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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종말, 세계의 탄생
에르베 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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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단다.
벌에 몇 차례 쏘인 아픈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위험이 줄어 환영할 만한 뉴스이긴 하지만,
내용을 더 들여다 보면 환영은 잠깐이고 오히려 공포다.
 
인류가 섭취하는 식용작물의 75% 정도는 꿀벌의 도움 없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 말은 꿀벌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인류는 필요한 칼로리의 절대량을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꿀벌은 왜 사라지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과도한 살충제의 사용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미 50 여년 전에 레이첼 카슨이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맞이하며 
자연이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알아챘지만,
그 후로도 우리 인간은 자연이 버텨낼 수 있는 것 이상을 소비해왔다.
무엇이 잘못 된 걸까?
 
에르베 캠프는 지구가 탄생한 순간부터 바로 어제까지를 매우 빠른 속도로 여행하면서
그 지나온 길의 정류장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과 의미를 들추어 낸다.
그리고 그 정류장에는 각기 다른 생태환경이 있다.
 
이를테면, 더 높은 경제력을 지니고 있던 중국이나 인도가 아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생태학적 기회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설명.
(석탄과 식량을 공급해주는 아메리카 대륙)
한 곳에서 떠났지만 해수면의 상승으로1만 년이 넘도록 서로 만나지 못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유럽인이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대포나 총보다는 유럽인과 함께 살던, 
그러나 원주민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병원균의 숙주들이었다는 분석.
 
그래서 서구는 17세기 이후 대분기를 거쳐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지배해왔지만
지금은 어느덧 대수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 
(프리드먼의 '평평한 세계'와 개념이 비슷하지만 의미와 전망은 완전히 다른!!)
서구의 번영을 이끌어 왔던 포드시스템, 그 포드시스템을 받치고 있었던 '평등, 생산성, 성장'의 

삼총사가 대수렴이 이루어지면서 '불평등, 투기, 부채"의 삼총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
 
대수렴이 무슨 문제냐고?
서구 수준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혹은 소비하려는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보라.
지구가 버틸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대수렴을 불러들인 것은 바로 대분기 그 자체 아니던가!!
포드시스템은 높은 임금에 의한 대량소비를 전제하는 것인데
저유가 시대가 저물고 자본은 이윤율 하락을 막기위해 불완전 고용을 만들어 냈고,
값 싼 노동력을 찾아 지구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으니
이제 더 이상 산업자본에게 노다지를 안겨 줄 나라가 남아 있지 않게 되버렸다.
 
한마디로!!
지금 인류는 지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지구에게 요구하고 있고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부담을 지구에게 주고 있는 셈이다.
 
켐프는 좌파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맑스가 전제한 고도의 생산력에 의한 생산관계의 혁명적 변화가 아닌
생태적 경제를 꿈꿔야 한다고 말한다.
서구수준으로 소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인류가 유지될 정도로 소비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 상승으로 시작된 홀로세가
이제 인류가 과다 사용한 화석연료로 인해 인류세로 넘어가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이내에 인류가 사라진다고.
 
성장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생태의 패러다임을 기획하자는 켐프의 제안,
깊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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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사회 -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강수돌 지음 / 갈라파고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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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폭언을 퍼붓는 녹취파일이 공개되어 공분을 사고 있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입에 담긴 힘든 욕을 하고, 차라리 망해버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혹시 그 직원이 성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남양유업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에 놀라 부랴부랴 홈체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불매운동의 불길이 당분간 쉽게 잡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오래된 일', '문제 직원의 사직', '직원 재교육' 등의 표현이

오히려 분노한 소비자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최근 잇달아 불거진 대기업 임원의 항공사 여승무원 폭행, 기업체 사장의 호텔 직원

폭행 등이 단순히 병리적 개인의 비정상적 행동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경제 민주화'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 경제주체 간의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민주적 경제체제가 야기한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핵심이다!!

(우리의 대통령은 그 걸 알랑가 몰라~ )

 

지난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여야를 막론하고 승리로 가는 보험증권으로 작용했던 이유도 

87년도에 시민의 힘으로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을 느낄 새도 없이

대다수 시민의 삶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시민 일반의 절망감 때문 아니었을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남양유업의 그 직원, 대기업의 그 임원, 중견업체의 그 사장도 체제가 만든

피해자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갑'으로 군림하던 그들은 또 누군가에게 절망하고 있는  '을'이었을테니 말이다.

