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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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도서업이 성행인 일본엔 각종 문학상이 많지만 그 수많은 문학상들 중 제가 가장 신뢰하는 문학상은 두 가지입니다. 나오키상과 서점대상. 그런데 의외로 이 두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 그동안 단 한번도 없었다네요. 올해 이 두개의 상을 동시에 거머 쥔 최초의 작품이 바로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이라고 합니다. 제가 가장 신뢰하는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했다니,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자연 높아질 대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라...하는 우려도 있었고요.

 

그도 그럴 것이, 저에게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가장 큰 이미지는'몽환적'이었습니다. 이 '몽환성'이 가끔 난해함으로 읽히기도 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게다가 친숙하지 않은 클래식, 피아노 콩쿠르가 소재인데다가 책을 마주하는 순간 일단 주눅이 들고 마는 책의 두께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저의 기우였다는 것을 책을 펼쳐 들고 고작 몇 페이지만을 읽고 바로 깨달았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프랑스 예선. 이곳에 나타난 15세 소년 가자마 진. 수백년을 이어 온 전통때문일까요, 클래식이라는 장르 탓일까요. 클래식 음악계는 몹시도 보수적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사사를 받았다거나, 어느 대학에서 수학중이라거나 하지 않는, 그러니까 무명의 음악인이라면 일단 심사위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가자마 진이라는 소년, 날것 그대로의 음악을 연주하며 한없이 자유분방하고 결코 틀에 얽매이지 않지만 곡을 해석하여 연주하는 능력은 뛰언 이 천재 소년은 심사위원들을 말 그대로 멘붕에 빠뜨립니다. 떨어뜨리자니 그 능력이 너무 출중하고 통과시키자니 여태껏 본 적 없는 파격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데 이 소년, 어마무시한 추천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임에도 제자를 거의 두지 않았다는 유지 폰 호프만이 직접 쓴 추천서를 말이죠. 결국 심사위원들은 호프만의 추천서에 힘입어 가자마 진을 예선에서 통과 시키고 가자마 진은 콩쿠르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향합니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이 콩쿠르의 1, 2, 3차에 이은 본선까지의 콩쿠르 과정을 매우 상세히 담아놓은 작품입니다.

 

콩쿠르는 거의 100명이나 되는 참가자가 참가를 하는데, 이 작품에선 가자마 진을 비롯한 4명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아버지가 양봉업자라 프랑스 전역을 떠돌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꿀벌 왕자 가자마 진. 그는 콩쿠르에서 입상을 하면 피아노를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네... 그는 어이없게도 피아노가 없습니다.) 콩쿠르에 참가합니다. 한때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였으나 어린 시절 피아노 스승인 엄마를 잃고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던 에이덴 아야. 그녀는 그동안 아예 음악을 기피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었습니다만 엄마의 지인이자 모 대학의 음대 학과장의 적극 추천으로 음대에 입학하고 결국 요시가에 콩쿠르에까지 참가하게 됩니다. 또 일본계 남미인 줄리어드 신예 피아노 천재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그는 한 콩쿠르에서 재능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안타깝게 탈락하였지만 그 능력은 이미 인정 받아 이번 콩쿠르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은 콩쿠르에 참가하기엔 연배가 좀 있는 스물 여덟 악기상점 직원인 다카시마 아카시. 음악에 대한 지식은 없으나 음악을 지극히 사랑했던 할머니 덕에 피아노를 시작하고 전공했던 그이지만 생업 전선에 뛰어들며 피아노를 연주할 일은 거의 없게 되어버린 아카시는 우연한 기회에 이번 콩쿠르에 참가하게 되고, 그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다시 한 번 들끓게 됩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인지라 인물 소개만으로도 숨이 차는군요. 이리 장황하게 그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네 인물들이 누구나 하나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 청춘이, 그들의 꿈이 반짝 반짝 빛나며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네 주인공들 덕에 저는 함께 긴장했고, 함께 꿈을 꿨고, 함께 음악 속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꿈에서조차 그들과 함께 콩쿠르가 열리는 회장에서 그들의 연주를 듣고, 심지어 그들이 되어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노라고는 바이엘도 떼지 못한 제가 말이죠. 그만큼 그들에 한없이 몰입해서 콩쿠르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기고 또 즐겼습니다.

