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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 우연이 아냐.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와 내가
같은 반인 것도, 그날 병원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야. 그렇다고 운명 같은 것도 아니야. 네가 여태껏 해온 선택과 내가 여태껏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했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난 거야.』
췌장암을 앓고 있는, 이제 1년 후면 그 병으로 죽고 말,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녀는 가족외의 주변인이 그녀의 병을 알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그녀가 그만 같은 반 남학생에게 그녀의 병을 들켜 버리고 맙니다.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밝고 밝고 또 밝은 긍정에네저
뿜뿜인 그녀와,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 없고 때문에 친구도 전혀 없는 그와의 만남. 그들의 만남과 대화와 썸과
이별이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매우 아프게 그렇게 펼쳐집니다.
주변인들이 너무 슬퍼할 것 같아서, 그렇다 보면 '일상'을 살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병을 쉬쉬했던 그녀는 그녀의 그런 병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덤덤하게 '일상'적으로 대해주는 그를 만나 말 그대로 '일상'을 '살아' 갑니다. 고기 뷔페에 가서 내장 고기를 실컷 먹고, 디저트
뷔페에 가서 디저트도 배불리 먹고, 심지어 신칸센 타고 1박 2일 일정으로 그와 여행까지. 그런 과정 속에서 그와 그녀는 끊임 없이 그녀의
'죽음'을 화두로 올리지만 언제나 그들의 대화는 그녀의 호탕한 웃음인 "우화화화핫!"으로 마무리되는 장난의 연속. 때문에 그녀는 소중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고, 그는 '죽음'을 조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죽기 전에 그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한다." 는 걸.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자신은 작은 풀잎 배이기에, 커다란 선박 같은 그녀에게 휘둘리고 또 휘둘리고 마는 거라고 생각하던 그는 이제 깨닫습니다. 그는 사실
그녀와 서로 마음이 통했었다는 것을, 그렇게 그녀 덕에 그 또한 살아있었음을.
학교를 기점으로 정반대 방향에 살고 있는 그와 그녀. 오롯한 밝음의 그녀와 오롯한 칙칙함의 그. 정말이지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끝과 끝인 것 같은 그와 그녀. 하지만 사실 이 세상의 끝과 끝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와 그녀는 정반대에 쪽에서 항상
맞은편을 바라보며 서로를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처음 제목을 듣고 일으켰던 거부감, 반신반의 했던 작품 서두에서의 작가의 제목에 대한 변 등은 이제 사라져버리고 이 한 문장이 이토록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이토록 먹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래서 심지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맙니다. 정말이지 완벽한
제목입니다.
얼핏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애 소설, 라이트 노블 같아 보이는 이 소설은 연애 소설도 라이트 노블도 물론 맞지만, 실은 "관계"에
대한 꽤나 고차원적이고 복잡 미묘한 고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결코 라이트 하지(가볍지) 않다는 것. 이런 감성을 자극하는 일본 소설은 사실
좀 흔한 편이지만 그래도 꽤 자신있게 추천드리고 싶네요. 예쁘고 풋풋하고 감동적이고, 꽤나 심오한, 심지어 중간에 예기치 못한 반전까지
등장하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
『 우리는 방향성이 다르다고 그녀는 곧잘 말했다. 당연하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언제든 서로를 보고 있었다. 정반대 쪽에서 항상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