한때는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았고 예의바르기만 했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부모에게는 효자이고,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너그러운 아버지일테니 말이다.

 

이렇듯 갈수록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회를 강수돌은

<팔꿈치 사회>라 칭한다.

팔꿈치 사회는 효자이고, 너그러운 아버지들이 자신의 그 선한 근본적 심성을 버리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팔꿈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은 끝나지 않을 경쟁.

그러나 그 경쟁의 승자는 오직 하나.

바로 자본과 권력이고 그 피해자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99%의 국민들.

 

생각해보라.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애비에미도 몰라보는 행동' 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강수돌은 진단한다.

강자 동일시와 경쟁의 내면화가 커지면 커질 수록 우리는 자신의 참된 내면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그리고 제시한다.

경쟁의 원리를 냉철하게 보자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한 남양유업 대리점 김대형씨와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입이 들어오면 이 친구 참 착하다는 생각을 하는데..시간이 지나면 이름만 달랐지,

    같은 친구, 같은 애들이랑 애기하고 있단 느낌..."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갑'이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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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나무에게 배운다 1
니시오카 쓰네카즈 구술, 시오노 요네마쓰 엮음, 최성현 옮김 / 상추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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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자마자 작년 가을에 서현의 <배흘림 기둥의 고백>을 읽고 난 후 느꼈던 전율이 

나를 기습했다.
말못하는 기둥의 고백에 웬 전율이냐고?
더군다나 건축이론서로 분류될 법한 책인데?

(오호~이럴 때 달인이 필요하다.

 느껴봣어?

에이~느끼지 않았으면 말을 마세요^^;;)

 

 고백하건데, <배흘림 기둥의 고백>은 옛건축에 대한 나의 통념을 통렬하게 깨트린 책이다.

아름다움, 사상의 반영, 선인들의 지혜 운운하며 떠올리던 우리 옛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 방에 날려버린 책이 <배흘림 기둥의 고백>이었다.


서현은 배흘림 기둥에서 아름다움을 본 것이 아니라, 자연이 길러 준 나무와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박에 없는 인간이 투쟁하고, 서로 적응하고, 상생하는 과정을 보았다. 

 

처마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안허리곡 깊숙히 숨겨져 있는 목수들의 땀과 눈물, 막막함을 발굴했다.

배흘림 기둥의 부드러운 직선에서 나무가 인간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폼나게 정리하자면,

 "우리 옛건축은 머리로 지은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지었다"!!

그러니, 그 책을 읽은 내가 어찌 환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나무를 다루고 건축을 하며 일생을 살아 온 장인이

내 곁에서 조곤조곤 지나온 삶을 풀어놓고 있다.

그것도 깊은 관조와 함께.

 

배흘림 기둥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돌아와 전하시는 말씀?

나무의 투정, 나무의 바램, 나무의 기쁨을 다 듣고 나무의 어깨를 다독이고,

나무의 머리를 쓰다듬는가 하면, 나무의 등을 토닥거리고 돌아와 전하시는 말씀?

이러니, 이 책을 읽은 내가 어찌 또 한 번 환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무에게 배운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일본의 호류지를 평생 관리하던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구술을 옮겨 적은 책이다.

궁궐목수로 한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살면서 그가 터득한 지혜를 듣노라면,

천삼백 년이 넘게 살아 있는 옛건축물이 어떻게 여전히 숨을 쉬며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알

것도 같다.

그것은 기술이나 과학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마음과 태도의 영역이다.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이들이 어우러진 세상을 살아가는 깊은 지혜가 대목장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대목장은 말한다.

천 년을 산 나무를 베어 건물을 짓는다면 그 건물이 다시 천 년을 살 수 있도록  짓는 것이

나무에 대한 도리의며 의무라고.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또, 대목장은 말한다.

나무 짜 맞추기는 치수가 아니라 나무의 성깔에 따라 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기르는 것은 왜 달라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알려 준다.

나무의 성깔을 무시하고 사용하면 비틀림이 나타나고

그렇게 되면 건축물의 수명은 절반으로 줄어 든다.

자신의 기준으로만 타인을 평가하는 잘못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방법의 단서를 준다.

 

그리고, 대목장은 말한다.

나무의 성깔 맞추기는 장인들의 마음 맞추기라고.

그리고 장인들의 마음 맞추기는 대목장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우리는 집단과 조직을 이루어 제각기 성질이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한다.

