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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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리타가 죽었다. 자살이란다. 하지만 성당 종탑이 피뢰침이 될 수 있다는 걸 무서워하는 리타가 비오는 날 성당 근처에도 갔을 리가 없다. 담당 형사에게 계속 이야기하고, 리타의 주변을 조사하지만 경찰은 움직이지 않는다. 엘레나는 마지막으로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기로 한다. 일단, 파킨슨병 때문에 굳어버린 발을 떼기 위해 오전 알약을 먹는다.


그냥 파킨슨병이 아니라 증상이 더욱 심하고 병의 진전이 빠른 파킨슨플러스를 앓고 있는 엘레나의 하루. 엘레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외적으로는 종교와 사회적 압박 때문에. 내적으로는 망할 병 때문에. 엘레나는 머리를 들 수 없고, 그래서 시야에 들어오는 건 다른 사람들의 발 뿐이다. 그 발들을 보며, 힘겹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 이 길 내내 리타와의 관계와 파킨슨병에 대한 생각과 동네 사람들, 그리고 교구 신부와의 일들이 엘레나의 머릿속에 펼쳐진다.


추리 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여성 특히 아픈 여성과 그 가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편견과 간접적인 폭력을 이야기한다. 가난한 여성은 이중의 억압을 받고, 가난하고 병든 여성은 삼중의 억압을 받는다. 돌봄은 온전히 함께 사는 여성의 몫이고, 작은 권리라도 누리려면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해야 한다. 돈이 많더라도 여성이라는 억압은 비껴갈 수 없다. 싫어도 엄마가 되어야 하고, 내 몸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해 봤자 아무도 듣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여성조차도. 


이 책 속 등장인물 중 아무도 행복하지 않고 아무도 무결하지 않다. 긴 시간에 걸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서로에게 폭력을 가한다. 하지만 그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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