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우리나라 소설은 안 읽어.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 없거든!"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었고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국내 순수소설에 대해 꽁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자기 책이 팔리는 걸 치욕으로 아는 작가도 있다니 말 다했죠 뭐;;)

그런데!
정말 재밌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우리 소설도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리스트를 공유해 드립니다^^


<망원동 브라더스>














제가 처음 아닛! 우리 나라 소설 중에도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 있었어?
...하고 놀랐던 작품이 바로 김호연의 망원동브라더스입니다.

한 건물 좁은 옥탑방에 20대~50대의 인생에 실패한 찌질한 사내들이 복닥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복닥대고 부대끼며 치열하게 두 계절을 지내고 
비로소 실패끝에 희망도 온다는 걸 알고 세상에 나아갑니다. 
세상사 새옹지마, 그리고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어찌되었든 부딪쳐봐야 그 끝을 알 수 있다는 교훈과 희망. 
거듭된 실패 끝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역설적인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찌질한 이야기들이 꽤나 유쾌하고 그려지거든요.
(주의: 책을 읽고나면 콩나물 해장국이 미치도록 먹고싶어질 겁니다.)


<연적 -연적과의 동침, 일탈, 여행 그리고 희망>














망원동 브라더스에 반해 목 빼고 기다리던 차기작 <연적>
전 여친의 부음 문자를 받고 참석한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또다른 남친을 만나게 되는 주인공.
둘은 묘한 경쟁심에 불타오르며 그녀의 유골을 그녀가 좋아하던 장소에 뿌려주자며 의기투합
결국 그녀의 유골을 훔쳐 여수까지 동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한없이 한심하기 짝이없이 좌충우돌하는 두 사람을 보면 끊임없이 실소가 터져나오지요.
그렇게 독자들을 내내 웃기다가 마지막에.......
그리고 그들의 복수는......!!!
망원동브라더스에서처럼... 마냥 밝기만한 미래를 그려놓는 것이 아닌데도...
묘하게 책을 덮고나면 희망의 한줄기 빛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원래 판타지 소설계의 전설적인 존재라는 김근우 작가.
그가 몇 해 전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순문학 분야에 발을 들였지요.
장르 문학을 하던 작가라 그런지 역시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하지만 가볍진 않단 사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가짜'들이 '진짜' 우리가 되어 전하는 위로>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오리에게 잡아 먹혔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문학이라고 쳐 주지도 않는 장르소설을 쓰는 전재산 4264원을 자랑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주식으로 전재산 말아 먹은 여자도 있습니다. 
가족 보다는 돈이 최고인 아이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이런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 그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남자, 여자, 노인, 아이라고 지칭되지요.  남녀노소. 
이야기 진행상 아주 자연스러운 인물설정이면서 상당히 상징적인 인물구도이기도 합니다.
즉,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노인은 불광천의 오리들 중 하나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 '호순이'(그러고보니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존재네요^^)를 잡아 먹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망할 오리를 잡기 위해 나(남자)와 여자를 고용하여 일당 오만원을 주고 불광천의 오리들의 사진을 찍게 합니다. 
단순히 오리 사진을 찍는 일만으로 일당 오만원이라니, 이런 꿀 알바가 따로 없습니다만, 
남자와 여자는 일이 거듭될수록 자신들 안의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 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노인의 손자와 노인의 아들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지요. 
그들은 '진짜' '호순이를 잡아 먹은 오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호순이'는 '진짜' 오리에게 잡아먹힌 걸까요?
우리는 누구나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갑니다.  
미리 결정된 것도,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없지만 그 인생들 하나 하나는 모두 '진짜'입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진짜' 인생에게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소설입니다^^



<우리의 남극 탐험기 - 너는 실패할 거야, 실패함으로써 성공할 거야.>














시각장애인인 경제학자 섀클턴 박사와
야구 선수를 꿈꾸다 포기하고 삼류 대학에 진학 역사교사가 되고자 하나 임용고시에 거듭 낙방하는 '나'
이 두사람의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남극 탐험기

그들의 성장기와 인생사와 탐험기가, 모순 가득한 헛소리와 헛소리와 헛소리 속에서 전개됩니다. 

딱히 즐겁고 유쾌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데, 

아니 오히려 짠내나기 이를데 없는 그들의 인생이야기에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이런 말이 안 되지만, 또한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그런 헛소리들 덕이었습니다.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날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일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게 우리 사는 인생사니까.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인생의 이들의 남극 탐험과 다를 바가 뭔가 생각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와 고난의 연속, 그렇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끝날 때까지는 끝낼 수 없는 영원 아닌 영원의 과정.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디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진 맙시다. 
왜냐하면 계속되는 실패들 속에서 우리는 결국 성공할테니까요. 
어차피 따지고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건 사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트렁커 - 누구나 조금씩 기울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몇 년 전 연말병에 걸려 우울우울할 때 그 해 마지막 책으로 이 책을 골라서 읽었더랬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다가 결말에선 평펑 울어 버린 후

결국 따뜻해진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더랬습니다.

