기 원동력이자 글감이 되었다고 한다. 책 커버 뒷면의 추천사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글은 에세이의 정석 같다. 흠도 없고 군더더기도 없다" 책을 읽고 난 뒤 난 이 추천사가 정말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문학가였던 할아버지의 서재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학교에 다니며 미술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대학생이 되어 한국에서 불문학과에 진학하기까지. 저자의 곁엔 늘 글과 그림이 함께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게 되며 작가라는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저자는 맞지 않는 글쓰기 강좌, 집안의 반대 등 수많은 시도 끝에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자신의 잃어버린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딸의 물음에 저자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고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 과정과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 속 고뇌와 좌절이 담겨있는 에세이 <나를 찾아가는 직업>. 아직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에세이를 진심으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달달한 사탕을 좋아하는 걸 보니 내 몸에 할아버지 피가 흐르는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오랜 후에,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묻고 싶다. 내가 당신처럼 글 쓰는 직업에 몸담게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 P31

‘엄마 이전에 나도 사람이야. 꿈을 꾸는 사람. 나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고.‘ 집을 나설 때부터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이제 ‘엄마모드‘는 잠시 꺼놓아도 될 것 같아 휴대전화를 ‘매너모드‘로 바꾸려다가 아예 꺼버렸다. - P117

함수의 그래프처럼 차이가 클수록 유의미해진다는 주제로 쓴 [인테그랄]. 우리의 결혼 생활 그래프는 이제 무한정 넓어지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적절한 평행선을 그리며 안정적인 면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변화무쌍한 구간에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이 평행선 그래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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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 오늘도 정주행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윤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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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수많은 영상에 둘러싸여 있다. 다시 말해 OTT 플랫폼을 빼놓고 살아갈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디즈니+ 등등 다양한 매체 속 영상들 속 숨겨진 이야기는 잘 모른다.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각 플랫폼에서 공개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것들이다) 총 3부로 나뉘어있다. 1부는 드라마, 2부는 영화 그리고 3부는 다큐멘터리. 대부분 시청한 작품들이라 저자가 선사하는 숨겨진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에놀라 홈즈> 셜록홈즈의 여동생으로 나오며 모험을 그리고 있지만, 집이란 존재가 한편으로는 얼마나 좁고 억압된 곳이었는지 확인시켜주고 있으며, <보건교사 안은영> 어차피 이 사회는 지지게 되어 있고 나빠질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저자가 엄선한 모든 작품 속엔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 속에 숨겨진 메시지가 가득했다.


읽다 보면 메시지를 풀어주는 저자의 진심이 엿보이기도 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사랑, 프리랜서 작가의 삶, 페미니스트로서의 주제의식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 저자의 이야기도 녹아져 있는 데 참 좋았다. 당당한 모습이 그려졌으며 그동안 쌓인 취향과 경험이 작품 속 메시지를 정확히 포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다음 장 역시 기다려야 온다는 걸 그 시절, 드라마를 보며 배웠다"는 저자. 우리에게 전하는 이상하고 명랑한 OTT 안내서인 이 책이 우리의 고단한 하루하루를 위로하길 바라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거야. 우리의 미래는 오직 우리에게 달려 있어." 이렇게 정직하고 필요한 메시지를 정확한 대상, 자기 자신과 같은 젊은 여성들에게 직진으로 전달하는 영화와 인물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 P39

"제 이름에는 고모 이름이 들어있어요." 나도 배웠으니 잊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 안에 너의 이름이 있다는 아름다운 우연을. 수많은 처음을 경험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성장해가는 인간을 깊이 사랑하면서, 나 역시 내가 되어간다. - P172