조직이 숲이라면 개개인은 홀로 선 나무다.

저마다의 성깔이 있는.

무릇 리더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무,

소리없이 참 많은 말을 건네준다.

 

책을 덮을 때 다시 한 번 새기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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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다시 쓴다 - 있음과 없음에서 함과 됨까지
윤구병 지음 / 보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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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 
그리고 곧바로 답을 내린다.
 "있는 것을 있다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참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고(거나) 없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고, 

있어야 할 것이 없고(거나)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나쁜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말랑말랑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무엇을 "있다"하고, 무엇을 "없다"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면서 

생각은 응축과 확산을 반복한다.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이라니? 

참 나....
롤러코스터는 어지러워야 제 맛? 
인류가 수천년간 궁리해 온 형이상학은 결국 말장난으로 끝나는가?

윤구병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실천으로 나아가기 위한 생각과 사물의 근원을 찾는 여정으로 형이상학을 둔다. 

그리하여 실천적 전망을 확보하는 교두보를 찾는다.
있음과 없음의 사유를 하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면서 

결국 함과 됨의 실천을 전제한 것.

있음과 없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 둘을 나누는 경계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경계가 있다면 있음이란 있을 수 없고, 

그 경계가 없다면 없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윤구병은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아페이론(apeiron)을 강조한다. 
있음과 없음의 접점, 경계이지만 경계 그을 수 없는,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변화하는 지점,
그래서 모순의 운동의 형성되는 점.  

아하~~!!
지난 달에 읽었던 샘 해리스의 <자유의지는 없다>가 이렇게 연결되는군^^
과거라는 시간은 지금 없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있음과 없음이라고 실체화되어 고정된 그 어느 것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함과 됨의 영역"!!
내가 글을 쓰고 '있는'지금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미 '없는'시간이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지금에 남아 있는 것.

어라~~!!
영화 <오블리비언>에서 톰 크루즈가 끊임없이 

'현재에서 살기'를 강요받는 이유도 이거였구나!!
과거를 망각함으로써, 과거를 없게 함으로써 됨으로만 기능하게 만드는 빅브라더.
과거를 있게 하는 순간, 

됨의 수동성과 메트릭스를 깨고 함의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회복하여 

빅브라더에 대항한다는 설정.

늙은 철학자는 당부한다.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물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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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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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한은 정말 전쟁을 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위협을 통해 다른 것을 얻자는 것일까? 
 여론 흐름을 보면 다수 국민은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막다른 골목에선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을 

아예 모른척 할 수도 없는 상황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쫄면 죽는다. 대차게 나가자"는 쪽의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여론은 왜 나뉘는 걸까? 

무엇을 위해서 나뉘는 걸까?

리처드 세넷은 사회갈등의 한 요소로  "부족주의"를 끄집어낸다. 
거기에 개인과 집단의 르상티망이 결합하면 사회는 더 이상 

어울려 살 수 없는 그 무엇이 된다.
오호~!! ressentiment !! 

원한, 원망, 복수욕!!
그래서 그런지 세넷은 사회를 '통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협력'만이 가능한 그 무엇으로 보는 것 같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함께 사냥하고 함께 방어할 영역을 정하면서 

부족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즉 부족은 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부족주의의 문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의 연대를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과 짝을 지우며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세넷이 든 사례;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따돌림, 한인타운에서의 흑인폭동, 

상업화된 SNS, 노동조합의 경제주의, 사무직 작업장의 사일로 효과 등등.
부족내 통합이 부족간 협력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역설을 세넷은 보여준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부족은 구성원이 확대되는 게 아니라 축소되고 있다는 것!!
(대법원 확정판결로 게임끝났다고 생각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에 대처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자세를 보라!! 
조합원 자녀 취업에 가산점을 달라는 세습권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난 그들을 '귀족노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급여의 문제가 아니라 세습의 문제에서!!) 

세넷은 협력의 기술 몇가지도 제시한다.
그 중 단연 압권은 경청!! 듣기의 기술.
궁극에 협력이란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이므로.

하긴 자극이 바로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지

(바로 일으키는 게 문제고. 그 놈의 '욱'하는 성질).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것. 

반응까지 가기위한 무수한 선택지. 

 

공지영의 책에서 읽었던가?

거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사실 우리의 행복을 가르게 되는 것 아닐까?

 responsible은 response-able이므로.

전쟁없는 한반도를 구상하는 데에도 세넷의 <투게더>는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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