 

세상에,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자신만의 숨쉴 공간으로 차 트렁크나 가방 트렁크를 마련해두고...

거기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일컬어 '트렁커'라고 합니다. 

온두라는 처녀와 이름(성은 이 이름이 름...이름이 이름...ㅋㅋ)이란 상처 받은 두 젊은 남녀가...

썸도 타면서 서로의 과거 아픈 기억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랍니다.

 

굉장히 코믹한 대사나 장면들이 많은데...

그 안에 또 너무나 아픈 사연을 담고 있어 여운이 깊은 책이랍니다.

 

세상에 오롯이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사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겁니다.

다들 조금씩 기울어진 채로, 균형을 잡아 살아가는 거라는 걸 보여주며 위로가 되어 주는 책입니다.



<알바 패밀리 - 7530원짜리 이태백들이 삼포시대를 살아가다.>















중국 최고의 시인인 '이태백'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이십 대 태반이 백수"로 검색하시겠습니까...라는 안내 문구가 뜹니다.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위인 '포기'라는 단어는 
연애, 결혼, 출산이란 단어들과 어울려 쓰이며 N포 시대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그야말로 웃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로민과 로라는 대학생으로 학자금 대출의 원금도 아닌 이자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버지의 가구 공장이 부도 직전이라 엄마 역시 가정에 보탬이 되려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렇게 비정규직 라이프로 똘똘 뭉친 로라네 가족!
묘하게 나의, 동생의, 우리가족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공감도 가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억울해지죠.. 우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어째서!!!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애면글명 아등바등 살아봐야 결코 내일의 내 인생은 화려할 거야~ 라고 믿을 수만도 없는 세상.
그런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을 살아갑니다.
무책임한 것 같지만 묘하게 위로가 되는 그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 p.180 나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가 혹시라도 사는 걸 포기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식사를 거르지 않았고 불면증에도 시달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주말 드라마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으며 윗니 아랫니가 20개쯤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때가 많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지만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안다. 』














안은영은 M고의 보건교사입니다. 그녀에게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적 기운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라든지, 에로에로(ㅋㅋㅋ)에너지라든지. 
그런데 M고의 지하실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이를 제거하려 하나, 
그녀도 일단은 인간인지라 사용할 수 있는 기력에 한계가 있지요.  
그런 그녀에게 충전기(?) 역할을 해주는 이는 M고 설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선생인 홍인표였습니다. 
그렇게 은영과 인표는 서로 상부상조하며, 때론 썸도 타며 M고의 평화 유지를 위해 
각종 시시콜콜한(...그렇지만 그 일을 겪는 개개인에서 보면 몹시 심각하고 중요한) 일들을 해결해 갑니다.

이 작품에는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각 단편들 속 상처 받은 영혼들, 사람들, 그리고 안은영, 홍인표... 

결국은 조금은 버거워 언제나 상처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혹은 견뎌내는 우리들의 모습 다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갑남을녀 우리들 서로 서로가 위로하고 치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치 조금씩 부족한 은영과 인표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영웅이 되는 것처럼요. 

 

수백 년수천 년 전엔 넘치고 넘쳤던 영웅이 어째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까...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실은 우리 주변엔 우리가 미처 그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영웅들이 정말 많다는 걸 말입니다

'평생 시장에서 순대를 팔아 모은 전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희생한 대학생',

'추운 날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붕어빵을 건네는 아가씨.

앞서 언급했던 난세의 영웅들은 아니지만

팍팍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훈훈한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들,

그들도 역시 영웅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댓글 부대- 그 어떤 스릴러보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럽다.>















며칠 전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던 옵션 열기

댓글부대가 실제로 운영되었을 거라는 결정적 증거라고 하죠.

여타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진 댓글부대의 존재들과

이번 옵션 열기 사건으로 새삼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소설 댓글부대가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은 댓글부대 2세대인 팀-알렙의 세 멤버인 삼궁찻탓갓, 0110...

모종의 세력으로부터 의뢰받은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과할 정도로 상세히 그려집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것은 과연 소설인가 현실인가 헷갈리게 됩니다.

작품 안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결코 보기 좋지 않은 행태들과

온갖 조작질이 난무하는 마케팅 등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조족지혈이랄지... 빙산의 일각이랄지...

그 뒤로 더 나아가 더욱 발전하여 더욱 방대하게 행해지는 어떤 음모는...

너무나 소름 돋고 너무나 충격적이고 너무나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얇다면 얇은 이 소설은 참 쉽게도 쭉쭉 읽힙니다.

그리고 더벌어 책장을 넘기는 족족 !”하는 감탄사를 쏟게 합니다.

게다가 막판에 기다리고 있는 그 반전이란!!!

저는 <댓글 부대>라는 소설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강렬한” 소설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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