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끔 난 행복해
옌스 크리스티안 그뢴달 지음, 진영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남편이 죽었다. '우리의' 남편이. 죽은 게오르그는 '너' 안나의
남편이었다. '나' 엘리오르는 오래전 스키장에서 사고로 친구였던
안나와 남편이었던 헨닝을 잃은 후 게오르그와 의지하며 지내다 그와 결혼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평범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려자를 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돕다가 마음이 맞는.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안나와 헨닝은 불륜 관계였고 엘리오르는 그들이 죽은 후에야 게오르그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
게오르그마저 이 세상에 없는 지금, 엘리오르는 자신이 정성을 다해 키운 안나와 게오르그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들에게도 친밀함 따위는 느낄 수 없고 그저 찬찬히 자신의 삶을 돌아볼 뿐이다.
엘리오르는 왜 안나에게 이야기를 할까?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친구로서, 인간적으로. 책을
읽기 전엔 엘리오르가 안나에게 큰 배신감을 갖고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었다. (책 뒷표지에는 안나와 헨닝의
불륜이 부각되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이미 70대에
접어든 엘리오르에게 헨닝이 안나에게 끌렸던 건 이미 이해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엘리오르가 처음 안나를 만나고 그녀에게서 발견했던 걸 헨닝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인생을 돌아보는
엘리오르에게 그건 중요치 않아 보인다.
엘리오르에게 중요한 건, 그녀가 그래도 가끔은 행복하다는 거. 이건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자신을 오해하는 게오르그의 큰아들과
며느리가 원망스러울 법도 하고, 그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가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그녀 자신 외에는 중요한 사람이 남지 않았다. 물론 인생에서 나 자신은 늘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이제는
그녀 자신을 신경써 줄 사람은 그녀 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알고 그저 담담히 남은 시간을 살아내는
그녀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비록 엘리오르는 젊을
때 안나처럼 되고 싶었을지언정, 이제는 안나가 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는 그녀는 진짜 그녀 자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