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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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배신하여 아버지를 죽음로 몰아간 어머니와 삼촌에게 복수의 칼을 가는 남자, 하지만 복수의 대상이 다름 아닌 어머니라는 사실에 고뇌하는 남자, 그리하여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갈등하다 결국 복수와 함께 자신 또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 햄릿. 그 오랫동안 전세계에인들에게 읽혀오고 사랑받아온 인물인 햄릿이 현대적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거장을 통해서, 그것도 아직 세상밖에 태어나지도 못한 태아로 말이죠.

 

우리들의 현대적인 햄릿(아직 태아인지라 이름이 없으니, 그냥 햄릿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은 출산 2주를 앞둔 태아입니다. 그의 아버지 존은 이름없는 시인, 하지만 그에겐 그의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오래된 대저택이 있었고, 문화재적 가치를 가진 이 저택의 현금 가치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리고 존이 사랑하고, 존을 사랑했던(과거형) 여인 트루디, 그러니까 햄릿의 어머니인 그녀는 이제 존을 사랑하는 대신 그녀에게 육체적 쾌락을 제공하는 존의 동생 클로드와 불륜 상태입니다. 트루디는 임신을 핑계로 존을 급기야 대저택에서 내쫓고 클로드와 이 집에서 밀회를 즐기며 이제 그들은 모종의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존을 처치하고 대저택을 팔아 돈을 챙기는 것. 그들의 모종의 계획엔 태아인 햄릿의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이 모종의 계획들을 전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햄릿은 고뇌에 빠집니다. 그리하여 햄릿 역시 트루디와 클로드를 파면시킬 수 있는 복수를 계획합니다.

 

굉장히 얄팍한 두께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사실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리 쉽고 빠르게 읽히진 않습니다. 우리들의 햄릿이 태아인 주제에 매우 현학적이고 지적이며 냉소적이기 때문입니다. 트루디가 틀어놓는 팟캐스트를 통해 온갖 지식을 습득하고 세상사에 통달해 버린 햄릿은, 하여 만사에 시크합니다. 만사라 해봐야 존과 트루디와 클로드에 관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들을 통해 인간사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이 있달까요? 이런 태아답지 않은 통찰력에 가끔은 웃음도 터지고 자주자주 동경의 시선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햄릿에 대한 독자로서의 제 주된 심정은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에게서 부정당하는 존재.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에 결코 자의는 아니지만 공범처럼 참여해 버리는 그의 상황.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지만 복수의 대상은 다름 아닌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애증. 복수의 방법으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두 극단적인 것들 뿐. 그리고 그는 거듭 말하지만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태아. 이 모든 것들이 독자의 안타까움을 증폭시킵니다. 하긴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햄릿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비극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요. 하지만 원작이 비극인 걸 알고 때문에 이 작품 역시 비극이리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론 부디 비극이 아니길 바라게 되는 마음 역시 싹틉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을 읽어가는 내내 햄릿이 죽지 않길, 부디 죽지 않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랐더랬습니다. 그리고 결국 결말은.............

 

셰익스피어 원작인 햄릿을 과거에 읽긴 했으나 좀 오래전의 일이라 큰 줄거리 외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원작과 패러디(?)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얻는 큰 즐거움을 이 작품에서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었을 텐데 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제 부족한 지식에 상당한 아쉬움이 남네요. 하지만 원작의 햄릿보다 저는 태아인 이 작품 속 햄릿이란 인물에 더욱 정이 갔으므로 책을 읽는 동안 잔재미에 집착하는 제게 넛셸은 충분히 로맨틱,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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