 

피아노 콩쿠르를 소설로 써내려갔다니... 잘 상상이 안 되실 겁니다. 피아노나 교향악단, 합창단 같은 소재를 담은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이들은 영상과 소리를 함께 담을 수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그런 영상 매체들의 소재로 쓰기 매우 유용할지 모르지만, 소설은 오로지 글로써 승부해야하니까요. 사실 저도 그런 점이 이 작품을 읽기 전에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안그래도 친숙하지 않은 클래식인데, 하물며 이를 글로써 감상해야 하다니요.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음악들에 정말 미안하지만, 클래식을 귀로 듣는 것보다 이 작품을 통해 글로 보는 것이 저는 훨씬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이것은 오로지 작가의 정성과 역량 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가자가 곡 하나를 연주하는 과정을 정말 아름다운 묘사로 독자에게 전달하거든요. 그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그 정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며, 듣고 있지 않은 음악이, 심지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음악이 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이런 제 표현이 과장 같으시죠? 그런데 정말 정말 저에겐 그랬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이 콩쿠르만의 고유한 규칙이 있는데 2차 예선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작곡가의 신곡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콩쿠르의 2차 과제곡은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을 모티프로 작곡한 <봄과 수라>. 이번 콩쿠르를 통해 처음 연주되는 신곡이니 연주자의 개성과 해석이 더욱 돋보이게 되는 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네 주인공 중 이 곡을 가장 처음으로 연주하게 되는 인물은 '다카시마 아카시'. 그는 봄과 수라의 해석을 놓고 고심을 거듭합니다. 그러다 그는 떠올립니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하게 해 준 할머니의 푸른 뽕밭을. 그리고 깨닫습니다. 이 뽕밭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미야자와 겐지의 영국 해안으로 그의 하나마키, 그의 우주로.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펼쳐집니다. 이런 아카시의 연주를 듣는 가자마 진은 눈앞에 어떤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걸 느낍니다. 다카시와 진은 서로 음악으로 통하게 된 거죠. 혹시 지금 이거 상당히 오글거리는데?! 라고 생각하신 분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건 제 리뷰가 한참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품을 통해 이런 장면들을 읽어 가신다면 더없이 큰 감동을 받으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콩쿠르의 과정을 지켜보며 흥미로웠던 점이 있습니다. 한국인 참가자들에 대한 극찬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다만 그들의 연주를 네 주인공들의 연주처럼 상세하게 묘사하는 건 아니고요.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세계적 위상이 높다는 언급이 자주 됩니다. 실제로 6명의 본선 진출 자 중 2명이 한국인입니다. 비중이 가장 높지요. 그래서 조성진처럼 한국인이 우승을 했느냐고요? 아니면 네 주인공 중 하나가 우승을 했느냐고요? 그것은 당연히 비밀입니다. 다만 책 앞 부분에 네 주인공의 1~3차 및 본선 참가곡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들이 콩쿠르를 준비하며 짠 리스트지 그들이 이 곡들을 다 연주하게 되는지는 직접 작품을 읽으시면서 확인하세요. 저는 그 리스트를 보고 뭐야~ 4 주인공 모두 그럼 본선에 든다는 거야? 이거 스포 아냐?... 라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것은 절대 스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떨어지겠군...이라고 짐작하시고 계시죠? 글쎄요, 이 역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감안하시고요! 저는 콩쿠르 결과가 정말 너무나 궁금했던 나머지 가장 마지막 챕처를 먼저 읽어볼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느라 아주 혼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알았을 때 끝까지 참아낸 제가 대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런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길.

 

꿀벌 왕자로 불리우던 가자마 진. 꿀벌의 날갯짓에서도 음악을 듣던 그는 요시가에 콩쿠르에, 그리고 클래식 음악계에 호프만의 표현처럼 '기프트'이자 '재앙'이었습니다. 가자미 진의 음악은 결국 천둥이 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그들을 각성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호프만이 진에게 당부했던 것처럼 결국 그는 음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됩니다. 꿀벌과 천둥에서도 음악을 찾아내는 것. 결국 음악은 자연으로부터 왔다는 것. 그렇기에 음악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 따라서 음악은 감동이라는 것. 이 작품을 통해 진하게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꿀벌 과 천둥.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픈 명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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