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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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번역하면 정의의 사도쯤 될까요? 상당히 거창해 보이면서, 그래서 한편으론 솔직히 조금 유치해 보이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홍길동, 각시탈 같은 영웅이 나타나서 악당들을 물리쳐 나가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사실 이 소설은 사람들이 무던히도 죽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총 18개의 짤막한 바닥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매우 스피디하게 읽히는데, 그에 비례하여 살인 사건 역시 아주 스피디하게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살인의 과정을 잔인하게 그려놓은 범죄소설인가? 아니요. 그럼 연쇄 살인범을 쫓는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나 검사들의 이야기인가? 아니요. 이 작품은 범인도, 이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바로 나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들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누리꾼이라고 불리우는 그들, 아니 우리들.

 

머리에 총알 두 개를 박아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사회적으로 뒤숭숭한 때, 한 인터넷 카페에 '저스티스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이 연쇄 살인 사건과 관련한 아주 구체적인, 그러니까 범인이 어떻게 그 사람을 죽였는지, 피해자는 과거에 어떤 악행들을 저질렀기에 죽어 마땅했는지 등의 사연들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그 사연들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 커뮤니티는 점점 더 화제가 되어가고 또한 거대해져, 회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갑니다. 연예인 옷 하나에도 설전이 벌어지는 누리꾼들의 세계일진데, 이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사건에 대한 글은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받게 마련이지요. 때문에 게시글이 올라올 때마다, 그러니까 즉 사람이 한 사람씩 죽어나갈 때마다 그들은 댓글 폭탄의 꽃을 피우며 설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법, 그들은 파가 갈리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고, 그와중에 사건과는 무관한 아예 딴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 모든 것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광고 댓글을 다는 인간들도 나타나고...등등. 인터넷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들 좀 봐 온 사람이라면 언제나 흔히 볼 수 있는 볼성사나운 풍경들이 펼쳐지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는 또한 자연스레 '권력'이란 것이 생성이 되고, 누리꾼들은 그 권력에 빌붙고, 혹시나 '권력'에 맞서는 부류가 생긴다면 사정없이 배척당하여 공격 당하고, 그러다가 혹여나 그 견고할 것만 같던 '권력'이 힘을 잃는다 느끼면 곧바로 손바닥 뒤집듯 새 '권력'에 빌붙고, '권력'을 얻게 된 자는 그 힘의 달콤함에 빠져 다시 타락하고. 그렇게 결국 연쇄 살인 사건 따위야, 범인이 누구건, 어째서 그런 사건이 벌어졌건 이미 중요하지 않은 법. 그들에게 있어 '정의'는 그저 내 '안위'의 다른 말일 뿐. 더불어 '악의'란 역시 내 '안위'의 반대말일 뿐. 그런 어쩌면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보다 더더욱 볼성사나운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보며 웃고 또 웃었더랬습니다. 그들의 행태가 너무나 한심해서, 소름끼쳐서, 잔인해서, 그래서 터져나오는 조롱이 담긴 실소. 하지만 나 역시 그 수많은 누리꾼들 중 하나임을 자각하는 지라 자기 조롱의 의미 역시 내포된 웃음들이기도 했습니다. 아주 쓰디 쓴. 그래서 이 작품은 조롱하는 동시에 조롱당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작품 후반즈음에 이르르면 이제 국민은 없고 누리꾼들만 넘쳐나는 세상이 옵니다. 누리꾼의 누리꾼에 의한 누리꾼들을 위한 광케이블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은 온갖 '악의'로 넘쳐납니다. 정의라는 말따위는 잊혀진 지 오래.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그래서 보복하고, 그래서 다시 복수하는, 공격과 공격과 악의와 악의만이 존재하는 세상.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온라인상에서나 벌어지는 일을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설마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기야 하겠느냐고, 이건 그저 소설적 과장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일본의 넷우익이나 일베 사이트의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행했던 악행들을 생각하면 결코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며 이런 비슷한 문제 의식을 담은 작품으로 <댓글부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댓글부대>와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공포를 가져다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던 건, 이런 누리꾼들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하는 동시에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들, 그러니까 청소년 성범죄, 여성 불평등, 정치인들의 부패 등의 문제들도 속속들이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아주 자연스레 연쇄 살인 사건과 엮은 후, '저스티스맨'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이와 관련된 글을 올림으로써 누리꾼들이 출동하는 과정. 그리고 실상은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호기심은 끝까지 놓치지 않게끔 독자를 작품 말미까지 몰입하게 하는 연쇄 살인 범의 정체는 어쩌면 너무 뻔해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뻔함 때문에 작품 결말에서 호되게 한 방 제대로 먹고 맙니다. 이 크나큰 한 방은 작가가 작품 초반부터 교묘하게 복선인지, 아님 속임수인지 헷갈리게끔 뿌려놓은 어떤 덫과 독자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을 게 뻔한 어떤 편견을 이용하여 아주 제대로 질러주시는 최고의 한방이었습니다. 작품의 결말을 보고 작가에게 농락당하고 말았다는 분함을 느끼는 동시에 이번에 아주 제대로 한방 먹었구나 싶어 희열감 역시 느꼈더랬습니다.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닌 소설에서 아주 다양한 메시지를, 그래서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작가의 전작인 스파링을 읽다가 결국 중도 포기를 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작품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작가에 대한, 그리고 그의 작풍에 대한 성급한 반감 비슷한 것이 생겼었달까요. 그래서 이 작품도 좀 선뜻 읽기 망설여지기도 했었습니다. 헌데 작품 하나로 그 작가의 작풍을 오롯이 평가해버리는 건 역시 너무 편협한 내 아집이었구나 싶습니다. 이제 저는 작가의 신간을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작가의 말 중 제일 마지막 문장인 '포기하지 마시라.'라는 어쩌면 참 흔한 이 말에 어쩐지 위로 받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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