프레르나가 느낀 ‘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해보지 않았더라면 모르는 채로 살았겠지만, 알게 된 이상은 잊을 수 없는 기분이다. 나는 듯이, 나아간다.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데로.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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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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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나에 웃고 울게 되는 우린 어떤 말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나 우리 자신에게. "가장 좋은 말만 고르고 골라 당신에게 들려줄게요." 바로 카피라이터이자 만화가이자 시인 홍인혜의 말이다. <고르고 고른 말>은 저자가 국민일보와 한겨레신문에 연재해온 칼럼에 더 새롭게 글을 보탠 이야기이다. 저자가 전하는 유머 속 정확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평범한 일상과 행복한 여행 그리고 언제나 부딪히게 되는 사람과 일 사이에서 주고받는 언어 중 아주 특별히 애정한 말들만 이야기로 풀어낸 저자. 상처를 위로해주는 엄마의 한마디, 서로 잘 아는 친구와의 평범한 대화,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 속 대화 등등 따스한 '말'은 언제나 저자를 위로해주고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말을 수집한다는 것이 어쩌면 평범한 것이겠지만, 참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말을 그냥 흘려보낸다거나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은 담아둔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온전히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투명하게 가닿는 말이란, 시큰둥하고 냉소적인 우리를 밝고 따뜻한 곳으로 끌어내는 무한한 사랑이자, 갖은 실수와 실패에 의기소침해진 우리를 회복시켜주는 다정이라고 한다. 


진한 여운이 가득했던 에세이 <고르고 고른 말>. 모두가 좋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때로는 주기도 때로는 받기도 하면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또한 그 속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고픈 마음을 채워주는 사람에게 빠진다. 때로 나의 무채색 일상에 총천연색 필터를 끼워주는 사람에게 빠지고, 이따금 해일처럼 밀려드는 불안에 휩쓸리지 않게 단단한 닻이 되어주는 사람에게 빠지기도 한다. - P91

누군가는 섬세하고 누군가는 투박하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바를 부드럽게 만든다. 그런 바텐더가 있는 바가 매력적이다. 우리는 기계가 만드는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니니까. 한 전문가가 수년의 세월을 머금은 액체들을 향기롭게 직조하는 것을 감상하러 가는 거니까. - P194

반복적으로 쓰는 말은 그 사람만의 말머리가 되어 이미지를 만든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옳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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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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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모녀지간은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고마우면서 미안한 애증의 관계이다. 일본 문단을 뒤흔들었다는 화제의 신인 작가 '우사미 린'의 19세 데뷔작인 <엄마>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이다. 열아홉 살 '우짱'이 본 엄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짱의 진짜 이름은 '우사기'이지만 자신을 우짱으로 부르기로 했다. 우짱은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이 '엄마'라고 적을 만큼 엄마를 사랑했다. 그런 엄마도 동생 밋군과 우짱을 '엄마의 엔조(천사angel)'라고 불러주었다. 서로의 단어로 애정을 표현했던 모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과 멀어졌다. 바람이 나 집을 나간 아빠, 엄마가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을 주지 않았던 할머니 그리고 우짱, 자신을 낳았기에 엄마 자신을 잃어버린 엄마까지. 우짱은 모든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자신을 포함해 온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스스로 무너지는 엄마 곁을 지켜주는 건 우짱뿐이었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관계이자 사랑하면서도 잃는 것이 두려운 관계. 오죽하면 우짱은 엄마의 아름다웠던 날들을 지켜주고 싶어 '낳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며) 사랑하는 우짱. 이 세상 모든 모녀지간의 심리가 잘 녹아있었다.


19세에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날카로운 표현이 가득 담긴 <엄마>. 딸들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이야기이다. '엄마'라는 단어에도 마음이 울컥한다면 이 이야기가 더 공감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렸을 때 우짱은 욕조에 금붕어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어요. 아니요, 잿날에 잡은 것도 아니고 누가 키우라고 준 것도 아니에요. 하기야 과연 길렀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이제 와서는 심히 의심스럽긴 해요. 어쨌거나 정말로 잠깐이었으니까요. - P7

침묵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등에서부터 따라옵니다. 이 고요함에서 벗어나려면 계속 걸어야 하지만, 쓰러진 수목을 넘거나 시야가 트여 빛이 쏟아지거나 하는 우연한 순간에 멈춰 서면 또 침묵이 찾아옵니다. - P111

엄마, 다시 외치려다가 목이 막혀 우는 소리가 끊기고 추한 숨소리만 들렸습니다. 우짱은 이 감각을 알고 있어요.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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