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대만의 단수이허 강에서 시신 두 구가 떠오르는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79세의 노인과 57세의 여교수였고 둘은 부부였습니다. 범인은 강가 근처의 카페에서 일하던 27세의 여성이었고요. 이런 상황 설명을 듣고 여러분은 어떤 사건의 진상을 상상하셨나요?

 

이는 분명 치정극일 터다. 젊은 여자가 노인의 돈을 노리고 그를 유혹했겠지. 노인의 부인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다가 실패했든가, 아니면 애초에 부부를 살해하고 그들의 돈을 갈취하려고 했겠지. 뭐 대충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우리가 흔히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 오던 사건들이나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보아 오던 스토리란 것이 대부분 이러했었으니까요.

 

이 소설은 그런 우리들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과연 사건의 진실이란 것이 그리 단순한 것일까? 하고요.

 

자전이라는 주인공은 그저 평범한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20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가게를 개업하길 꿈꾸었고, 남자친구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소박한 꿈은 2건의 살인 사건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그녀는 왜 훙보와 훙타이를 죽였을까요?

 

자전, 그녀의 구속과 판결의 과정은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언론과 여론은 제각각 한없이 자극적인 소재들을 끌어들이며 사건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연 자전이 어째서 그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그녀를 ‘사갈녀’라 부르며 손가락질 했고, 그녀에 의해 살해된 훙씨 부부를 당연히 선한 피해자라 여기며 그들만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사실’은 그게 맞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실 안에 감춰진 ‘진실’도 그러할까요?

 

이 소설은 자전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자전이 그녀의 삶을 반추하는 형식과 훙타이가 강 속에서 죽어가며 또한 그녀의 삶을 반추해 가는 형식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가해자인 여성과 피해자인 여성. 아이러니한 것은 나이도 형편도 전혀 다른 두 여성이 묘하게 닮아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만이라는 사회는 예부터 유교 윤리가 팽배해, 그 안에서의 여성들의 삶이란 것은 결국 남성이라는 힘과 권력에 속박되고 이용당하는 존재들일 뿐이라는 걸 이 두 여인을 통해 보여줍니다. 우리의 실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리고 저도 여성이기에 이 두 여인들에게 조금 공감이 가기도 하고,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그녀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녀들이 결국 남성 권력에 이용당하는 건 사회의 분위기와 수많은 인과관계가 얽혀 그리 된 것인 것이 맞습니다만, 이를 끊고 벗어날 수 있는 건 역시 그녀들 안에 있었을 테니까요. 자전이 자신에게 닥친 어떤 사건들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항(?)했다면 어땠을까, 훙타이가 좀 더 일찍 실패한 결혼 생활 따위 팽개쳐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들이 저는 자꾸만 들었습니다. 어차피 사회란 놈이 잘못되어 먹어 이리 되었다고, 이 모든 건 그놈의 사회 탓이라고 탓만 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결국 벽을 넘든, 깨부수든, 뭐라도 해야 그 사회란 놈을 혼쭐을 내주든, 바꾸든 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것이 달걀로 바위치기라 할지라도.....

 

처음 접하는 대만 소설이라 인명이나 지명 등이 낯설었고,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가 ‘미스터리’는 별로 없고 지극히 사회소설이어서 당황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생각할거리가 많아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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