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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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작가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내가 만약 작가라면 이정명 작가의 작품들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의 스토리엔 기본적으로 '재미'가 담겨 있고, 그 재밌는 스토리를 풀어내는 문장은 매우 정갈하게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훈민정음과 세종대왕', '김홍도와 신윤복', '북한 꽃제비' , '윤동주와 그의 시' 등 그가 소설 속에 담는 소재들은 또한 어찌나 취향저격인지요. 때문에 아주 아주 어린 시절 잠시 작가를 꿈꿨던 적이 있지만, 제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그 꿈을 접은 저에게 이정명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나 대리만족이자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가가 4년만의 장편을 들고 나왔는데, 그 소재는 '6월 민주항쟁'이라 합니다. 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전혀 없는, 소설로 역사를 배워가는 저에게 이런 단비 같은 작품이라니요. 게다가 80년대 정보 요원들이 요주의 인물을 감시하는 이야기라는 소개를 보고 굉장히 인상깊게 봤던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오르기도 해서 더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흐름이 제 예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민주화 운동 중심에선 민족 투사와 이를 잡으려는 정보 요원의 쫓고 쫓기는 스펙타클 첩보전...같은 걸 기대했었는데 민주화 투쟁은 그저 가끔씩 언급되는 소재일 뿐, 그 언급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배경이 80년대인 줄도 모르게 스토리는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중심엔 다섯 인물이 있고,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하고 또 중요하고 매우 몹시 중요한 '연극'이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각자 펼쳐지다가 후에 이들이 합을 이루는 구성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매우 흥미롭게 읽어나갔습니다. 이정명 작가의 스타일을 아는지라 분명 반전이 있으리라 예상하며, 그 반전이 무엇이겠구나 짐작도 해 가면서요.

 

하지만 복병은 앞서도 언급했던 중요하고 또 중요하고 매우 몹시 중요한 소재인 '연극'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연극'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필이면 이 작품에서 소개가 되고 있는 '연극'이 제게 너무나 생소하고 난해한 그리스 신화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대학 시절 심리학 서적에서나 보던 '엘렉트라'의 이야기. 그 엘렉트라의 이야기가 너무나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읽다 보면 이 작품이 과연 이정명의 선한 이웃이란 작품인지, 엘렉트라 신화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죠. 어째서 작가가 '연극'이란 소재를 끌어 왔는지, 왜 그 연극이 '엘렉트라'였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조금은 장광설처럼 늘어놓는 엘렉트라의 이야기는 솔직히 독자인 저를 힘겹게 했습니다. 한창 책을 읽어나가다 일단 엘렉트라 신화부터 읽고 다시 이 작품을 읽어냐 하나 고민했을 정도니까요. 결국 어느 정도 커트를 해가며 읽어나가니 훨씬 수얼해지긴 했지만, 4년 동안 오매불망 기다려 온 작품을 이런 식으로 읽고 말았구나...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구나... 하는 찜찜함이 남아버렸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으니 마치 혹평 같아졌지만, 작품 자체에 대해 실망을 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정명식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었고, 역시 그의 문장들은 한결 더 정제되어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 작품이 말하려는 주제와 관련된 소름 돋는 결말이란! '연극'이란 어수선한 가지들이 어떻게 '선한 이웃'이란 나무에 뻗어 있는지, 그리고 이 나무가 어떻게 숲을 이루고 있는지를 본다면, 이 작품이 얼마나 멋진 작품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선(善)'을 정의하려면 3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의도'와 '행위'와 '결과'. 과연 의도는 선했으나 행위와 결과가 나빴다면 이를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누구나 선한 의도는 가질 수 있음을, 하지만 그 행위나 결과는 악할 수 있음을, 때문에 '선함'을 판단할 때엔 '의도'만을 고려할 수 없음을 역설하기 위해 반어적 뜻을 담아 소설의 제목을 '선한 이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이 수긍하며, 해외 망명이라도 하려는건지 영어 사전만 들입다 파고 있다는 수인 번호 503에게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어졌더랬습니다. '당신의 선의는 결국 다른 이들에게 심각한 악행이었으므로 당신의 그 선의마저도 부정되어야 함이 맞다고!'

 

올해는 6월 민주 항쟁 30주년입니다. 작가는 30년 전의 이야기를 통해, 30년 후의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작품 속 소름 돋는 결말이 30년 후의 우리 나라의 모습은 결코 아니길 항상 경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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