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방법과 어른들이 책을 고르는 방법은 확실히 틀리다. 어른들은 먼저 저자를 보고, 수상경력을 보고, 그의 경력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도 살펴보고, 책가격도 확인하고, 빌려볼지 살지 고민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독서에 이른다.(물론 사놓고 안 읽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첫눈에 반한 책만 읽는다. 첫눈에 그 책을 읽을 것일지 말 것인지를 결정을 내린다. 교보문고에 가 바닥에 앉아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을 보라. 그들을 보면 나는 내심 흐뭇하다. 아무런 선입견없이 책 내용에만 폭 빠질 수 있는 행복한 책읽기는 유년에만 가능한 일이다. 어른이 되면 아무래도 이것저것 재게 된다.

그것보면 동화 작가들은 자신들의 독자들에게 이름이 기억되기 힘든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어른 독자들은 제외한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읽는 것은 이미 닫혀진 낙원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한다. 동화는 확실히 어릴 때 읽어야 재밌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나쁜 어린이 표> 등을 읽은 아이들 중에서 그책의 작가가 황선미라는 것을 기억하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내가 어린이책을 읽었던 2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책들이 있다. 몇번씩이나 반복해서 읽었던 그 책들의 지은이들의 이름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클로디아의 비밀>의 코닉스버그, <사과나무 할머니>의 미라 로베, <불구두와 바람샌들>의 우르줄르 뵐펠, <아이들만의 나라>의 헨리 빈테펠트, <마루 밑 바로우어즈>의 메리 노튼, <하이디>의 요한나 슈피리...

그들이 내게 미친 지대한 공헌에도 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름만으로 기억되는 수많은 작가들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으며, 삶의 방향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아주 작은 경험은 어른이 된 후에 큰 결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여전히 철이 없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여전히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은 사람들이 쓴 동화들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화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가고 싶은 곳, 있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장소였다. 따뜻한 공간 속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와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삶의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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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2-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ukineco님, 안녕하세요?
어릴 적 읽은 동화의 힘으로 지금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군요.
참 기쁘고 반갑습니다. 삶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바라볼 수 있는 힘,
마음에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