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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평점 :
작년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아주 짧은 소설집을 인상깊게 보고 관심이 갔던 작가 이기호. 이번엔 가족 소설을 냈네요. 언제나 그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가족'이라는 단어. 책덕으로서, 소설덕으로서 언제나 동경이 대상이 되는 작가, 소설가의
가족이야기라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기대를 하며 책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가족 이야기들은 전혀 특별함이 없는
소소한, 그래서 오히려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수 십 편의 짧은 단편(...근데 정말 이걸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봐도 에세이던데;;)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세 장만
읽어봐야지 하고 열었다가 끝까지 가버리는 그런 마력의 작품입니다. 작가는...아니지 이 작품은 소설이니까 서술자는 40대의 대학 강사이자
소설가면서 아내와 (작품 초반엔) 아들 둘을 둔, 광주 광역시에 거주중인 가장입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고, 예기치 않게, 방심한 나머지 막내
딸이 하나 더 생기구요. (... 이 과정을 담은 단편 너무 웃겼어요. 특히 넷째도 생길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라던 아내의 일침은 진짜
ㅋㅋ) 때문에 그의 가족 이야기는 아내, 자녀들과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지요. 특히 자녀가 셋이나 되다 보니 그 육아 과정,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정말 많이 그려지는데, 작가의 육아는 뭔가 다를 줄 알았던 제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그 과정이란 것은 너무나 평범했었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그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이 오히려 더욱 특별히 재미있었으니 말이지요.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해보지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서술자가 그려내고 있는 그 육아 과정을 나도 전에 다 겪어봤었던 것처럼 폭풍 공감을 불러 일으키니 말입니다. 게다가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작가로서의 센스가 만나니 이건 뭐 시종일관 웃음 빵빵, 안면 근육이 내려올 새가 없네요.
그런데 이렇게 방심하고 계속 웃다가 만나게 되는 곳곳의 부모님 이야기들. 특히 서술자가 남자인지라 장인이나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아비로
살다보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그 부분들에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리더군요. 심지어 전 남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 최근에
작은 아버지의 투병 과정과 장례, 동생을 먼저 보내게 된 아버지의 모습 등을 보아오던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이야기, 아내 이야기(이기호 작가는, 아니 서술자는 정말 장가 하나는 끝내주게 잘 갔습니다. 현모양처의 표본),
자녀들 이야기, 부모이야기.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나 있는 가족들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페이지 페이지마다 폭풍 공감하며 읽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유쾌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그래서 특별해지는 예쁜 가족소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원래 한 월간지에 30년 계획으로 연재하고 있었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14년 4월 이후에 글을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하네요. 자신의 둘째 아이의 생일이 4.16이어서 더욱. 그해 4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이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치유되길...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돌아오길... 그래서 작가의 연재도 다시 재개되길 빌어봅니다.